1987년12월 이스라엘 군용트럭에 팔레스타인 청년 4명 깔려 죽자 '인티파다'에 처음 불 붙어
일제 강점기 윤봉길 의사나 장인환·전명운 의사의 의거에 대해 당시 국제 여론 평가 궁금해져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기습으로 시작된 가자지구의 유혈 분쟁과 관련된 뉴스가 연일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한데 총탄과 미사일이 오가고, 전화(戰禍)에 시달리는 난민들의 모습이 마치 스포츠 경기 중계처럼 생생하게 전해지지만 이번 사태의 역사적 배경이나 원인에 대해서는, 보통사람으로서는 좀처럼 알기 어렵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시작된 이스라엘과 아랍권의 대결은 그 뿌리가 깊기도 하고 정치· 역사적으로 워낙 복잡하게 엮여 있어 제대로 이야기하자면 책 한두 권으로 정리하기 힘든 탓이 가장 크다. 여기에 첨단 IT기술을 이용해 적군의 악마화, 아군의 승전을 목적으로 한 홍보전과 가짜뉴스가 뒤섞여 더욱 혼란스럽다.
지구촌이니 뭐니 하지만 제3자인 우리로서는 '좋은 나라' '나쁜 나라'를 가리기 쉽지 않으니 가자지구에서 벌어졌던 사실(史實) 하나만 소개하기로 한다. 『죽기 전에 꼭 알아야 할 세계 역사 1001days』(피터 퍼타도 책임편집, 마로니에북스)에 실린 이야기다.
이집트와 접한 가자지구에 자발리아란 곳이 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유엔 주도로 만든 팔레스타인 내 최대 난민촌이 있는 곳이다. 1987년 12월 8일 여기를 중심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의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난민 캠프에 사는 4명의 청년이 이스라엘 군용트럭에 깔려 죽은 사건이 계기였다. 급속한 인구증가와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고, 수치스런 보안절차 등 장기 점령에 따른 가혹한 지배에 대한 불만에 불을 붙인 것이었다.
'인티파다(흔들어 털어내다)'란 불린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운동은, 이스라엘 측에 내는 세금 납부 거부 등 시민 불복종에서 이스라엘 군인에 대한 공격, 이스라엘 협력자에 대한 살해 등 무장투쟁까지 다양하게 펼쳐졌다. 1989년 7월에는 이스라엘을 겨냥한 최초의 폭탄테러가 일어나기도 했다.
6년 동안 계속된 제1차 인티파다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은 160명의 이스라엘인들과 1,000여 명의 이스라엘 '부역자'들을 살해했다. 이 과정에서 기껏해야 거리에선 돌을 던지는 것이 전부인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에게 치명적인 무기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이스라엘은 국제적 비난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 민중운동을 통해 팔레스타인의 해방과 독립을 위한 움직임은 구체화되어 1993년 9월 유대국가의 생존권 승인과 그 대가로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잠정 설치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오슬로 협정'이 체결되었다. 말하자면 요즘 가자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의 뿌리는 인티파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셈이다. 한데 어느 쪽이 옳은가.
문득 일제강점기에 윤봉길 의사나 장인환·전명운 의사의 의거에 대해 당시 국제 여론은 뭐라 평가했을지 궁금해진다. 테러라 손가락질했을까 아니면 독립운동의 쾌거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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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