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회에 돈봉투 준비 지시하며 "대통령이 주는 돈보다 작아야 한다"고 엄명
비공개로 선수단에 전달… 전국체전 준비하는 도지사에게도 직접 촌지 건네

뉴델리 아시안게임 선수단 환영 행사는 다음 날에도 이어졌다. 8일에는 메달리스트들이 청와대를 방문해서 전두환 대통령을 만났다.
청와대 행사는 청와대에서 알아서 하므로 체육회가 특별히 더 준비할 것이 없다. 그런데 정 회장의 지시가 또 떨어졌다. "선수들에게 격려금을 주고 싶어. 그러나 대통령 격려금보다는 적어야 해."
격려금 준비하는 거야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대통령 격려금보다 적어야 한다니. 그것까지 신경 쓰는 마음에 놀랐으나 대통령 격려금이 얼마인지를 어떻게 알아낼 것인가. 그냥 '금일봉' 아닌가. 이걸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나. 물어본다고 대답해 줄 리도 없었다. 배 국장은 속이 탔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다. 갑자기 청와대 보고서가 생각났다. 뉴델리 아시안게임은 북한과의 관계 때문에 대회 진행 상황을 체육회에서 청와대에 직접 보고했다. 민정수석이 보고서를 만들어 대통령에게 보고했는데 최종 보고하기 전에 혹시 수정할 내용이 있는 지 보라고 했다. 배 국장은 정 회장에게도 보고할지 모르니까 그 보고서를 복사해놓았다. 혹시 하고 찾아보니 거기에 격려금 내용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 대통령 격려금보다 약간 적은 금액의 회장 격려금 봉투를 준비할 수 있었다.

"대통령 격려금 금액은 어떻게 알았어?" 정 회장은 대통령보다 약간 적게 격려금 봉투를 준비했다는 보고를 받더니 이렇게 물었다. "혹시 몰라서 민정수석 보고서를 복사해놓았는데 그게 도움이 됐습니다."
정 회장의 눈꼬리가 올라가더니 싱긋이 웃었다. "수고했어."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격려금 지급은 아무도 모르게 해. 선수단이 청와대 나온 뒤에 세종문화회관으로 가서 내가 직접 줄 거야."
세종문화회관 무대 아래 객석에 선수들을 앉혔다. 외부에서는 알 수 없게 룸라이트만 켰다. 약간 어두컴컴한 상태에서 정 회장이 직접 한 사람씩 격려금 봉투를 줬다.
혹시라도 알려지면 대통령의 심기가 불편해질 수도 있었다. 거기에 선수들도 편하게 부담 없이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었다. 가히 배려의 아이콘이었다. 이 사실은 기자들에게도 알려지지 않아서 어느 곳에서도 회장 격려금이 보도된 적이 없다.
다음 해인 83년 5월에 열린 제12회 전북 소년체전 때도 마찬가지였다. 도지사에게 격려금을 전달했는데 절대로 남들이 보는 데 서 주지 않았다. 도지사를 자신의 차로 불러 차 안에 둘만 있을 때 살짝 전달했다.
이런 걸로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고, 상대가 불편하지 않게 배려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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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대한일보와 합동 통신사를 거쳐 중앙일보 체육부장,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LA 올림픽,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92 바르셀로나올림픽, 96 애틀랜타올림픽 등을 취재했다. 체육기자 생활을 끝낸 뒤에도 삼성 스포츠단 상무와 명지대 체육부장 등 계속 체육계에서 일했다. 고려대 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