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7:25 (토)
'무한 창의'의 표상 정주영 서거 22주기
'무한 창의'의 표상 정주영 서거 22주기
  • 이코노텔링 성태원 편집위원
  • iexlover@hanmail.net
  • 승인 2023.03.21 2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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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 경제의 밑돌 놓은 헌신의 리더십…"이봐, 해봤어?" 무한 긍정 마인드의 상징어
무(無)에서 유(有)를 개척해낸 도전정신과 실패를 상쇄하고도 남는 창의성 본받을만
현대 창업자인 고(故) 아산(峨山) 정주영 명예회장의 22주기를 하루 앞두었던 20일 저녁 범현대가 후손들이 고인의 옛 청운동 자택(서울 종로구)에 모여 고인을 기리며 제사를 지냈다. 사진=현대그룹/이코노텔링그래픽팀.

현대 창업자인 고(故) 아산(峨山) 정주영 명예회장의 22주기를 하루 앞두었던 20일 저녁 범현대가 후손들이 고인의 옛 청운동 자택(서울 종로구)에 모여 고인을 기리며 제사를 지냈다.

범현대가 후손들이 이처럼 한자리에 모인 것은 지난해 정 명예회장의 부인 고 변중석 여사의 15주기 제삿날 이후 7개월 만으로 알려졌다.

이날 제사에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장손)을 비롯해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6남),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7남), 정몽선 성우그룹 회장(조카), 정몽원 HL그룹 회장(조카), 정몽석 현대종합금속 회장(조카), 정몽혁 현대코퍼레이션그룹 회장(조카), 정기선 HD현대 사장(손자), 정대선 HN 사장(손자),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며느리) 등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부인 정지선 씨, 정대선 HN 사장 부인 노현정 전 KBS 아나운서 등 손자며느리들도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옥빛 한복을 입고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현대가에는 평소 여인들의 외부 노출을 꺼리는 가풍이 있어 이날 그들의 참석이 더욱 주목을 받았다. 현대가 최고 안방마님으로 생전 공식 석상에서 한복을 주로 입었던 고 변중석 여사의 복장 철학을 그들이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는 점도 여전히 화젯거리였다.

지난 코로나 기간 3년 동안 후손들이 시간대를 나눠 차례로 제사를 지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한꺼번에 모여 제사를 지내게 돼 참석자들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다.

이들 범현대가 후손들은 21일을 전후해서 경기도 하남시 창우동 선영을 찾아 고인을 참배할 것으로 전해졌다. 권오갑 HD현대 회장 등 HD현대그룹 고위 간부들도 지난 18일 선영을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제사가 열린 서울 종로구 청운동 자택은 정 명예회장이 생전에 무척 아꼈던 집이다. 2019년 3월 당시 장손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부친 정몽구 회장으로부터 소유권을 물려받았고 지난해부터 이곳에서 제사를 지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주영 타계(2001년 3월 21일·86세) 직후인 2002~2015년엔 청운동 자택에서, 2016년부터 한참 동안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 정몽구 회장 자택에서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한국의 많은 재벌 가문 중 범현대가처럼 고인이 된 창업자의 제사가 언론의 보도 대상이 되는 예는 그리 흔치 않다. 현대 창업자 정주영이 한국의 경제발전과 정치권에 끼친 영향이 그만큼 컸다는 반증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일제 강점기인 1915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 아산리에서 빈농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소학교 졸업이 전부였던 그는 무한한 도전정신으로 현대를 창업, 이를 한국 재계의 선두 기업군으로 키워냈다.

그의 86년 인생 중 기업인 이력은 대개 60년쯤 된다. 1940년 자동차 수리점 아도(Art)서비스 인수 운영 때부터 1992년 통일국민당을 창당해 정치에 입문하기 전까지가 현대를 직접 키운 시기다.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에 통일국민당 후보로 출마해 낙선하고 후선으로 물러난 다음부터는 현대와 우리나라 전체에 필요한 큰 그림을 그리며 살았다. 정치인으로 산 것은 2년 정도에 불과했다.

말년(1993~2000년)에도 정·재계를 넘나들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두 차례의 소떼 방북(1998년)과 북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과의 경협 논의, 금강산 관광단지 개장에 따른 대북 사업 착수(1999년), 현대그룹 분가 작업 등이 그것이다.

사업 스케일이나 일 처리 면에서 그는 보통 기업인들과 판이하게 달랐다. 거침이 없었다고나 할까. 당시 금기시됐던 북한을 넘나들었고, 시베리아 개발을 명분으로 수교도 안 된 옛 소련을 왔다 갔다 했다.

"이봐, 해봤어?" 이 말은 '정주영 리더십'의 핵심 키워드다. 무한한 긍정 마인드와 무(無)에서 유(有)를 개척해낸 도전정신, 실패를 상쇄하고도 남는 창의성 등을 함축해서 표현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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