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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역사갈피] 영조는 어떻게 민심에 귀 기울였나
[김성희의 역사갈피] 영조는 어떻게 민심에 귀 기울였나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3.10.16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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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덕궁서 영의정을 위시한 관리, 성균관 유생과 더불어 공인(工人), 시전 상인과 '공청회'
영조"오늘 다 말하지 않으면 다시 기회 없을 것"이라며"느끼는 병폐와 고통 말하라"독려
한 상인이 군영 군사들이 '무허가 난전' 벌였다고 하자 이름을 묻고 병조서 특채하라 명령
영조는 재위 중 백성들을 만나 직접 고충을 듣거나 설득한 것이 총 55차례에 이른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사극 영화나 TV드라마를 보면 옛날 임금들은 신하·비빈들과 매일 지지고 볶거나 오로지 제 마음대로 국정을 쥐락펴락 한 것으로 알기 쉽다.

한데 이것 오해다. 오늘날로 치면 대통령비서실 구실을 하던 승정원에서 왕의 정무와 일상을 기록한 『승정원일기』를 보면 말이다.

영조 28년(1752) 12월 19일 기사를 보면 영조는 이날 청덕궁 선화문에서 영의정을 위시한 관리, 성균관 유생들과 더불어 공인(工人)과 시전 상인들이 참석한, 일종의 공청회를 열었다.

그가 평소 민폐로 인식했던 공인과 상인들의 고충을 듣고 해결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영조는 "오늘 다 말하지 않으면 앞으로는 다시 이런 기회가 없을 것"이라며 "너희들이 느끼는 병폐와 고통을 말하라"고 독려했다. 이에 한 상인은 사치를 방지하기 위해 무늬 있는 비단의 판매를 금했는데, 법령이 시행되기 전에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던 무늬 있는 비단은 여기서 제외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영조는 즉각 호조에 지시해 변통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무명을 파는 백목전의 상인이 당시 군영의 군사들이 무허가로 난전을 벌여 폐단이 많다고 하자 이를 가상히 여긴 영조는 그의 이름을 묻고 병조에서 특별히 채용하도록 했다. 이어 면주전, 지전, 내어물전, 생선전 등 상인들이 발언이 이어졌는데 영조는 사안에 따라 바로 그 자리에서 담당 부서에 해결을 지시하고, 발언자 중 잡화를 파는 상전(床廛)의 상인 최창덕은 호위대장청으로, 잡곡전의 서세운은 어영대장의 집사로 삼도록 하는 등 인재 특채 조치도 취했다.

전통 왕조사회에서 이러한 '대민접촉'은 여상한 일이 아니다. 이날 발언한 상인과 공인들은 어떻게 골랐는지, 발언은 사전 조율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일이 흔하지는 않았지만 일회성 행사가 아니었던 것도 분명하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국왕의 대민접촉이 늘어나는데 영조만 해도 재위 중 백성들을 만나 직접 고충을 듣거나 설득한 것이 총 55차례에 이른다. 조선의 역대 왕 중 가장 오래 왕위를 지킨 영조의 재위 기간은 52년이니 적어도 연 1회 이 같은 민심 청취를 직접 행했던 셈이다.

『승정원일기』는 실록에 버금가는 기록유산으로 국역본도 있지만 이 이야기는 '소통'에 초점을 맞춰 분석하고 갈래지은 『승정원일기, 소통의 정치를 논하다』(박홍갑 외 지음, 산처럼)의 한 토막이다. 선거철이면 시장 등을 찾아 '친서민 코스프레'를 하는 정치꾼은 많지만 정작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직접 들어 정책에 반영하는 정치인은 극히 드문 오늘의 현실에 비춰보면 감탄이 나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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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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