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약금 물어주고 당시 부자의 상징인 압구정 현대아파트도 주겠다며 역제안해
그래도 움직이지 않자 여자친구를 움직이고 아버지에게는 '부장자리'도 주기로
라이벌 임정명, 이충희보다 좋은조건으로 삼성입단 소식흘려 끝내 마음돌려놔

이충희의 집은 서울 전농동에 있었다. 그때부터 유 부장의 전농동 나들이가 시작됐다.
스카우트 담당 김용휘와 함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방문했다. 빈손으로 갈 순 없으니 항상 케이크나 과자 같은 게 손에 들려있었다. 처음에는 문을 열어주기는커녕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문 앞에 케이크를 놔두고 돌아선 지 한 달쯤 지나니까 불쌍해 보였는지 문을 열어줬다. 어머니였다.
"국수나 먹고 가세요. 하지만 다른 말은 하지 마세요." 정주영 정신으로 무장한 유 부장이 이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삼성에서 해준 거보다 더 주겠습니다. 문제가 뭡니까." 삼성에서 집을 사줬다고 했다. 그리고 30개월 동안 학비와 보조금 등 그때까지 받은 돈이 모두 3,000만 원쯤 되는데 만일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네 배의 위약금(약 1억 2,000만 원)을 내야 한다고 했다. "좋습니다. 저희가 위약금 다 물어주겠습니다. 그리고 현금 1억 원을 더 드리겠습니다. 거기에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도 한 채 드리겠습니다."
당시 압구정 현대아파트 30평형 대의 시세는 2,000만 원대였지만, 현대아파트는 부자와 특권층의 상징이었다.
어머니는 이 조건을 받아들였으나 정작 이충희 본인이 요지부동이었다. 현대는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 정보력을 총동원했다. 당시 이충희가 사귀던 아가씨가 있었다. 현대가 택한 방법은 여자친구를 통한 '자극'이었다. 현대는 이충희 아버지에게 '현대건설 부장 자리'를 제의했다. 동시에 여자친구를 만나 "남자친구의 아버지가 현대건설 부장이라면 그래도 괜찮지 않나"라고 부추겼다.
현대의 끈질긴 설득에도 요지부동이던 이충희를 움직인 결정타는 임정명이었다. 81년 졸업생 중 스카우트 1번은 이충희였고, 2번은 고려대 동기인 임정명이었다.
임정명 역시 현대와 삼성이 스카우트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임정명은 양쪽을 저울질하며 몸값을 올렸다. 결국 원래보다 9,000만 원이나 더 많은 액수에 삼성과 사인했다.
현대는 이 과정을 상세히 전달하면서 '임정명이 이충희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삼성과 계약했다'라는 내용을 흘렸다. 자신이 임정명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다는 사실에 화가 난 이충희는 결국 삼성을 버리고 현대와 계약을 했다.
공식적인 최종 계약 내용은 현금 3억 2,000만 원에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그리고 스포츠센터였다. 처음에 제시한 금액보다 엄청 나게 많아졌다. 이 내용은 나중에 이충희 본인이 인터뷰에서도 밝힌 바 있다.
정주영 회장의 "24번 데려와" 한마디에 이충희의 운명이 갈린 셈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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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대한일보와 합동 통신사를 거쳐 중앙일보 체육부장,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LA 올림픽,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92 바르셀로나올림픽, 96 애틀랜타올림픽 등을 취재했다. 체육기자 생활을 끝낸 뒤에도 삼성 스포츠단 상무와 명지대 체육부장 등 계속 체육계에서 일했다. 고려대 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