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1 12:00 (화)
[서명수의 이솝 경제학] ⓛ 늑대의 자유와 개의 안락
[서명수의 이솝 경제학] ⓛ 늑대의 자유와 개의 안락
  • 서명수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 sms085@naver.com
  • 승인 2023.04.12 23: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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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경제학자 칼 마르크스는 경제적인 부(富)를 '처분 가능한 자산'의 규모로 정의
집, 자동차 등 당장 팔면 돈이 되는 자산과 노동 시간 이외의 처분 가능한 시간도 포함
일과 자유는 둘 다 소유 할 수 없는 한계 … 늑대의 자유를 얻기 위해선 개처럼 살아야
한마디로 어느 한 쪽을 선택해도 '기회비용'이 발생…1970년대에 英서 '워라벨' 등장

기원전 6세기 그리스의 노예 이솝이 쓴 것으로 알려진 '이솝우화'는 인간의 심리를 동물의 행동에 투영한 우화집입니다. 이솝은 정글의 논리가 판치는 세상에서 약자가 살아가는 비법을 번득이는 재치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재치는 효율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인간의 생활 역시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만족감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게 그 목표입니다. 이솝우화 속 동물들의 행동에는 경제원리가 숨어 있습니다. 이솝우화를 읽으며 요즘 세상에서 나타나고 있는 경제 현상들을 풀어보고 합리적 경제행위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모색해봅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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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한 밤 비쩍 말라 배가 고픈 늑대가 통통하게 살이 찌고 털에는 윤기가 흐르는 개를 만났습니다. 늑대는 개에게 "나는 아무 것도 못 먹고 비쩍 말랐는데, 너는 어찌 된거니?" 개는 "나는 먹이를 찾지 않아도 돼. 아늑한 집에서 주인이 주는 먹이를 먹으면 되니까. 대신 그집에 도둑이 들어오지 못하게 지키는 거지." 늑대는 그건 자기도 할 수 있다며 주인을 소개해 달라고 졸랐습니다. 개는 늑대의 부탁에 "그래 같이 가자. 내가 주인님께 잘 말해볼께"라고 말했습니다. 주인 집으로 가는 도중 늑대는 개의 목에 있는 상처를 보고 궁금해서 물어봤습니다. 개는 목줄을 차서 생긴 상처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늑대는 가던 길을 멈추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개 목걸이에 묶여 그렇게 음식을 먹느니 아무 것도 먹지 않겠어. 비록 춥고 배고프더라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지금이 좋아."

일을 하려면 자유를 포기해야 하고 자유를 얻으려면 일을 줄여야 합니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br>
일을 하려면 자유를 포기해야 하고 자유를 얻으려면 일을 줄여야 한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산과 들에서 사는 늑대는 스스로 먹이를 구해야 생명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먹이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로는 사냥에 실패해 쫄쫄 굶어야 할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편안하게 주인이 주는 음식을 먹으며 윤택한 생활을 하는 개가 부러웠습니다. 하지만 그건 구속의 대가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이야기에는 나오지 않지만 개도 가난하지만 자유롭게 사는 늑대가 부러웠을지도 모릅니다. 먹는 문제만 해결된다면 아마 늑대를 따라나섰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모든 사람은 부자를 꿈꿉니다. 서점에 가보면 주식투자라든가 부동산으로 돈버는 법에 관한 책이 늘 베스트 셀러 목록 상위권을 차지합니다. 그러나 부자 꿈을 꾸는 사람이 많은 만큼 실제 부자가 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대다수의 사람은 그날 그날의 먹고 사는 문제에 매달려 살아갑니다. 학업 중인 자녀와 빚이 있고 노부모를 모시는 가정은 허리가 휘어집니다. 하루 하루 쫓기는 삶이 이어지다 보면 부자는 죽을 때까지 이룰 수 없는 꿈처럼 보입니다.

독일의 경제학자 칼 마르크스는 부라는 것에 대해 독특한 해석을 내놨습니다. 부에는 경제적인 것과 실질적인 것 두가지가 있다는 겁니다. 경제적 부란 처분 가능한 자산의 규모라고 정의했습니다. 집, 자동차, TV 등 당장 팔면 돈이 되는 자산이 바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경제적 부라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실질적 부는 노동시간 이외의 처분 가능한 시간을 의미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쉽게 말해 돈을 버는 데 투입되는 시간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부이고, 그런 시간이 많은 사람이 부자라는 이야기입니다.

이솝우화에서 개는 기업체 임원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대기업 임원은 보통 월급쟁이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임금이 높습니다. 하지만 밤늦도록 직장에 남아 실적을 올리기 위해 비지땀을 흘려야 하고 주말이나 휴일에도 제대로 쉬지 못합니다. 돈은 많이 벌지 모르지만 가처분 시간이 별로 없는 삭막한 삶입니다. 반면 늑대는 직장을 관두고 여행을 다니면서 자유롭게 사는 프리랜서의 삶을 닮았습니다. 기업체 임원 만큼 잘 살지는 못하지만 벌어놓은 돈을 여가를 즐기는 데 쓰면서 적당히 일도 합니다.

개와 늑대 중 누가 더 부자일까요? 경제적 부의 관점에서만 보면 개가 더 부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질적 부의 관점으로는 개는 가난합니다. 좋은 집에서 살고 주인이 주는 맛있는 밥을 먹지만 목줄은 단 채 하루종일 도둑 지키는 일이나 하고 쉴 시간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가처분 시간이 없는 겁니다.

반면 늑대는 야생에 살면서 개보다 맛좋은 음식을 못 먹지만 자유 시간이 많습니다. 사냥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을 자기 맘대로 쓸 수 있습니다. 늑대는 경제적인 부자는 아닐지 모르지만 실질적인 부자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우리는 개와 같은 경제적 부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부자가 되고 싶은 궁극적인 이유는 돈을 많이 벌어 직장에 매이지 않고 시간을 자유롭게 쓰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요즘 직장을 때려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젊은이가 늘고 있다고 하네요.

그러나 돈 없이 원하는 만큼 시간을 맘대로 쓰라는 것은 하나마나한 이야기입니다. 실질적인 부자가 되려면 경제적인 부를 축적하는 과정을 밟아야 합니다. 부모가 상당한 재산을 물려주지 않는다면 일을 해야 돈을 벌 수 있습니다. 돈은 곧 자유를 가져다줍니다. 늑대의 자유를 얻기 위해선 개처럼 살아야 하는 건 그래서입니다.

따지고 보면 일과 자유는 선택의 문제이지요. 둘 다 가질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일을 하려면 자유를 포기해야 하고 자유를 얻으려면 일을 줄여야 합니다. 한마디로 '기회비용'이 발생합니다. 기회비용을 될 수 있는 한 줄이는 게 합리적인 경제생활이겠죠.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뜻의 'work', 'life', 'balance' 세단어를 합성한 '워라벨'이 1970년대 영국에서 직업을 고를 때 중한 고려 사항으로 등장한 배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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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성균관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코리아헤럴드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중앙일보에서 20년 넘게 금융·증권 분야를 취재, 보도하면서 이코노미스트 편집장, 재산리모델링센터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여러 매체에 금융시장, 재테크, 노후준비 등의 주제에 관해 기고도 했다. 저서로는  <2012 행복설계리포트>, <거꾸로 즐기는 1% 금리(공저)>, <누구나 노후월급 500만원 벌 수 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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