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4:55 (금)
[패션이 엮은 인류경제사] ⑪ 메디치 가문과 패션
[패션이 엮은 인류경제사] ⑪ 메디치 가문과 패션
  • 송명견(동덕여대 명예교수ㆍ칼럼니스트)
  • mksongmk@naver.com
  • 승인 2023.03.10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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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로 시집가 왕비가 된 가문의 두 여인,복식문화에도 지대한 영향
목 주변을 장식한 러프(Ruff)는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패션아이템
턱을 위로 올리고 거만한 자세가 만들어져 사회적 지위와 부의 상징역

르네상스를 꽃피운 이탈리아 상업도시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 이야기는 소설 같은 실존의 역사다.

평민 가문이 15~16세기 유럽 사회에서 철저했던 계급사회의 벽을 넘어 인구 30만명의 작은 도시 피렌체를 세계적인 문화예술 도시로 성장시킴은 물론 여러 교황(레오 10세, 클레멘스 7세, 레오 11세)과 2명의 프랑스 왕비를 배출하는 전설을 이뤄냈다. 뿐만 아니라 무역과 금융업으로 쌓은 경제적 성과를 밑받침으로 대를 이어가며 단테, 미켈란젤로, 갈릴레이, 마키아벨리, 그리고 라파엘로 루벤스 같은 천재적인 인재들을 후원하여 인류 문명사에 위대한 문화적 자산을 남기게 하였다.

프랑스로 시집온 메디치 가문의 두 여인들도 권력의 중심에서 왕비의 몫을 당당히 감당하였다. 프랑스 요리부터 포크와 나이프 등 식탁 예절, 귀족사회의 에티켓, 발레, 그리고 패션리더로 복식문화에 이르기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때문에 찬란한 프랑스 문화를 세우기 위해 일생을 바친 공로자로 평가되기도 한다.

대형화한 부채 꼴 러프 칼라를 가장 우아하고 아름답게 착용하며, 전 유럽에 유행 시킨 사람은 메디치 가문의 마리 데 메디치 (Marie de 'Medici)였다.

유럽의 15~16세기는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문학ㆍ미술ㆍ건축ㆍ자연 과학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유럽 문화 근대화의 사상적 원류가 되었던 시대이다.

복식에서도 혁명적 변화가 일어났다. 중세에는 옷으로 몸을 가렸다면, 이 시대에는 인체의 곡선을 최대한 살려 내보이는 스타일로 바뀌었다.

어깨는 더 넓게, 허리는 더욱 가늘게, 궁둥이는 더 커 보이도록 강조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동원하였다. 허리는 졸라매고, 어깨는 패딩으로 넓히고, 궁둥이는 패드나 커다란 틀을 넣어 부풀렸다. 목에도 '특별한 조치(?)'를 하였다. 이것이 바로 러프(Ruff)의 등장이었다.

러프(Ruff)는 르네상스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패션 아이템이었다. 처음에는 속에 입은 셔츠의 목 주변을 장식했던 프릴이 1540년대에 하나의 아이템으로 분리되면서 더욱 유행하였다.

러프는 아주 얇고 질이 좋은 아마포나 무명에 풀을 먹여 인두로 다리면서 연속된 S자형으로 주름 잡아 만든 칼라이다. 프랑스에 러프를 처음 소개한 사람은 바로 1533년 앙리 2세와 결혼한 메디치 가문의 신부 카테리나 데 메디치(Caterina de' Medici)였다. 시작부터 귀족들만이 착용한 매우 고급스러운 러프가 유행이 확장되고 지속됨에 따라 크기가 커지고 더욱 정교하고 아름답게 발전하였다. 초기의 작은 형태가 점차 큰 수레바퀴 형으로 대형화하면서 레이스로 장식하였다. 때문에 20~33cm 폭에 길이가 15m나 되는 긴 천이 필요한 경우도 있었다.

목에 러프를 두르면 턱을 위로 올리고 당당하고 거만한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어 러프는 착용한 사람의 사회적 지위와 부의 강력한 상징으로 통했다. 러프를 정교하고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특별한 대우를 받는 기술자를 따로 두었다. 그러나 크기가 커질수록 몇 시간씩 공을 들여 만든 러프가 땀이나 날씨로 인해 늘어져 오래 착용할 수 없었다.

요행히 1564년경 네덜란드에서 녹말풀이 개발되면서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 덕분에 네덜란드는 녹말 수출로 돈을 버는 특수를 누렸다.

대형화한 부채 꼴 러프 칼라를 가장 우아하고 아름답게 착용하며, 전 유럽에 유행 시킨 사람도 바로 메디치 가문의 마리 데 메디치 (Marie de 'Medici)였다. 1600년 앙리 4세의 왕비가 된 그녀는 학문과 예술, 그리고 보석에도 각별한 관심과 식견을 가지고 있었다. 남편이 죽자 8살인 아들 루이 13세 대신 섭정을 하면서 더욱 당당하고 예술적인 면모를 뽐냈다.

그녀가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루벤스 경(Sir Peter Paul Rubens)과 프란스 푸르 부스 더영거 등이 그린 초상화에서 전분풀이나 와이어로 심을 대어 부채꼴로 빳빳하게 세운 러프는 미의 극치를 보여준다. 1580년대에는 영국에서도 전분이 생산되었고, 당시 엘리자베스 1세도 전분 풀로 만든 부채꼴 러프 칼라를 즐겨 착용하는 멋쟁이였다.

후세 사람들은 이 아름다운 부채꼴의 러프 칼라를 프랑스의 메디치 여왕 캐서린과 마리의 이름을 따서 '메디치 칼라' 또는 '엘리자베스 칼라'라고 부른다. 러프 뿐 만 아니라 앙리 2세가 일찍 사망하고 섭정을 하게 된 카테리나는 잇따라 왕위에 오른 아들들이 죽자 1589년 일흔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검은 상복을 입곤 하였다.

이런 연유로 '검은 왕비'라는 별칭도 얻었다. 검은 색이 상복 색깔이 된 계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 옛날 메디치 칼라에 영감을 받은 작품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패션쇼를 할 때, 모델들이 관객에게 옷을 선보이기 위하여 걸어가는 길, 런웨이에 오르고 있다.

오늘의 한국은 5000년 역사에서 한 번도 누리지 못했던 경제적 여유와 문화적 전성기를 맞고 있다. 이제 한국에서도 이탈리아 메디치를 능가하는 가문의 탄생을 욕심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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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명견(동덕여자대학교 명예교수ㆍ칼럼니스트)
송명견(동덕여자대학교 명예교수ㆍ칼럼니스트)

송명견(동덕여자대학교 명예교수ㆍ칼럼니스트)= 40여년 동안 옷에 대해 공부하고 학생들을 가르친 의생활문화 전문가. 그 과정에서 '옷이 곧 사람이고 역사'라는 점을 발견하고, 이를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글을 쓰는 '옷 칼럼니스트'의 길을 걷고 있다. <패션 인사이트>를 시작으로 <아시아경제신문> <농촌여성신문> <강남 라이프>(서울 강남구청 소식지)에 동서고금의 옷과 패션산업을 주제로 글을 연재했다.

또한 <기능복>(1998년, 공저)부터 <바느질하는 여인이 그립다>(2006년), <옷, 벗기고 보니>(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 교양도서 선정), <옷은 사람이다>(2014년), <옷으로 세상 여행>(2018년) 등의 책을 저술했다. 그는 오늘도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사회의 모습과 시대적 가치'를 찾고자 고민한다.

서울대학교 농가정학과를 나와 이화여대에서 석사를, 중앙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덕여대 패션디자인학과 교수로 재임하며 일본 문화여자대학 연구교수, 영국 맨체스터대학 연구교수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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