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15:40 (토)
[패션이 엮은 인류경제사] ⑫ 넥타이의 역사
[패션이 엮은 인류경제사] ⑫ 넥타이의 역사
  • 송명견(동덕여대 명예교수ㆍ칼럼니스트)
  • mksongmk@naver.com
  • 승인 2023.04.04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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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쟁 때 용병으로 파리에 온 '크로아티아 기병대' 목에 둘렀던 천에서 유래
사랑과 배려의 상징…김대중대통령, 청와대서 '바이든 상원의원'과 넥타이 교환

인간이 목에 무엇인가를 감기 시작한 것은 언제일까. 의류학자인 Kerr와 Lester는 고대 원시인들이 사자의 이빨이나 발톱 같은 전리품(트로피)을 목이나 허리에 걸면서부터였다고 주장한다.

전리품은 싸움에서 이긴 사람만이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승리한 사실과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싶어 목에 걸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개껍질 같은 것도 고대인들의 목걸이로 이용되었던 것으로 보아 꼭 전리품만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목에 무엇인가를 걸기 시작한 역사는 매우 길다는 점이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목을 감던 물건은 네 가지 형태로 분화되었다. 목걸이, 칼라, 머플러 그리고 넥타이다. 발생 순서로 보면 목걸이, 칼라, 머플러형 목장식 그리고 넥타이라고 할 수 있다. 머플러 형 목장식의 출현은 고대 로마에서였다. 로마 군사들이 전쟁에 나아갈 때 보온하기 위해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양모로 만든 '포칼'(focal, 목에 감는 장식)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일상용은 아니었다.

직접적인 넥타이(necktie)의 기원은 17세기의 '크라바트'(cravate)에 둔다. 이는 루이 14세 시대 30년 전쟁에서 용병으로 파리에 온 크로아티아(croate) 기병대들이 목에 둘렀던 부드럽고 색이 있는 천에서 유래한다. 프랑스에선 크로아티아 사람들을 '코로아뜨'라고 불렀고, 이는 넥타이를 뜻하는 '크라바트'가 되었다. 크라바트는 1650년 무렵 프랑스 상류사회에 등장하였고, 이어 1660년경부터 일반화하기 시작하였다.

넥타이의 참 의미는 멋내기 수단이나 장식을 초월하여,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상징물이었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넥타이'라는 말은 1830년경, 영국이 크라바트 대신 이를 사용하면서부터였다. 이때의 넥타이는 크고 풍성하게 목을 감싸는 크라바트 형태가 아니라 다양한 소재를 넓은 끈 모양으로 만들어 목에 두르는 형태로 변화해 있었다. 19세기 중반에 오늘날과 같은 긴 넥타이 형태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1890년에는 '더비 타이'(derby tei, 길게 매어 늘어뜨리는 넥타이) 또는 '포어 인 핸드'(four in hand) 라는 명칭도 등장했다.

포어 인 핸드는 오늘날의 남자용 긴 타이를 말한다. 이런 명칭으로 불린 것은 길이가 매듭에서부터 손 폭의 네 배 길이였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지금도 남성들이 넥타이를 맨 후 완성된 길이가 알맞은지에 대해 신경을 쓰는 것을 종종 본다. 당시 남성들도 목에 맨 넥타이의 길이 때문에 신경을 썼던 것 같다.

이 넥타이의 길이 때문에 구설에 오른 정치인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그런 경우다. 그는 대통령 취임식에 사타구니 가까이까지 늘어진 넥타이를 하고 나타났다. 그 넥타이가 바람에 날리면서 옷에 고정시키려고 붙인 테이프가 노출되면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도 하였다.

넥타이는 사람의 얼굴 바로 밑, 그리고 앞 중심에 있으므로 타인에게 주는 상징성이 매우 강하다. 이 때문에 역사적으로는 군대, 클럽 등 집단을 상징하기도, 개인의 감정이나 의지를 나타내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정치 외교적으로 성패를 가리는 막강한 힘을 행사하기도 하였다. 정치 지도자들이 이별의 순간 넥타이를 풀어 바꾸어 매며 석별의 정을 확인하고 나누기도 하였다.

고(故) 김대중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넥타이 교환도 개인 간 감정을 넘어 한국과 미국 양국 관계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넥타이의 위력은 결코 가벼이 볼 수 없다. 2001년 8월 11일 바이든이 상원 외교위원장 자격으로 청와대를 방문해 김대중 대통령과 만나 오찬을 함께 했다. 그 자리에서 바이든이 김대중 대통령의 넥타이를 마음에 들어 하자 두 사람은 서로 자신의 넥타이를 풀어 교환한다. 당시 김 대통령의 넥타이에는 수프 자국이 묻어 있었다. 바이든은 이에 개의치 않고 오히려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의 상징'이라고 하면서 소중히 보관했다고 한다.

넥타이는 그동안 보수적이던 남성복에서 독자적인 컬러 감각이나 개성을 과시하며 남성들의 멋내기 포인트가 되었다. 나아가 남성 복장을 최종적으로 완성하는 빠질 수 없는 중심 역할을 수백 년 동안 해왔다. 그 넥타이 착용이 코로나 사태 이후 현저히 줄었다. 격식을 차리던 과거 의생활이 간편한 캐주얼로 전환하면서 넥타이의 입지가 좁아진 것이다. 하지만 넥타이의 참 의미는 멋내기 수단이나 장식을 초월하여,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상징물이었다고 강조하고 싶다.

분명한 것은 아직도 우리 뇌리 속에는 상대에 대한 배려와 성의를 다한 넥타이 차림의 멋진 남성상이 넓고 깊게 자리하고 있다. 더구나 넥타이는 사랑하는 사람끼리 가장 많이 주고받는 선물의 중 하나이다. 넥타이를 맬 때의 감미로움이나 기쁨, 그리고 매고 있는 동안 그 체취가 순간순간 행복을 느끼게 해준다. 찾기 어려워질수록 가치가 더해가는 보물처럼 '사랑의 넥타이'로 삭막해가는 삶에 위로와 활기를 넣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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