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9 05:20 (월)
[김성희의 역사갈피] 경제 대공황 속 보호무역 '자충수'
[김성희의 역사갈피] 경제 대공황 속 보호무역 '자충수'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3.04.10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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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후버 대통령, 국산품 더 사면 공장형편 나아질 것이라고 '오판'해 관세 장벽 높여
유럽등이 보복관세 물리자 무역량 크게 줄고 실업자 넘쳐나 곳곳서 굶주림 아우성
보호무역 경쟁이 제2차 세계대전의 한 원인…정치가들의 단견(短見)이 빚은 참사
1929년 10월 29일 훗날 '검은 목요일'로 불린 주가 대폭락 사건이 터지면서 미국 경제는 수렁으로 빠졌다. 사진(허버트 후버 미국 제31대 대통령(왼쪽))=주한미국대사관 및 영사관/이코노텔링그래픽팀.

낙원이 문앞에 와 있는 줄 알았다. 1929년 미국 상황이 그랬다. 그해 3월 제31대 대통령에 취임한 허버트 후버의 선거 캠페인 구호는 "모든 미국인의 차고에 자동차를! 모든 미국인의 식탁에 닭고기를!"이었다.

그럴만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 되면서 국제정치의 리더로 자리를 굳혔고, 포드 시스템 도입 등 기술혁신으로 대량생산되는 공산품이 흘러넘쳤다.

그러나 불과 7개월 후인 10월 29일 훗날 '검은 목요일'로 불린 주가 대폭락 사건이 터지면서 미국 경제는 수렁으로 빠졌다. 대공황의 시작이었다. 사태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꼽히지만 수요 부족이 가장 유력했다. 어쨌든 1932년 미국의 실업자는 1,200만 명을 넘어서고 노동자 임금과 무역 거래량은 3분의 1로 격감했다. 곳곳에서 굶주린 사람들이 아우성을 쳤다.

이 경제 나락에 후버 대통령이 생각해낸 것은 관세 장벽이었다. 고관세로 수입품 가격이 높아지면 미국인들이 국산 제품을 더 살 것이고, 그러 공장이 돌아가고 임금이 풀리고 결국 경제난이 풀린다는 그런 구상이었다. 이에 따라 후버 대통령이 속했던 공화당의 상원의원 리드 스무트와 하원의원 윌리스 홀리는 1929년 최고 40퍼센트였던 관세율을 1932년 무려 59퍼센트까지 올리는 이른바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을 만들었다.

당초엔 농가를 보호하기 위해 농산품에만 부과하려던 것이었으나 기업들이 "농업만 산업이냐! 우리도 보호해 달라"고 강력한 로비를 펼친 끝에 2만여 종의 수입품에 고율의 관세를 매기는 것으로 바뀌었다.

결과는 의도와 달리 처참했다. 대부분의 유럽산 수입품 가격이 15퍼센트 가까이 오르자 미국산 제품의 수요가 늘긴 했다. 하지만 유럽 국가들이 그저 당하고 있을 리 없었다. 당시 미국의 가장 큰 교역 상대국이었던 캐나다를 시작으로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이 미국 상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했다. 당연히 가격경쟁력을 잃은 미국산 제품은 유럽에서 맥을 못 췄고 결국1932년 미국의 대유럽 수출은 1929년 수준의 3분의 1로 줄어들었다.

여기에 대공황으로 주머니가 가벼워진 미국인들의 소비도 위축되면서 미국 기업들은 수출과 내수의 동반 부진이란 악순환에 시달려야 했다. 전쟁을 방불케 한 이런 보호무역 경쟁이 제2차 세계대전의 한 원인이 되었으니 정치가들의 단견(短見)이 세계 경제와 인류사에 던진 '자살골'의 후폭풍은 엄청났던 셈이다.

오랫동안 경제 분야를 취재해온 언론인이 쓴 『경제전쟁의 흑역사』(이완배 지음, 북트리거)에 실린 이 이야기를 보니, 요즘 미국이 주도하는 각종 대중(對中) 경제 견제구와 우리 경제정책의 난맥상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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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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