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명령이나 부서 명칭이 소통 가로막고 업무효율 떨어뜨려 업무 방식이나 조직 성격 공유를
회사 경영자라면 가령 영업팀에 "실적 부진 지역의 영업전략을 짜서 보고하시오"라고 지시했는데 보고받은 결과물이 전략은 커녕 개별 과제 수준에도 못 미쳤었던 경험을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때 경영자들은 "이것도 전략이라고 짜왔나? 이건 그냥 실행 과제 수준에 불과한데!"라며 실망을 하지만 사실 회사에서 잘 쓰는 '비전' '목표' '전략' '과제'라는 같은 단어의 뜻은 애매해서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그 의미를 달리 생각할 수 있다.
이는 비단 경영용어들뿐만 아니라 복지, 국익, 공공복리 같은 일상 단어들도 마찬가지이어서 선뜻 "그 뜻이 뭐다"라고 하기 힘들다. 어느 국어학자는 이렇게 애매한 단어들이 우리 말 어휘 총수의 70%를 차지한다고 한다.
문제는 이런 '애매함'이 사내 커뮤니케이션뿐만 아니라 일하는 업무방식, 조직, 권한과 책임 등 조직 곳곳에 스며들어있다는 점이다.
첫째, 업무방식의 애매함이다. 가령 내년도 매출계획을 세운다고 했을 때 어느 부서는 추세분석, 즉 과거성장률과 내년도 시장 전망을 이용해 간단히 플러스, 마이너스하기도 하고, 어느 부서는 제로베이스에서 모든 매출 요인을 분석하는 곳도 있다. 이렇게 부서별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집계된 회사 매출 목표가 실적과 차이가 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하겠다.
둘째, 부서 업무역할의 애매함이다. 도대체 이름만 보고는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팀들이 많다. 어떤 회사는 '전략사업팀' '전략기획팀' '기획사업팀' '사업전략팀' '기획전략팀' 등 이름이 비슷비슷한 팀들이 많아서 직원에게 오는 우편물이 매번 다른 팀으로 간다고 한다.
셋째, 권한의 애매성이다. 권한의 애매성은 주로 생색낼 수 있는 업무에서 발생한다. 가령 회사 성과급을 줄 때 성과를 집계하는 경영기획팀과 인건비를 지급하는 인사팀은 서로 자기 부서가 지급 주체가 되려 한다.
넷째, 책임의 애매성이다. 이는 권한의 애매성과는 반대로 사업 전망이 불투명할 때나 사고 발생 가능성이 있을 경우 떠오른다. 가령 성공 가능성을 예측하기 힘든 신규사업에 대규모 인원을 사업 초기에 투입할 때 사업을 준비하는 경영기획팀은 인원 결정업무를 인사팀에 미루고, 인사팀은 "신규사업 필요 인원수는 사업을 준비하는 부서인 경영기획팀에서 정해야 한다"며 미룬다. 나중에 사업 실패 시 인원 채용의 책임을 지기 싫어서이다.
이런 회사 내 애매함들을 해결하는 방법은 위에서 제시했던 문제들에 그 해답이 이미 있다.
첫째, 업무 부여를 명확하고도 세세하게 해야 한다. 막연히 "내년도 매출계획을 작성하여 제출하시오"가 아닌 "이런 방법으로 작성하라"고 구체적으로 지시하고 필요하다면 '작성샘플'까지 보내줘야 한다. 이런 과정들이 쌓이면 업무수행방식과 보고형식이 표준화되고 나중에 이를 전부 모아놓게 되면 결국 '회사의 업무매뉴얼'이 되는데 이렇게 일들을 하지 않으니까 업무매뉴얼이 없는 회사가 많고 업무퀄리티도 매번 같은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둘째, 각 부서의 권한, 책임을 미리 정해 놓아야 한다. 특히 조직개편을 하여 신설 팀이 만들어지면 간단히 '무슨 팀 신설'만 사내 인트라넷에 올리지 말고 신설 부서의 업무,권한,책임까지도 자세하게 적어 내부 직원들에게 알려야 한다. 이래야 부서 간에 업무관할과 책임을 둘러싸고 싸움이 벌어지지 않는다. 기존 팀들도 권한과 책임을 명확히 재규정해야 함은 물론이다.
조직 내 갈등과 업무의 loss를 가져오는 '애매함'을 없애는 방법은 너무 간단하다. 애매한 부분을 명확히 해두면 된다. 알면서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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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를 졸업 후 중앙일보 인사팀장 등을 역임하는 등 20년 이상 인사·노무 업무를 수행했다. 현재는 율탑노무사사무소(서울강남) 대표노무사로 있으면서 기업 노무자문과 노동사건 대리 등의 업무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회사를 살리는 직원관리 대책', '뼈대 노동법'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