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22:10 (토)
[패션이 엮은 인류경제사] (21) 조선판 '사랑과 영혼'
[패션이 엮은 인류경제사] (21) 조선판 '사랑과 영혼'
  • 송명견(동덕여대 명예교수ㆍ칼럼니스트)
  • mksongmk@naver.com
  • 승인 2023.09.12 0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한올씩 엮은 미투리는 병석의 남편이 다시 걷길 기대한 '비원'
420년 만에 햇빛 본 무덤 속 '望夫歌'는 앤티쿼티 등 세계적인 고고학 저널서 주목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 감동을 준 '원이 엄마의 편지'는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다. 1998년 경북 안동시의 한 택지개발지구에서 420년 전 무덤이 발굴됐다. 무덤 속 망자는 고성 이씨 이응태 (1556~1586년)였다.

무덤 안에는, 젊은 나이(31세)에 병석에 누운 남편을 애통하게 바라보며, 아내인 원이 엄마가 남편의 병이 낫기를 기원하면서, 머리카락과 삼을 엮어 만든 미투리와 옷가지들, 그리고 요절한 남편을 그리는 애절한 편지가 보존돼 있었다. 남편은 아내가 눈물과 정성으로 만든 그 신발을 신어 보지도 못하고 끝내 저 세상으로 떠나고 만 것 같다.

편지에는 그야말로 절절한 부부의 사랑이 녹아 있다. 진실로 서로를 사랑하며 백발이 될 때까지 해로하길 소망했던 이들 부부는, 비록 육신은 일찍 헤어졌지만 영혼만은 긴 세월 동안 줄곧 함께 했음이 틀림없어 보인다. 아내의 편지는 가로 58㎝, 세로 34㎝ 한지에 오른쪽 끝에서부터 써내려가, 왼쪽 끝까지 가득 채우고, 글 위의 여백까지 빽빽이 썼다. 그러고도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나이다"라는 마지막 문장은 다시 글 첫머리 쪽 여백에 거꾸로 씌어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넘쳤던 것이다.

'원이 엄마의 편지'는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 감동을 주었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더 감동적인 것은 함께 출토된 미투리다. 이 미투리는 삼과 머리카락을 함께 꼬아 만든 것이었다. 편지가 마음의 표현이었다면, 자신의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을 엮으며 남편이 다시 걸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 마음을 나타낸 애절한 소망의 증거물이다.

머리카락으로 삼은 이 미투리야말로 부부의 애틋한 정과 아내의 간절한 마음이 만들어낸 명품인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머리카락은 예의와 격식, 그리고 신분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기쁠 때에는 머리를 아름답고 화려하게 치장하였다.

상을 당하거나 극도의 슬픔과 분노를 표할 때에는 머리카락을 풀어헤쳐 감정을 나타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머리카락에 특별하고 영험한 효력이 있다고 믿기도 했다. 성서에 나오는 '삼손과 데릴라' 이야기도 바로 그런 맥락이다. 한 민족의 지도자가 사랑에 빠져 힘의 원천인 머리카락을 잃고 죽음에 이르게 된다.

우리 선조들은 주변의 많은 재료들로 생활필수품을 만들어내는 특별한 재주가 있었다. 신발의 재료 역시 다양하였다. 비단, 가죽, 나무, 금과 동, 놋(유기), 짚, 왕골, 종이 등으로 신을 만들어 신었다. 크게 은혜를 입어 뜨거운 감사를 표현할 때 '머리카락으로 짚신을 삼아 바쳐도 부족하다'고 한다. 그러나 어떻게 그 섬세한 머리카락으로 짚신을 삼을 수 있을까? 실제로 머리카락으로 된 신발은 존재조차 확실치 않았었다. 그러나 아내의 끝없는 사랑이 그 기적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사연은 곧 TV를 통해 '조선판 사랑과 영혼-420년 전의 편지'로 알려졌다. 특히 세계적인 고고학 저널인 앤티쿼티(영국 Antiquity), 아케올러지(미국 Archaeology) 등에 실려 세계인의 심금을 울렸다. 무덤이 발견됐던 자리에 '원이 엄마 상(像)'이 세워졌고, 안동댐에는 그 미투리를 형상화한 '월영교'라는 아름다운 목조다리가 놓였다. 하나님은 애틋한 부부 사랑과 아내의 정성을 후대에 널리 알리고 싶어 무덤을 420년이란 긴 세월 동안 지켜준 것 같다.

오늘날 가볍고 얕은 사랑이 일상화되는 가운데 이혼은 늘어만 가고 있다. 굳이 통계를 들먹이지 않아도 주변에서 행해지는 이혼이 자연스러운 일처럼 느껴질 정도다. 하루에 300쌍의 부부가 남남이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이혼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9위이고, 아시아에서는 1위라고 한다. 인구 감소까지 고려하면 우리나라 이혼율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420년 세월의 타임캡슐을 연 원이 엄마의 사랑과 그녀가 만들어낸 머리카락 미투리의 감동이 새삼 특별히 가슴에 다가오는 이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효령로 229번지 (서울빌딩)
  • 대표전화 : 02-501-63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장재열
  • 발행처 법인명 : 한국社史전략연구소
  • 제호 : 이코노텔링(econotelling)
  • 등록번호 : 서울 아 05334
  • 등록일 : 2018-07-31
  • 발행·편집인 : 김승희
  • 발행일 : 2018-10-15
  • 이코노텔링(econotelling)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이코노텔링(econotelling). All rights reserved. mail to yunheelife2@naver.com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장재열 02-501-6388 kpb11@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