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업체가 시공했는데 측량방식 달라 400m에서 40cm가 모자라는 소동
불려온 서윤복 육상연맹 부회장 좌불안석이었는데 "체육회 감독불찰"결론
체육회 임원들에게 책임감 강조하는 등 '체육회의 체질개선'에 신호탄 쏘아

체육회장에 취임한 정 회장은 특유의 스타일로 문제를 해결하면서 체육계의 체질을 바꿔나갔다.
취임 후 첫 주요행사가 10월 14일 개막한 제63회 마산·창원·진주·진해 전국체전이었다. 이때 마산 메인스타디움에 국내에서 처음으로 우레탄 트랙을 깔았다. 우레탄 트랙은 세계적으로 육상 선수들의 기록 단축에 크게 도움을 준 선진 공법이어서 우리도 도입한 것이다.
우리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독일 업체에 부탁해서 시공했다. 독일 업체는 자신들의 방법으로 트랙을 측량하고 설비했다. 그런데 우리가 측량하는 방식하고 달랐던 게 문제였다. 독일 업체는 측량기로 계측한 뒤 우레탄 트랙을 깔았는데 나중에 육상연맹에서 우리 방식대로 자로 직접 측량하니까 400m에서 40cm가 모자랐다. 독일 업체가 잘못한 것은 아니지만 이러면 기록에 문제가 생긴다.

개회식 이후 이틀 동안 벌어진 육상 경기에서 순위는 인정됐으나 기록은 공식 기록으로 승인받지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결국 직원들을 동원해서 트랙에 그어놓은 페인트를 다 지우고 새로 페인트칠을 해야 했다.
보고를 받은 정 회장은 노발대발했다. 체전이 끝나고 첫 회의 때 "육상연맹 부회장을 참석시켜라"라고 지시했다. 회의에 참석한 서윤복 육상연맹 부회장은 좌불안석이었다.
그런데 정 회장이 "체육회 차원에서 육상연맹에 사과 편지를 쓰라"라고 했다. 모두가 어리둥절했다. 체육회 임원들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이 건은 대한체육회가 사과할 일이 아닙니다. 육상경기장 공인은 육상연맹 소관입니다. 육상연맹이 잘못한 것이니까 오히려 체육회가 육상연맹을 질책해야 합니다."
그러자 정 회장이 대뜸 "체육회가 감독을 잘못한 것"이라며 화를 냈다. 김종열 실무 부회장에게 "실무 부회장이 체전 준비를 제대로 안 하고 뭐 했나"라며 강하게 질책했다. 그러더니 서윤복 부회장에게 정중하게 절을 하며 사과하는 것이 아닌가.
질책당할 줄 알았던 서 부회장은 어쩔 줄 몰라 했고, 체육회 임원들은 모두 정 회장이 왜 그러는지 의아하게 생각했다.
정 회장은 임원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분명히 알았다.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합시다. 전국체전의 주최는 대한체육회입니다. 모든 책임은 체육회가 져야 합니다."
정 회장의 이런 행동은 아마 체육회 임원들에게 책임감을 강조하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현대라는 대기업을 이끄는 총수가 보기에 대한체육회의 일 처리가 얼마나 한심해 보였을까. 체육회 회장이 된 만큼 처음부터 체육회의 체질을 바꾸겠다는 강한 의도였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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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대한일보와 합동 통신사를 거쳐 중앙일보 체육부장,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LA 올림픽,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92 바르셀로나올림픽, 96 애틀랜타올림픽 등을 취재했다. 체육기자 생활을 끝낸 뒤에도 삼성 스포츠단 상무와 명지대 체육부장 등 계속 체육계에서 일했다. 고려대 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