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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역사갈피] 의사진료가 청결하지 않았던 옛날
[김성희의 역사갈피] 의사진료가 청결하지 않았던 옛날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3.10.30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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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기 의학 수준은 비참한 수준…앵글로색즌족의 『의학서』엔 '똥 처방전' 등장
당대의 지식인이자 정신적 지도자인 베르나르 "의사와 상담해 약 먹는 행위는 불결"
12세기 유럽에서는 의료 개입은 하느님이 행하는 일을 무효로 만드는 일이라는 믿음이 있었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가톨릭 성인 중에 12세기에 활약한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란 인물이 있다. 스콜라 학파 이전의 대표적 신학자로 '마지막 교부(敎父)'로 불린 수도사였지만 단순한 사제는 아니었다.

시토회 수도원장을 지냈고, 성전기사단에도 간여했으며 그 유명한 연애담의 주인공 아벨라르와 '보편논쟁'을 벌일 정도로 당대의 명사였다.

그보다 대단한 것은 그가 중세 유럽의 막후 실력자였다는 사실이다. 지금이야 보통사람들의 기억에서는 사라진 인물이지만 베르나르는 유럽을 쥐고 흔들었다.

수도원에서 은둔생활을 하는 단순한 수도사가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1130년 교황 선출에 관한 논쟁이 일어났을 때 벨나르는 어떤 후보를 지명해야 할지 결정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그는 인노첸시오 2세를 선택한 뒤 몇 년 동안 유럽을 여행하며 반대파 통치자들이 마음을 바꾸도록 설득하기도 했다.

1145년 에우제니오 3세가 교황으로 선출된 데도 그가 베르나르의 친구였다는 사실이 크게 작용했다. 이어 베르나르는 에우제니오 3세의 요청을 받아 제2차 십자군 원정을 위한 유세 여행에 나서 여러 왕와 수많은 군중 앞에서 설교를 하기도 했다.

이 이야기는 서양 천 년을 바꾼 결정적 사건과 인물을 정리한 유니크한 역사책 『변화의 세기』(이언 모티머 지음, 현암사)에 등장하는데, 정작 눈길을 끈 것은 의학과 관련한 대목이다.

책에 따르면 12세기 유럽에서는 의료 개입은 하느님이 행하는 일을 무효로 만드는 일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당시에는 의술의 도움을 받으려고 한, 벌 받아 마땅한 사람들과 의사 치료 실패 후 성유(聖油)를 발라 기적적으로 치유된 사례를 모은 기독교 저술이 나왔을 정도였다.

당대의 지식인이자 정신적 지도자인 베르나르 역시 한마디 했으니, "의사들과 상담하고 약을 먹는 행위는 비종교적인 행동이며 정결하지 않은 행위"라고 했다.

그런 믿음이 그리 잘못되지 않은 것이 당대 의학 수준은 비참할 정도였다. 앵글로색즌족의 이른바 『의학서』에는 이런 처방이 나오니 말이다.

"대체 치료법…신선한 개의 머리를 불에 태운 뒤 그 재를 상처에 바른다. 그래도 상처가 아물지 않으면 남성의 똥을 완전히 말린 뒤 비벼서 가루를 만들어 상처에 바른다. 이렇게 해도 환자를 치료할 수 없다면 그 어떤 방법으로도 치료할 수 없다."

베르나르가 의학을 '정결하지 않은 행위'라 한 이유가 납득되지 않는가? 다행히 12세기에 수도원 중심으로 약 조제법 모음집이 나오는가 하면 아랍의 영향으로 새로운 치료법이 도입되는 등 서양 의학의 터닝포인트가 마련되었다고 한다. 지은이가 수도원 연결망 확장, 지적 르네상스, 법치주의와 더불어 의학 발전을 12세기 서양사의 획기적 변화로 꼽을 정도로.

의사 정원 확대와 관련한 사회적 논란을 보니 문득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일화가 떠올라 뒤져낸 사실(史實)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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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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