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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이 엮은 인류경제사] ⑨ 패딩과 십자군 전쟁
[패션이 엮은 인류경제사] ⑨ 패딩과 십자군 전쟁
  • 송명견(동덕여대 명예교수ㆍ칼럼니스트)
  • mksongmk@naver.com
  • 승인 2023.02.08 14: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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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 막기 위해 솜 등을 넣어 누비는 바느질 기법,또는 그렇게 만든 옷을 가르켜
중국 또는 티베트의 기원설 있으나 우리나라에도 기원전부터 입었던 흔적 있어
전쟁때 철제갑옷 입은 십자군,사라센 입었던 가벼운 누비옷 때문에 졌다는 설도
요즘 몇 만원부터 1000만원에 이르는 제품도 나와 '패딩 계급도'라는 말도 돌아

재미있는 실험 결과가 있다. 미국의 두 학자(Renbourn & Rees)가 강철을 양모처럼 가늘게 잘라 솜으로 만들고, 그 솜을 직물 사이에 채워 넣은 후 양모 솜과 강철 솜의 단열효과를 측정하였다. 그 결과 강철은 양모보다 열 전도성이 100배나 더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실험에서는 불과 12%정도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어찌된 일일까.

올겨울 100만원이 넘는 프리미엄 패딩 매출이 지난해 겨울 대비 45~55% 증가했다며, 대형 백화점들이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 입고, 심지어 개들까지 이걸 입고 있으니 그럴만하다. 따뜻하고 가벼운데다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으니 '패딩 사랑'이 극에 이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유행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이른바 '패딩 계급도'라는 웃픈(웃기면서 슬픈) 표현까지 등장했다. 비싼 가격대부터 저렴한 가격대까지 패딩의 서열을 매긴 것이다. 몇 만원부터 1000만원까지로 가격 차이도 어마어마하다. 때문에 눈물을 삼켜야 하는 중고등 학생이나 부모들도 적지 않다. 오죽하면 "부모 등골 빼먹는 순위냐"는 한탄이 나왔을까. 씁쓸한 사회 현상이다.

패딩(Padding)이란 솜이나 오리털 같은 소재를 넣어 누비는 바느질 기법, 또는 그렇게 만든 옷을 말한다. 사진=몽클레르/이코노텔링그래픽팀.

패딩(Padding)이란 솜이나 오리털 같은 소재를 넣어 누비는 바느질 기법, 또는 그렇게 만든 옷을 말한다. 이런 옷을 '패딩'으로 부르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누빈 옷(padded coat)'이다. 패딩은 우리끼리만 통하는 콩글리쉬(Konglish)다.

패딩이 언제부터, 누구에게 입혀지기 시작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중국이나 티베트 등이 처음일 거라는 견해가 있으나, 아마도 추위를 막기 위해 자연발생적으로 곳곳에서 시작됐을 것이다.

고대 문명 발상지인 이집트나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에도 기원전부터 입었던 흔적이 있으니, 그 역사의 길이를 가늠하게 한다.

십자군이 전쟁에서 패배한 이유가 패딩 때문이라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다. 전쟁 중에 십자군들은 무거운 철제 갑옷을 입은 반면 사라센들은 비단을 누벼 만든 패딩 위에 철사로 엮은 가벼운 보호복을 입었기 때문에 몸을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어 이겼다는 것이다. 확인되지 않는 이야기지만, 패딩이 전쟁의 승패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음을 짐작하게 한다.

십자군전쟁이 끝나갈 무렵, 유럽에서는 누빈 옷이 매우 '중요한 옷'이 되었다. 전쟁 중에는 피부를 보호하기 위하여 강철 갑옷 밑에 누빈 옷을 받쳐 입었다. 갑옷을 입지 못하는 병사들은 가슴 보호나 추위를 막기 위해 마 부스러기나 왕겨 같은 것들을 넣어서 조끼처럼 만들어 입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후 14세기 중엽부터는 이 옷이 평상복이 되어 17세기 중반기까지 장장 300여 년 동안 서구 남성의 필수 의복으로 발전하였다.

마침내 그 유행이 끝나고, 패딩은 속옷의 일부나 옷의 형태를 강조하기 위한 부속으로 이용되다 점차 시선 밖으로 벗어난 듯했다. 그러다가 1936년, 스포츠용품을 팔던 미국인 '에디 바우어(Eddie Bauer)'가 패딩 기법을 이용하여 겨울 낚시를 할 때 입을 수 있는 방한용 재킷을 만들어내면서 현대적인 패딩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후 1952년, 프랑스의 캠핑 장비업체인 몽클레르가 추운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을 위해 다운을 넣어 만든 옷이 입소문을 탔고, 산악 원정대들의 '기능성 의류'로 주목받게 된다. 이어 패딩이 동계올림픽에 등장하면서 더욱 일반화되기에 이르렀다.

고가의 패딩류는 오리털(Duck Down)이나 거위 털(Goose Down)을 안에 넣어 만든다. 때문에 우리나라는 1년에 8000톤 정도의 오리털과 거위털을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한다. 그러나 패딩의 수요가 날로 증가하는 반면 중국에서의 생산량은 줄고 있어서 다운의 가격이 점점 오르고 있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털 뽑히는 오리와 거위의 처참한 생명이다. 털을 채취할 때 산 채로 이것들을 뒤집어 놓고 강제로 털을 잡아 뜯어낸다. 살점이 떨어져나가기도 한다. 거위의 경우 6주마다 한번씩 10번 정도 털을 뽑고 도살한다. 돈 앞의 잔인한 인간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동물보호단체들이 나서고 패션업체들도 다방면으로 개선 방안을 찾고 있지만 아직은 갈 갈이 멀어 보인다.

패딩의 충전재는 반드시 불쌍한 오리나 거위의 털이 아니어도 충분히 따뜻할 수 있다. 옷의 보온성이 원료에 따라 다르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옷 안에 정지해 있는 공기가 얼마나 많으냐가 더 크게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강철 솜의 보온력도 바로 솜 안에 공기를 모아 가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지금도 화학 솜을 넣은 패딩이 싼 값으로 공급되고는 있다. 보온력은 다소 떨어질 수 있으나 땀으로 습도가 높아지거나 비나 눈에 젖으면 화학 솜의 보온 기능이 다운보다 훨씬 좋아진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화학 솜이라 하여 완전한 답이 될 수는 없다. 이것들은 미세 플라스틱의 주범이 되기 때문이다. 진퇴양난이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오직 소비자들만이 쥐고 있는 건 아닐까. 물론 누구도 완전한 답을 찾긴 어렵겠지만, 신중한 선택을 해야 할 시점인 것은 분명하다. 소비자의 보다 현명한 소비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과연 패딩을 꼭 더 사야하는지, 그렇다면 어떤 것을 선택해야할지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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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명견(동덕여자대학교 명예교수ㆍ칼럼니스트)
송명견(동덕여자대학교 명예교수ㆍ칼럼니스트)

송명견(동덕여자대학교 명예교수ㆍ칼럼니스트)= 40여년 동안 옷에 대해 공부하고 학생들을 가르친 의생활문화 전문가. 그 과정에서 '옷이 곧 사람이고 역사'라는 점을 발견하고, 이를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글을 쓰는 '옷 칼럼니스트'의 길을 걷고 있다. <패션 인사이트>를 시작으로 <아시아경제신문> <농촌여성신문> <강남 라이프>(서울 강남구청 소식지)에 동서고금의 옷과 패션산업을 주제로 글을 연재했다.

또한 <기능복>(1998년, 공저)부터 <바느질하는 여인이 그립다>(2006년), <옷, 벗기고 보니>(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 교양도서 선정), <옷은 사람이다>(2014년), <옷으로 세상 여행>(2018년) 등의 책을 저술했다. 그는 오늘도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사회의 모습과 시대적 가치'를 찾고자 고민한다.

서울대학교 농가정학과를 나와 이화여대에서 석사를, 중앙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덕여대 패션디자인학과 교수로 재임하며 일본 문화여자대학 연구교수, 영국 맨체스터대학 연구교수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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