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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사채동결과 성장통㊦ 김용환의 '경주개발계획'
■8.3사채동결과 성장통㊦ 김용환의 '경주개발계획'
  • 고윤희 이코노텔링 기자
  • yunheelife2@naver.com
  • 승인 2019.08.06 12: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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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호텔 등 장소 번갈아 바꾸며 ' 비밀 아지트'서 '8.3 사채동결' 추진안 매듭
34세에 '요직중의 요직'이재국장 지내며 박정희 대통령의 눈에 들어 승승장구
DJP연합 밑그림… 박근혜 대통령에게 '최순실 멀리하라'직언 후 관계 멀어져

경제가 꺾어질 위기에 처하자 박정희 대통령은 기업이 원하는대로 사채동결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일순 청와대에 비장한 분위기가 흘렀다. 경제를 일으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것을 시대적 사명으로 여겼고 또 그게 박 대통령의 ‘통치 이데올로기’아닌가.

8.3사채동결 조치가 발표되자 그날 국세청은 사채신고를 독려하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기간은 일주일이다. 8월3일부터 9일까지. 기간을 표시하는 자와 지란 한자 표현이 눈길을 끈다. 자(자)는 부터이고 지는 까지라는 뜻이다. 당시 30대 후반의 김용환은 이 조치를 비밀리에 완수해 박대통령의 신임이 더 두터워졌고 이후 차관과 재무장관으로 승승장구한다/경제기획원 '한국경제 30년' 발췌
8.3사채동결 조치가 발표되자 그날 국세청은 사채신고를 독려하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기간은 일주일이다. 8월3일부터 9일까지. 기간을 표시하는 자와 지란 한자 표현이 눈길을 끈다. 자(自)는 부터이고 지(至)는 까지라는 뜻이다. 당시 30대 후반의 김용환은 이 조치를 비밀리에 완수해 박대통령의 신임이 더 두터워졌고 이후 상공차관과 재무장관 등으로 승승장구한다.

그런데 경제가 망가지면 박대통령의 통치기반은 순간 무너질 게 뻔했다. 박 대통령은 그간 눈여겨 봤던 김용환 외자담당 청와대 비서관을 조용히 불렀다. 그는 34세에 요직 중의 요직인 재무부 이재국장을 지낸 엘리트 공무원이었다. 당시는 ‘관치(官治)금융’시절이라 이재국장은 시중은행은 물론 한국은행에 대해서도 입김이 셀 때다. 더구나 김용환은 입이 무겁고 사리판단이 분명해 박 대통령의 총애를 받았다.

“임자가 해결할 일이 있어. 비밀이 새 나가면 다 죽어. 기업들이 야단인데 다른 방법이 없어. 사채동결를 해야 겠어.” 이 일을 아는 이는 남덕우 재무부장관과 장면 정권시절 재무부장관을 지낸 김영선 통일부 장관 등 극히 소수뿐이었다. 대통령집무실을 나선 김 비서관은 재무부와 한국은행의 에이스들로 팀을 꾸렸다. 프로젝트의 이름으로 ‘경주종합개발계획’이란 간판을 내걸었다.

본격적인 작업은 8.3 사채동결 조치가 이뤄진 1972년 그해 3월 말 무렵이다. 비밀이 새면 나라경제 파산은 시간문제였다. 사채환수 바람이 불 것이고 기업들은 속절없이 쓰러질 것이다.그러면 실직자들은 도시를 메울 것으로 판단됐다. 외국인 투자는 말할 것도 없었다.

특히 1972년은 오일쇼크와 세게경제 침체로 인해 작은 나라 한국의 경제는 훅 불면 날아갈 처지였다. 외화보유고는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오죽하면 IMF의 외화 지원을 요청해야한다는 일각의 의견도 있었을까. 그러면 ’박대통령의 ‘자주국방, 자주경제‘의 기치는 퇴색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중앙정보부가 약간 낌새를 차린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들렸다. 당시 요인들의 출입이 많은 호텔과 요정에는 중정이 심어놓은 사람들이 있었다. 더구나 중앙정보부가 있던 서울 남산과 가까운 곳인 회현동의 ’뉴남산관광호텔‘에 아지트를 마련했으니 그럴 법도 했다.

김용환 비서관(팀장)은 “누군가 우리의 활동을 지켜보는 것 같다. 다행히도 우리가 무슨일을 하는지 모르는 것 같으니 일단 자리를 옮기자.” 이 말 한마디에 비밀 호텔방은 갑자기 법석을 떨어야 했다.미리 사표를 써놓고 합류한 일부 관리들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목숨을 걸고 비밀을 지키자”고 다짐했기에 다음에 모일 장소만을 확정해 놓고 일단 헤어졌다. 그렇게 아름 아름 모여 프로젝트 초안이 완성되자 청와대와 대통령 보고일정을 타진했다. D데이는 여름휴가 일정이 끼어있는 8월이 좋겠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외국인투자업체의 코리아데스크들도 ’한달 정도의 바캉스‘를 떠날 때였다. 박 대통령도 7월 말에 가족들과 함께 휴가를 떠나 관가 분위기도 약간 느슨 해졌다.

 8.3사채동결조치 발표를 하루 앞둔 2일 국무위원들에게 소집령이 떨어졌다. 서울 삼청동에 있는 국무총리공관에서 저녁을 함께 먹자는 전갈이 왔다. 국무위원들을 태운 차량이 삼청동쪽으로 꼬리를 물 무렵 보슬비가 내렸다. 술 한잔 하기에는 분위기가 그럴듯한 날씨라며 일부 국무위원들은 편한 마음으로 집무실을 떠났다..

사체동결 프로젝트를 추진하던 멤버들은 모두 사표를 쓰고 비밀을 엄수했다. 장관들은 영문도 모른채 총리공관에서 저녁을 먹다가 10시무렵 청와대의 호출을 받고 청와대 국무회의에 참석했고 사채동결을 위한 대통령 긴급 명령권 의결안은 8월2일 저녁 자정이 다 된 시각에 통과됐다/이코노텔링 그랙픽팀
사체동결 프로젝트를 추진하던 멤버들은 모두 사표를 쓰고 비밀을 엄수했다. 장관들은 영문도 모른채 총리공관에서 저녁을 먹다가 10시무렵 청와대의 호출을 받고 청와대 국무회의에 참석했고 사채동결을 위한 대통령 긴급 명령권 의결안은 8월2일 저녁 자정이 다 된 시각에 통과됐다/이코노텔링 그랙픽팀

만찬의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전 국무위원은 청와대로 들어오라’는 급보가 날아왔다. 사실은 미리 짜놓은 각본중의 하나였으나 대부분의 국무위원들은 ‘무슨일이냐’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소집시각이 밤 10시가 다 될 즈음이다. 일부 국무위원은 술을 한잔 걸치는 바람에 얼굴이 빨개진채로 청와대로 향했다. 자정이 가까울 무렵 사채동결이란 대통령의 긴급명령권‘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이렇게 해서 ’8.3 사채동결‘조치는 절차상 큰 탈이 없이 이뤄졌고 기업들은 환호했다. 숨 넘어가던 기업의 자금담당 임원들은 만세를 불렀다고 한다. 그만큼 기업들은 사정이 어려웠다. 이자로 원금의 50% 가까이를 매년 냈다. 아무리를 사업을 잘해도 이자 갚기가 어려웠다. 김용완 전경련 회장이 박 대통령에게 독대를 신청해 “고리 사채 때문에 기업들이 다 죽게 생겼다”고 말한 게 허언은 아니었다.

김 비서관은 이후 승승장구했다. 청와대를 나오자 상공부 차관, 재무부 차관 자리가 연달아 주어졌다. 이후 남덕우 경제부총리 아래서 재무부 장관을 하며 사채동결 조치의 후속책으로 기업공개를 독려했다. 또 부가가치세 도입 등 세제개혁을 꾀했고 박정희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을 뒷받침하는 정책을 잇따라 내놨다. 부가세 도입직후인 ’78년에 치러진 총선‘에서 야당에게 득표율에서 밀리자 장관직에서 내려왔다. '꾀주머니' 또는 '3공의 경제두뇌'란 별칭을 들었던 김용환 전 재무장관은 이후 정계에 투신해 4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DJP연합의 밑그림을 그려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을 도우며 김종필 전 총리와 협력 했으나 말년엔 김 전 총리와 담을 쌓고 살았다. JP의 정치행보와 거리를 둔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를 돕는 '원로 7인회의‘의 좌장을 맡았다. 

직언을 서슴지 않다가 박근혜 대통령과도 소원해지고 말았다고한다. 최순실과 관계를 청산하라고 조언했다는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감옥에 들어간지 두달여 만인  2017년 5월7일 세상을 떠났다. 공직생활내내 큰 잡음이나 스캔들이 없었던 그는  지금도 닮고 싶은 ’공직자의 표상‘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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