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2 03:25 (수)
[김성희의 역사갈피] 600년 전 한양에 '미아보호소' 등장
[김성희의 역사갈피] 600년 전 한양에 '미아보호소' 등장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3.07.1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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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서울시청격인 한성부는 미아를 발견즉시 제생원서 돌보도록 조치
건국초기 한양의 주택난 심각해 다닥다닥 집 지어 집 못 찾는 어린이 속출
600년도 더 전에 서울에 미아를 보호하고, 양육하고, 찾는 시스템이 있었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개인적으로 역사를 읽는 재미의 으뜸은 '어!'하는 사실을 발견할 때다. 미아보호소부터 코끼리 유배까지 조선 초의 다양한 생활문화 이야깃거리를 뒤져낸 『15세기 조선 사람과 만나다』(신동훈 지음, 푸른역사)는 그래서 반갑다.

조선조 4대 임금 세종이 즉위했던 1418년 오늘날 서울시청이라 할 수 있는 한성부에서 보고서를 올린다.

"…모든 집 잃은 어린아이를 발견한 자는 모두 제생원(濟生院)에 보내도록 하고, 호조에서 양식을 대어 기르도록 하며, 어린아이를 잃은 부모는 제생원에 가서 찾도록 하고, 관은 그 부모로부터 저화(楮貨) 30장을 받아 어린아이를 데려온 사람에게 주도록 하십시오.…"

세종은 한성부의 건의를 시행하도록 했으니 이는 오늘날로 치면 '관영 미아보호소'의 시작이다. 그런데 600년도 더 전에 서울에 미아를 보호하고, 양육하고, 찾는 시스템을 갖춘 데는 나름 사정이 있었다.

당시 한성이 어떤 곳인가? 고려에 이어 조선이 건국된 지 불과 20년, 양경제를 채택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새 나라의 수도로 정해진, 그야말로 신도시였다. 요즘에도 위성도시를 새로 건설하려면 막대한 물량을 들어가는데, 당시 조선의 입장에서 수도를 짓는 일은 국력을 온통 기울여야 하는 대역사(大役事)였다. 왕궁이며 관청, 종묘 등은 그렇다쳐도 백성의 집을 짓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음에 틀림없다.

사료에 바탕한 지은이의 추산에 따르면 1426년 한성에는 약 2만 호에 12만 명 정도가 거주했다. 한성이라야 지금의 종로·중구 일대인데 이 두 구의 현재 인구가 27만 명이라니 당시 신흥도시 한성의 주택난은 불 보듯 뻔했다. 세종 때인 1427년 백성들이 도성의 길을 침범하여 지은 집이 1만여 호에 이른다든가 1434년에는 백성들이 위험한 곳에 살다가 산이 무너져 압사당하는 사고가 발생하니 이들의 집을 옮겨주자는 실록의 기록이 이 같은 사실을 보여준다.

아무튼 이러다 보니 15세기 한성은 집이 모자란 모양이다. 그러니 "집 잃은 아이를 발견한 사람도 그 아이 집을 찾아 주지 못하며, 혹 간악한 사람들은 길 잃은 아이를 몰래 숨겨두고 노비로 삼는" 경우도 있어 한성부가 '미아보호소'를 건의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미아를 숨겨두고 고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이(里)의 관령(官領)과 오가(五家)를 아울러 처벌하는 연대책임제까지 도입했단다.

'역사 소비시대'라는 말도 나오지만, 역사란 정치나 위인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그득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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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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