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19세기 초 증기기관차 운행할 때 '철로 폭'을 마차 크기에 맞춘 게 표준형으로
지난 달 말엔 이래저래 로켓이 화제였다. 25일엔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3차 발사가 성공하며 우리나라도 우주강국 대열에 들었다 해서 기뻐한 것도 잠시, 이에 자극받은 듯 북한이 31일 위성을 발사했다. 한데 그날 새벽 서울시와 행안부가 경계경보 발령을 두고 소란이 벌어지고, 서해에 추락한 북한 위성의 잔해를 수거한다는 뉴스 등 관련 소식이 이어졌으니 말이다.
이를 보다가 '로켓은 말 엉덩이에서 비롯되었다는데…'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2005년부터 방영되었던 EBS의 독특하고 유익한 교양 프로그램 '지식 ⓔ' 내용을 정리한 『지식 ⓔ』 4권(EBS 지식채널ⓔ 지음, 북하우스)의 한 대목이 떠올라서였다.
책에 따르면 2007년 8월 8일 우주왕복선 엔데버 호가 발사될 때 일이다. 1992년 처음 우주비행을 시작한 엔데버 호는 2011년 24번째 임무를 마치고 '퇴역'한 우주 개척사의 성공 모델로 남은 우주왕복선이다.
아무튼 그날 발사를 위해 엔데버 호는 새로운 추진로켓을 장착해야 했는데 이는 미국 유타 주 공장에서 만들어졌다. 그 추진로켓을 플로리다 주에 자리 잡은 미 항공우주국 발사대까지 옮겨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기차로 옮겨야 했기에 기술자들은 열차 터널을 통과하기 위해 추진로켓의 크기를 열차선로 폭에 맞춰 설계해야 했다. 철로 폭이 4피트 8.5인치여서 이보다 더 크게 만들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참고로 이 철로 폭은 전 세계 철도의 60%가 이 표준궤간을 따른다고 한다.
철로 폭이 이렇게 통일된 데에는 사연이 있다. 19세기 중반 미국에는 주마다 다양한 너비의 철로가 존재했는데 남북전쟁에서 북군이 승리한 후 동북부 지역에서 채택했던 '영국형'이 표준 기준이 되었다. 한데 이 '영국형'이란 것이 19세기 초 영국이 증기기관차 운행을 시작하면서 석탄 운반용 마차가 다니던 길에 철로를 깐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니 철로 폭은 뜻하지 않게 마차 크기에 맞춘 셈이 되었는데 이 또한 영국의 '선택'은 아니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란 말을 낳을 정도로 도로 건설에 열심이었던 로마제국을 따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로마제국은 2,000년 전 유럽 대부분을 지배했으며 영국 또한 여기서 벗어날 수 없었으니 그 유제(遺制)를 따른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로마제국은 말 두 마리가 끄는 군용 전차(戰車) 폭에 맞춰 도로를 건설했다. 이후 유럽의 표준도로 폭은 말 두 마리의 엉덩이 폭에 맞춘 약 4피트 9인치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누리호에 쓰인 추진로켓이 어디서 제작되었는지, 크기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말 엉덩짝이 로켓의 크기를 제약했다는 사실은 누가 상상할 수 있을까. 역사는 때로 우연에 빚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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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