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18 04:25 (월)
[독점연재] 정주영 히스토리 (30) 이봉걸을 농구선수로 만들라
[독점연재] 정주영 히스토리 (30) 이봉걸을 농구선수로 만들라
  •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 webmaster@econotelling.com
  • 승인 2023.10.18 0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본과 중국과 달리 국내에 키 2m 넘는 선수가 없어 속수무책으로 중일에 번번히 패퇴
현대중공업 씨름단에 있던 이봉걸 선수를 눈여겨 보던 정 회장 "농구는 키야"라며 특명

국내 기업을 대표하는 현대와 삼성이 동시에 농구단을 창단한다고 하니 농구계는 쌍수를 들고 환영했으나 연세대 졸업생을 놓고 양쪽에서 서로 '우리 선수'라고 목소리를 높였으니 시끄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현대는 대한농구협회에 정식으로 농구부 창단 관련 공문을 보냈으나 삼성은 급히 서두르다 보니 정식 공문이 없었다. 현대는 이 문제를 물고 늘어졌다. 삼성은 자격이 없으므로 협회가 현대의 손을 들어줘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현대와 삼성, 그리고 농구협회 간의 협의가 오랫동안 계속됐다. 끝이 나지 않을 것 같던 팽팽한 대립이 이어지다가 결국 신선우· 박수교·최희암은 현대로 가고, 장봉학이 삼성으로 가는 대신 고려대의 김상천이 현대로 오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미국인 씨름선수 커티스 존슨(34ㆍ233㎝)이 국내 씨름의 전설 이봉걸(57ㆍ205㎝)에게 병원비를 내놔 양국 씨름선수간의 우정이 시선을 끌었다. 이봉걸 감독은 2017년 10월 24일 허리 수술을 받았다. 이 소식을 들은 존슨이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받은 출연료 전액을 이봉걸의 치료비로 내놨다. 사진=대한씨름협회.
미국인 씨름선수 커티스 존슨(34ㆍ233㎝)이 국내 씨름의 전설 이봉걸(57ㆍ205㎝)에게 병원비를 내놔 양국 씨름선수간의 우정이 시선을 끌었다. 이봉걸 감독은 2017년 10월 24일 허리 수술을 받았다. 이 소식을 들은 존슨이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받은 출연료 전액을 이봉걸의 치료비로 내놨다. 사진=대한씨름협회.

우여곡절 끝에 현대 농구단을 창단하고, 드디어 79년부터 스미토모와 정기전을 가질 수 있었다. 매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경기하는 형식이었다. 첫 번째 정기전은 한국에서 먼저 열렸다. 정주영 회장을 비롯해 현대 임원 대부분이 경기를 관전했고, 스미토모 임원진도 대거 방한했다.

당시 스미토모에는 일본 국가대표인 2m 34cm의 장신센터 오카야마가 있었다. 현대에서는 1m 88cm인 신선우가 센터였으니 도저히 오카야마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현대는 리바운드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형편없이 졌다.

일본에 오카야마가 있다면 중국에는 2m 38cm의 무티에추(당시에는 한자음 그대로 목철주라 불렀다)라는 장신센터가 있었다. 한국에는 2m가 넘는 선수가 한 명도 없어 중국이나 일본을 만나면 항상 고전했다. 공격 리바운드는 물론이고, 수비 리바운드도 번번이 뺏기곤 했다. 당시는 3점 슛도 없을 때여서 어렵게 득점하고, 쉽게 실점하는 패턴이었다. 장신센터의 필요성을 절감하던 때였다.

하루는 정 회장이 유병하 과장을 불렀다. "농구는 키야. 키 큰 놈이 최고야."그러더니 정 회장이 지시했다. "울산에 가면 씨름하는 키 큰 애 있어. 걔 데려다가 농구선수 만들어."정 회장이 얘기한 '씨름하는 키 큰 애'는 바로 이봉걸이었다.

2m 5cm, 120kg의 장신 이봉걸은 고교 3학년이던 78년 대통령기 씨름대회에서 김성률 장사의 8년 아성을 무너뜨리고 우승했다. '인간 기중기'라는 별명을 얻은 이봉걸은 졸업 후 곧바로 현대중공업 씨름단에 들어왔는데 정 회장이 이봉걸을 눈여겨본 것이다. 씨름 선수를 농구선수로 만들라는 정 회장의 지시에 유 과장은 매우 당황했으나 회장의 지시를 거부할 수 없었다.<계속> 

---------------------------------------------------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대한일보와 합동 통신사를 거쳐 중앙일보 체육부장,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LA 올림픽,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92 바르셀로나올림픽, 96 애틀랜타올림픽 등을 취재했다. 체육기자 생활을 끝낸 뒤에도 삼성 스포츠단 상무와 명지대 체육부장 등 계속 체육계에서 일했다. 고려대 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도 지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효령로 229번지 (서울빌딩)
  • 대표전화 : 02-501-63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장재열
  • 발행처 법인명 : 한국社史전략연구소
  • 제호 : 이코노텔링(econotelling)
  • 등록번호 : 서울 아 05334
  • 등록일 : 2018-07-31
  • 발행·편집인 : 김승희
  • 발행일 : 2018-10-15
  • 이코노텔링(econotelling)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5 이코노텔링(econotelling). All rights reserved. mail to yunheelife2@naver.com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장재열 02-501-6388 kpb11@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