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령 ' 루이지애나 '로 대거 이주해 사탕수수 산업 다시 일으켜
아이티 혁명에 데여 아메리칸대륙에 흥미 잃은 나폴레옹이 땅 매각
장하준 "프랑스, 미국 땅 포기 안했으면 미국은 슈퍼파워 안됐을 것"

1791년 중미의 생도맹그에서 노예들의 반란이 일어났다. 현재는 아이티공화국인 이 섬에서는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아프리카인들이 프랑스인 지주들의 사탕수수 농장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리던 상태였다.
투생 루베르튀르의 지휘 아래 일어난 첫 번째 반란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1804년 장자크 데살린의 주도로 일어난 두 번째 반란은 프랑스 세력을 축출하고 독립을 선포하는 성공을 이뤘다.
한데 이 '아이티 혁명'은 서양사에서 뜻밖의 파장을 일으켰다. 생도맹그에서 쫓겨난 프랑스 지주들은 현재의 미국 루이지애나주 쪽으로 대거 이주했는데 당시 프랑스령이었던 그곳은 마침 사탕수수 재배에 적합한 기후였다. 프랑스 지주들은 거기서 설탕 산업을 다시 일으켜 50년 후에는 사탕수수로 만든 전 세계 설탕의 25%를 차지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사건'은 당시 프랑스 지도자 나폴레옹이 미국에 루이지애나를 팔아넘긴 것이었다. 루이 14세의 이름을 따서 루이지안이라 불리던, 북아메리카 대륙의 프랑스령은 현재 미국 영토의 3분의 1에 달하는 광대한 땅이었다. 나폴레옹은 아이티 혁명으로 데인 나머지 아메리카 대륙에 흥미를 잃고, 지금으로 치면 북서쪽의 몬태나주에서 남동쪽의 루이지애나주까지 이르는 땅을 미국에 팔아치웠다.
이 영토 구입으로 미국 영토는 단번에 거의 두 배로 늘어났으며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디딤돌을 확보한 셈이 되었다. 이어 1846년 영국으로부터 오리건준주를, 멕시코전쟁(1846~1848)의 승리로 현재의 캘리포니아주, 텍사스주 등이 포함된 멕시코 영토의 3분의 1을 헐값에 구입함으로써 '대국'이 되었으며 이는 미국이 '강대국'으로 뻗어가는 발판이 되었다.
이런 내용은 장하준 교수의 신간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부키)에 나오는데, 지은이는 "노예로 살던 아이티 사람들이 혁명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프랑스가 북아메리카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랬을 경우 미국은 현재의 동쪽 3분의 1 정도 크기만 차지하는 나라에 그쳐 지금과 같은 국제정치의 '슈퍼 파워'가 될 수 있었을지 불확실하다고 지적한다.
역사의 흐름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시각이랄 수도 있다. 하지만 '레이디스 핑거'라고 불리는, 아프리카 동북부의 아열대 채소 '오크라'를 화두로 삼아 신대륙으로 끌려가 노예 생활을 했던 아프리카인 1,200만 명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날 미국과 유럽의 경제는 없었을 것이라는 설명은 꽤나 설득력 있다.(오크라는 노예무역의 부산물로 신대륙에 전파되었단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자유시장주의자들이 내세우는 '자유'가 오로지 경제적 자유에 한정되어 있다는 결론으로 끌어가는 지은이의 내공은 "역시, 장하준!"이란 감탄이 나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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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