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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역사갈피] '100년 전'의 취업난
[김성희의 역사갈피] '100년 전'의 취업난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3.11.0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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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후반~30년대 세계대공황 휩쓸 무렵 식민지에 '변변한 일자리'가 있을리 만무
경성대, 와세다대 등 명문교 졸업생도 진로 고민…전임자 죽어야 자리 난다고 꼬집기도
1920년대 후반부터 30년대까지의 취업난은 지금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았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중동의 가자지구에서 미사일이 날아다닌다 해서 지구촌이 들먹거린들, 때아닌 김포의 서울 편입을 둘러싸고 여의도가 시끄러운들 시정의 장삼이사들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는다. 더구나 취업에 목매고 있는 '취준생'들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서울의 역사와 관련한 이야기감을 찾아보던 중 흥미로운 대목을 만났다. 1920년대 후반부터 30년대까지 식민지 조선의 일상을, 당대 언론보도를 통해 짚어본 『경성리포트』(최병택·예지숙 지음, 시공사)에서다. 일전에 한 대목을 소개한 적이 있지만 이번엔 취업난과 관련한 이야기다.

당시 취업난은 지금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세계대공황이 전 지구를 휩쓸던 시절, 변변한 산업을 일구지 못한 채 수탈의 대상이었던 식민지에서 변변한 일자리가 있었을 리가 없다. 경성전기, 식산은행 등 몇몇 대기업 외에는 대개가 알음알음으로 사람을 채용하던 것이 관행이었으니 실력 위주의 공채(公採)는 꿈도 못 꾸던 형편. 경성제국대학이나 와세다대학 등 명문 학교 졸업생도 진로를 고민해야 할 지경이었다.

1933년 한 신문기사는 "매해 중등·전문학교 졸업생 중에서 취직하는 자는 2할"이라면서 구직을 위해 거리로 나선 취준생을 그린 삽화를 실었는데 이게 참 가관이다. 큰 깃발에 '00전문학교 졸업생'이라 출신학교를 적어 밝히고, 큰 바구니를 앞에 찼는데 거기에는 졸업장, 성적표, 상장 등을 담은 취준생의 초라한 모습이니 말이다. 이 기사는 이런 모습을 보게 될 날이 머지 않다고도 했다.

상황이 이랬으니 대학졸업자도 힘이 되어줄 '빽'을 찾아 사회명사들을 찾아다녔으니 1931년 대중잡지 『별건곤』에는 〈이불 싸질머지고〉란 기막힌 기사가 실렸다. 당시 동아일보 사장 송진우 씨 이야기다. "우연히 한 번 만난 적이 있는" X씨가 소개장이니 이런 것도 없이 찾아와 취직을 당부하기에 여러 가지 사정을 들어 어렵사리 거절을 했더니만 그날 밤 아예 이불을 짊어지고 송 씨 사택으로 쳐들어와 직업을 얻어주기까지 자기를 먹여 살리라고 우겨댔다는 것이다. 딱하게 여긴 송 씨가 내버려 두었더니 그 젊은이는 보름 동안 조르고 버티다가 겨우 퇴거했다는 이야기다.

한데 이건 약과다. "취직을 위하여 아무리 날뛰어도 별 수 없으니 가장 모던식 취직방법은 좌이대사(坐而待死)다"란 비아냥이 돌기도 했단다. 좌이대사는 구직자는 많고 일자리는 적으니 전임자가 죽기만 앉아 기다리는 게 상책이란 뜻이니 당시 취업난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간다. 실제 지인에게 소개장을 부탁하며 "신문에 보니 000에 계신 분이 두 분이나 돌아가셨다는 보도가 있던데…"라고 특정 자리를 희망하는 사례가 나오기도 한다.

  • 이런저런 구설이 있어도 요즘엔 공개채용이 나름 확립되어 있으니 요즘 취업준비생들에게 이런 옛이야기가 그나마 위안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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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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