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17 11:20 (일)
이병철,정주영은 '반도체의 미래'를 봤다
이병철,정주영은 '반도체의 미래'를 봤다
  • 고윤희 이코노텔링 기자
  • yunheelife2@naver.com
  • 승인 2018.10.11 2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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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의 명운을 건 삼성, 그룹역량 총동원해 반도체 선행투자
이건희 부회장의 건의를 받은 이병철 회장이 고심 끝에 결단
감내하기 어려운 적자 무릅 쓴'기업가 정신'이 낳은 미래포석
이병철 회장(왼쪽)은 86년 12월 4일, 삼성반도체의 요람인 부천공장을 시찰했다. 이 공장을 들른 후 채 1년이 안 돼 이 회장은 영면했다. 87년 11월19일이었다. 이 회장은 병마와 싸우면서도 ‘반도체 불씨’를 살려내려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 열매는 오늘을 사는 우리가 누리고 있다. 그가 내세운 ‘무한탐구’ 정신의 개가였고 ‘사업보국’의 약속을 지킨 셈이다. 이 회장 뒤에 일부 모습만 보이는 이가 당시 반도체 산업 진출의 물꼬를 텄던 이건희 부회장이다.
이병철 회장(왼쪽)은 86년 12월 4일, 삼성반도체의 요람인 부천공장을 시찰했다. 이 공장을 들른 후 채 1년이 안 돼 이 회장은 영면했다. 87년 11월19일이었다. 이 회장은 병마와 싸우면서도 ‘반도체 불씨’를 살려내려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 열매는 오늘을 사는 우리가 누리고 있다. 그가 내세운 ‘무한탐구’ 정신의 개가였고 ‘사업보국’의 약속을 지킨 셈이다. 이 회장 뒤에 일부 모습만 보이는 이가 당시 반도체 산업 진출의 물꼬를 텄던 이건희 부회장이다/사진=삼성 50년사.

74조원 어치를 팔고 이익은 이의 절반가량인 35조원. 지난해 삼성전자가 반도체로 올린 성적표이다. 세상에 이렇게 수익률이 높은 제품이 또 있을까. 삼성은 올해도 작년 못지않게 반도체 사업을 잘해 분기마다 영업이익 신기록 행진을 어어가고 있다.

 삼성의 힘은 반도체에서 나온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반도체가 삼성이요, 삼성은 대한민국 대표브랜드가 된 지 오래됐다. 삼성이 부진하면 한국경제가 휘청거릴 거란 전망이 그래서 나온다. 삼성그룹의 매출액은 260조원. 달러론 2500억달러 규모다. 대한민국총생산(GDP)의 25%를 삼성이 창출한다.

 그런 삼성을 뒷받침하는 반도체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44년전인 197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건희 당시 동양방송(TBC) 이사는 미래에 우리나라를 먹여 살려줄 산업으로 반도체를 꼽았다.  당시는 반도체 사업이 생소할 뿐 아니라 투자비는 천문학적으로 들어가는 것 이니만큼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선진국이 아니면 엄두도 못 내는 분야였다.  ‘이건희의 도전’은 무모해 보였다.

 하지만 강기동(84)재미 과학자가 국내에 들어와 야심 차게 설립한 한국반도체의 주식 절반을 ‘이건희 이사’가 사들였다. 투자비용은 李이사의 사재로 충당했다. 그 즈음  지구 반대편인 미국에선 빌게이츠와 폴 앨런이 의기투합해 마이크로스프트(MS)를 창업했다. '컴퓨터 혁명'의 불씨가 지펴졌다. 칩이 즉 ,반도체가 전자기기의 패러다임을 확 바꿀 것이란 당시 폴 엘런(지난달 16일 작고)의 예측을 이건희 부회장이 사업화의 시동을 건 셈이다.  그 시기에 한국반도체는 시계에 들어가는 칩부터 만들었다. 지금기준으로 생각하면 반도체라고 볼 수 없는 조악한 시계부품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 한국반도체가 ‘이건희 구상’과 접목되면서 판이 커졌다. 이병철 회장은 3남인 ‘이건희 이사’의 반도체사업을 반신반의하면서도 독자적으로 시업의 전망을 살폈다. 일본과 미국에 있는 지인 네트워크를 총동원했다.  기술과 생산시스템을 알면 알수록 리스크가 커보였다. 사실 당시 삼성그룹의 매출과 인적자원으론 감당하기 어려운 도전이었다.

 실제로 삼성그룹에서 일했던  핵심 경영인의 말을 들어보면 사정이 그랬다. Q씨는 “당시 배를 만들던 현대중공업이 1년에 벌어 들이는 수익이 3000억원 규모였다. 그런데 삼성의 모든 기업이 이익을 내는 규모가 거기에 못 미쳤다. 그래서 80년대 초반에 그룹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말이 1등 기업이지 이미 현대의 자동차,조선, 건설 등 중후장대한 산업의 질주를 쳐다봐야만 했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삼성전자의 대표상품 TV의 매출이 금성전자(LG전자 전신)를 앞섰다고 자신있게 말하기도 어려울 때였다. 텔레비전하면 ‘골드스타’의 브랜드 가치가 만만치 않았다. 오죽하면 삼성의 신입사원이 가장 먼저 한 일이 텔레비전 한 대씩 파는 일이었을까.
 
  하지만 이병철 회장은 결단한다. 그룹의 명운을 건 싸움을 시작했다. 수익사업에 대한 갈증도 있어지만 손을 빨리 쓸 필요가 있었다. 현대 정주영 회장이 82년 전자사업 진출을 선언한데 이어  내친김에 반도체사업까지 뛰어들 태세를 보이자 선제공격을 했다.  메모리반도체 강국인 일본 적지에서 '반도체 독립선언'을 한다. 1983년 2월8일 도쿄에서 이 회장은 대규모 반도체 설비투자를 공식화 했다. 

  그 날을 일부러 택일했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2.8 독립선언’이 이뤄진 날이다. 1919년 2월 8일 일본에 공부하러 간 유학생들로 구성된 ‘조선청년독립단’은 대회를 열고 독립선언서과 결의문을 발표했다. 3.1운동보다 앞섰다.

 그룹자원의 총동원령이 떨어졌다. 남는 수익을 몽땅 반도체에 쏟아 부었다. 하지만 터진 항아리 물붓기였다. 90년까지 그러니까 7년동안 그런 ‘돈 먹는 하마’가 따로 없었다. 수익이 안 나니 매년 삼성반도체의 적자 규모는 눈덩이처럼 쌓였다.  거기로 가는 임원에겐 ‘아오지 탄광으로 갔다’는 말이 돌았다. 얼마 안가  ‘실적부진’을 이유로 옷을 벗었기 때문이다.

 그런 산수갑산을 넘자 희망이 보였고 1992년 햇수로 꼭 반도체 진출 10년 만에 세계반도체 D램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반도체 강자의 반열에 오른다. 거기까지 갈 때까지 에피소드가 적잖았다. 반도체 연구진들은 같은 비행기를 타지 못하도록 했다. 행여 사고를 당해 반도체 연구에 차질을 빚을까 봐  경영진들은 살얼음판을 걷듯이 ‘반도체 신화’를 준비했다. 미국에 있던 교포두뇌들도 합류했다. 진대제와 황창규는 삼성반도체 질주에 힘을 보탰고 세계 정보통신 산업의 비약적인 발전은 삼성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경영인의 결단과 도전이 어떻게 한 나라 경제의 경제 흥망을 가르는 것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반도체 투자’였다.

 이병철 회장은 그가 내세운 '무한탐구'의  정신으로 개가를 올렸고 '사업보국'의 기업가 정신을 보여줬다. 그 열매를 오늘을 사는 우리가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의 힘으로 삼성은 TV와 휴대폰 세계 시장에서도 1등을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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