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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이 엮은 인류경제사] ⑬ 퍼플의 위력
[패션이 엮은 인류경제사] ⑬ 퍼플의 위력
  • 송명견(동덕여대 명예교수ㆍ칼럼니스트)
  • mksongmk@naver.com
  • 승인 2023.04.25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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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색물은 옛날엔 특권층의 전유물…색상으로 신분을 구분하는 건 동서양 다르지 않아
동양은 황색이 최고…서양에선 자색(紫色:보라색, purple)이 황제나 귀족들만이 사용
고대 지중해 연안의 패니키아 항구 티르선 2000개의 조개내장서 1g의 자색 염료 채취
세종실록"고관대작, 천민 '자색 옷'선호…염식비용 많이 들어 궁궐서만 자색사용 허용"

형형색색의 꽃들이 4월을 꾸미고 있다. 이 꽃들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움 속에서 인간들의 색채에 대한 갈망이 움텄을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아무 제약 없이 다양한 색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과거는 좀 달랐다. 염색물이란 특권층의 전유물이었고, 신분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색으로 신분을 구분하였던 것은 동·서양이 다를 바 없었다.

동양에서 황색이 최고의 색이었다면, 서양에서는 자색(紫色:보라색, purple)이 황제나 귀족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색이었다. 지금도 'born to the purple'이라는 숙어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는 뜻으로 쓰일 정도다. 물론 자색 자체가 아름답기도 하지만, 원료가 귀하고 쉽게 염료를 만들어낼 수 없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였을 것이다.

고대 서양에서 사용된 자색(紫色)은 주로 티르(Tyre)에서 생산되었다. 이곳의 자색이 얼마나 유명하였던지 'Tyrian purple'(티리아인의 자색)으로 불릴 정도였다. 티르는 지중해에 면한 패니키아의 항구 도시이다. 성서에 '두로'라는 지명으로 표기되는 곳이다. 고대어에 해박한 장국원 박사에 따르면 페니키아는 가나안과 같은 지명으로 보라빛, 보라빛 물감, 보라빛 비단 상인, 무역상 등의 뜻을 가진 헬라어이고, 가나안은 히브리어 명칭이라고 한다. '가나안'이 아브라함 때(창세기)부터 약속의 땅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일찍이 자색과 관련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과거 서양에서 자색(紫色:보라색, purple)은 황제나 귀족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색이었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그렇다면 이 신비의 자색(紫色)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티르(Tyre) 사람들은 지중해 연안에서 잡히는 조개(shell-fish)의 내장에서 원료를 채취했다.

2000개의 조개에서 염료 1g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하니, 옷 한 벌을 염색하려면 수천 개의 조개를 해부해야 했을 것이다. 티르가 항구도시로서 무역과 상업으로 번창했던 점을 고려할 때 자색 염료는 가까운 서방은 물론 멀리 동방으로까지 수출되었다. 자연스레 티르에는 이 염료 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부자들이 많았던 것 같다.

이렇게 귀한 색이 우리나라에서도 일찍이 사용되었다. 백제는 서기 260년 가장 높은 계급의 관복(官服)에 매는 허리끈의 색으로 자색(紫色)을 지정하였다. 신라도 2세기 후반에 관리의 공복을 네 가지 색으로 구분하면서 진골 이상만 자색(紫色)을 입도록 하였다.

이 자색의 관복은 고려를 거쳐 조선 왕조까지도 최고의 관리에게 입혀졌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자색은 황색 다음으로 격이 높은 색으로 동ㆍ서양에서 모두 귀하게 여겼다.

티르 사람들과 달리 우리 조상들은 지초(芝草) 또는 자초(紫草)라고 하는 식물에서 얻었다. 고려에 온 송나라 사신 왕운이 쓴 책 계림지(鷄林志)의 기록을 보면 고려에는 자초에 의한 염색 기술이 발달해 이것을 찧어 만든 염료로 물들이면 색이 '기묘'했다고 한다.

조선 시대 세종실록에도 고관대작에서 천민에 이르기까지 자색 옷을 좋아하고, 천 한필을 염색하는데 천 한필 값에 해당하는 비용이 들어간다며, 궁궐에서만 사용하도록 자색 사용을 철저히 금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를 거쳐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자색이 널리 사용되기도 하였던 것 같다. 하지만 자색 염료는 여전히 고가였고, 일반 대중의 접근은 물론 염색 기술의 발달까지 막는 결과를 초래했다.

다행히 19세기 중엽 인공 염료가 등장하면서 동서양에서 모두 '자색 갈증'이 해소되었다. 우연히 만들어진 최초의 화학 염료가 공교롭게도 신분을 가르던 바로 그 퍼플(紫色)이었다. 자색의 '귀하신 몸값'은 거기까지였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색의 평준화가 이루어졌다. 색의 민주화를 누리는 우리의 오늘날이 우연히 주어진 축복이 아님을 다시 절감시키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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