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15:40 (토)
[김성희의 역사갈피] '대공황 자살'의 가짜뉴스
[김성희의 역사갈피] '대공황 자살'의 가짜뉴스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3.09.04 1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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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폭락에 빈털터리가 된 투자자와 금융 관계자들이 많이 자살했다는 소문은 허구
' 검은 목요일 '로부터 2주 동안 뉴욕의 자살률은 직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낮아져
주가폭락과 직접 연관된 투신 4건에 불과…그 중 월스트리트서 일어난 것은 2건 뿐
1929년 10월 24일 '검은 목요일'이 닥쳤으며 하루 사이에 140억 달러의 주식가치가 증발했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1929년 10월 24일 '검은 목요일'이 닥쳤으며 하루 사이에 140억 달러의 주식가치가 증발했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1929년 10월 24일 '검은 목요일'이 닥쳤다. 하루 사이에 140억 달러의 주식가치가 증발했다. 세계사에 처음 기록된 전 세계적 규모의 '대공황'의 시작이다.

이날 전까지 미국의 번영은 영원히 계속될 듯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으로, 미국은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세계 최강국으로 떠올랐다. 향락과 전후 허무주의가 휩쓸면서 온 나라가 흥청망청했다.

'광란의 시대'라 불리는 이 시기에 수많은 미국인이 은행 대출을 받아서라도 주식 매입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마침내 경제 거품이 터지자 참상이 벌어졌다.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된 이들이 속출하고, 공장이 문을 닫는 바람에 실업자들이 쏟아졌다.

흉흉한 소문이 뒤따랐다. 미국 증권가의 중심인 월스트리트의 고층 빌딩에서 종이조각이 되어버린 주식이 흩뿌려지고, 빈털터리가 된 투자자와 금융관계자들이 뛰어내리고 있다는 '뉴스'였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월 스트리트의 한 건물 옥상에서 일하는 사람을 거기서 뛰어내리려는 금융업자로 오인해 주변에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지켜보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코미디언들은 이를 두고 "뛰어내리려면 창문 앞에 줄을 서야 했어요"라는 웃픈 농담을 시전했다.

이건 전형적인 가짜 뉴스였다. '검은 목요일'로부터 2주 동안 뉴욕의 자살률은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낮아졌다. 당시 투신 자살이 두 번째로 흔한 자살 방법이긴 했지만 '검은 목요일' 이후 그해 연말까지 뉴욕타임스에 100건의 자살 시도 기사가 실렸지만 주가 폭락과 직접 연관된 투신은 4건에 불과했고 그나마 월스트리트에서 일어난 것은 그중 2건뿐이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은 "과로로 기진맥진한 상태"였던 채권 업무 담당자였고, 다른 한 사람은 변호사가 만나주기를 거부하자 그 변호사 사무실 건물 7층에서 투신한 야채 도매상이었다.

저명한 미국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자신의 책 『대폭락』에서 "주식 시장이 폭락한 뒤 자살 물결이 잇따랐다는 것은 1929년 전설의 일부다. 사실 그런 물결은 없었다"고 결론지었다. 실업률이 1% 늘어날 때마다 자살자 수도 0.8%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지만, 적어도 대공황 때는 아니었다. 그리고 적어도 막무가내 투자를 부추긴 은행 관계자들은 그런 '경제 자살'을 하지 않았다.

이건 각종 허구를 까발린 『지식의 반전』(존 로이드 외 지음, 해나무)에 실린 이야기인데 요즘 우리나라에서 금융기관에서 잇따라 대형 횡령 사건이 벌어지는 걸 보면 나름 그 이유가 짐작이 가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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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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