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22:50 (목)
◇전통시장 역사기행③ 남대문 '1400만원짜리 안경'
◇전통시장 역사기행③ 남대문 '1400만원짜리 안경'
  • 고윤희 이코노텔링 기자
  • yunheelife2@naver.com
  • 승인 2019.08.19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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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관광객에 더 유명한 '크리스탈안경백화점'…대그룹 회장도 찾는'24시간 영업'의 전설
1414년 왕실의 시전으로 출발 …1897년 한성거리 정비때 선혜청 창고 자리에 근대시장 면모
일제강점기때 친일파 송병준, 자유당시절엔 '주먹' 엄복만이 운영권 쥐락 펴락해 부작용 낳아
88올림픽 전후 전성기…170여대 버스로 올라온 전국상인 '남대문 제품'의 '새벽쇼핑' 불야성
요즘 건조딸기 가게엔 중국 관광객 문전성시…갈치조림 등 맛집선 샐러리맨과 외국인도 즐겨
남대문시장에는 1400망원짜리 안경을 판다. 크리스탈 안경원의 심길섭 대표가 그 안경을 끼고 포즈를 취했다. 품질에 자신이 있으니 대그룹 회장도 이 가게에서 안경을 산다고 한다/사진=김승희 이코노텔링 기자.
남대문시장에는 1400만원짜리 안경을 판다. 크리스탈 안경원의 심길섭 대표가 그 안경을 끼고 포즈를 취했다. 품질에 자신이 있으니 대그룹 회장도 이 가게에서 안경을 산다고 한다/사진=김승희 이코노텔링 기자.

서울 남대문 시장에는 ‘1400만원짜리 안경’이 있다. 질 좋고 값싼 도매시장으로만 여겼던 기자는 남대문 시장에서 이처럼 고가의 물건이 팔린다는 사실에 놀랐다. 직접 그 안경 가게에 들어가 보니 인테리어가 백화점 못잖다. 프랑스산 쇼메(chaumet) 등 세계의 명품 안경 브랜드가 즐비하다. 플래티넘 재질의 안경테에 다이아몬드가 박힌 일부 수제 안경은 워낙 생산 수량이 적어 구하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또 놀란 것은 이 ‘크리스탈 안경백화점’은 국내보다 일본인들에게 더 알려진 점이다. 일본 안경점과 달리 시력 검사를 거저 해 주는 데다 일본서 파는 물건과 똑같은 제품을 저렴하게 팔기 때문이다. 제품의 질에 대한 신뢰가 쌓이면서 일본인 관광객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졌다.

대그룹의 한 회장도 이 가게에서 안경을 구입해 쓴다. 크리스탈안경백화점 심길섭 대표(64)는 “질 좋은 제품을 제때 확보하는 힘이 우리 가게의 경쟁력”이라며 “문을 연 이후로 25년간 24시간 영업을 했었다”고 말했다. 관광이나 무역업무을 마치고도 늦은 시간에 가게를 찾을 수 있도록 하니까 일본인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한창 잘 될 때는 하루 수천만원 어치의 안경이 팔렸다고 한다.

남대문(숭례문)쪽에서 남대문시장에 들어가는 입구에는 '남대문시장'이란 간판을 떼내고 남대문 시장의 심벌 마크가 담긴 탑을 세웠다/사진=김승희 이코노텔링 기자
남대문(숭례문)쪽에서 남대문시장에 들어가는 입구에는 '남대문시장'이란 간판을 떼내고 남대문 시장의 심벌 마크가 담긴 탑을 세웠다/사진=김승희 이코노텔링 기자

심 대표는 남대문시장에서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사람 축에 들었고 국세청 표창도 여러 번 받았다. 그런데 요즘은 사정이 달라졌다고 한다.

 한일관계나 중국과의 사이가 벌어져 일본과 중국인 관장객이 줄어 장사가 예전만 못하다. 심 대표는 “하는 수없이 7월1일부터 밤 11시까지만 문을 연다. 개업이래 지켜온 밤샘 영업을 못해 아쉽다”며 “이런 사실을 모르고 가게를 찾았다가 발길을 돌리는 외국인에게 미안할 뿐”이라고 말했다.

구한말인 1897년 조선 조정은 쌀과 포를 세금을 거둬 보관하던 선혜청 창고를 개방해 상인들의 시장터로 만들어줬다. 이게 근대적인 남대문 시장의 서막이다. 꼭 222년이 됐다. 당시 선혜청 창고자리에서 상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물건을 파는 모습이다./ 서울시 역사박물관
구한말인 1897년 조선 조정은 쌀과 포를 세금을 거둬 보관하던 선혜청 창고를 개방해 상인들의 시장터로 만들어줬다. 이게 근대적인 남대문 시장의 서막이다. 꼭 222년이 됐다. 당시 선혜청 창고자리에서 상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물건을 파는 모습이다./ 서울시 역사박물관

점포, 아니 좌판만 열어도 생계를 꾸리는데 지장이 없었다는 남대문 시장의 활기는 분명 한창 때보다는 못하다. 그래도 국내 대표적인 전통시장으로써의 위상은 흔들림 없이 유지되고 있다. 하루 30~40만명의 고객이 찾고 그 중 8000여명의 외국인이 들러 쇼핑 관광을 한다. 대지 2만평에 1만개가 넘는 점포가 옹기종기 붙어있다. 하루 물건 유통량만 3500t에 이르고 의류 등 1700종의 상품을 판다. 여전히 국내 도매시장의 허브 역할을 한다. 88올림픽 전후가 남대문 시장의 전성기로 꼽을 수 있다. 이 때 남대문시장은 불야성을 이뤘다.

전국에서 몰려든 소매상인들이 들끓었다. 관광버스 170여대가 시장 입구에 진을 치고 새벽까지 물건을 산 보따리 상인들을 실어 날랐다. 최영길 남대문시장㈜ 상무는 “당시는 남대문시장이 의류 등 물건을 만들어 파는 기능도 있어서

‘남대문표 디자인’이라는 말이 있었다”며 “지금은 악세사리와 아동복 등 몇몇 제품을 제외하곤 생산기능이 쇠퇴 했다”고 설명했다. 1970년대 초반에는 남대문에 둥지를 틀었던 농수축산물 점포들이 대거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으로 옮겨가능 등 시장 기능의 재편도 이뤄졌다.

이런 남대문시장의 역사는 1414년(조선 태종 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왕실의 임대 시전(市廛·거리의 가게)으로 출발했다. 그러니까 꼭 605년이 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시장이다. 조선 영조 때(1740년) ‘칠패장(七牌場)이란 이름으로 바꿔 전국 유통의 중심역할을 하면서 시장의 명성이 전국으로 퍼졌다.

건어물을 팔던 동경식품은 요즘 '건조딸기' 제품으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중국의 유명 세프가 이 상점을 딸기 맛을 보고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려 대박이 났다고 한다. 중국 관광객들이 필수 코스가 됐다. 이 가게 장기수 대표(79)는 지금도 주판으로 계산을 한다/ 사진= 김승희 이코노텔링 기자
건어물을 팔던 동경식품은 요즘 '건조딸기' 제품으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중국의 유명 세프가 이 상점을 딸기 맛을 보고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려 대박이 났다고 한다. 중국 관광객들이 필수 코스가 됐다. 이 가게 장기수 대표(79)는 지금도 주판으로 계산을 한다/ 사진= 김승희 이코노텔링 기자

근대적인 시장기능은 우리나라 근대화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구한말 조정은 근대화 작업의 하나로 한성(서울)의 거리 정비에 나서 길거리 좌판이나 임시로 지어진 시장의 가건물을 정비한다. 대신 쌀(米)과 포(布)를 세금으로 거둬 들여 관리하던 남대문(숭례문) 인근의 선혜청 창고 자리를 비워 상인들에게 새 둥지를 틀게 했다. 근대적인 남대문 시장이 태동(1897년)한 것이다. 전국적인 근대 유통시장으로 치면 '122년'이 됐다.

일제 강점기에 신문에 남대문 시장의 상품 가격표를 공고했다. 상황(商況)이라는 말은 요즘 말로 하면 시장의 가격 현황표라는 뜻이다/서울시 역사박물관.
일제 강점기에 신문에 남대문 시장의 상품 가격표를 공고했다. 상황(商況)이라는 말은 요즘 말로 하면 시장의 가격 현황표라는 뜻이다/서울시 역사박물관.

그런 까닭에 당시 남대문 시장의 관리권은 조정에 있었고 시장의 품목도 쌀과 대두를 비롯해 담배, 잡화 등으로 다변화됐다. 1910년 한일합방직후 대표적인 친일파의 한 사람인 송병준이 운영하는 조선농협회사에 시장관리권이 넘어갔다. 이 때 남대문시장 주변엔 일본의 미쓰코시(三越) 백화점 등 일본계 대형 유통회사들이 둥지를 틀면서 남대문 시장은 그야말로 조선 제1의 유통거점이 됐다. 일제 강점기에는 청나라와 일본인 상인들이 앞다퉈 진출해 수입품도 쌓였다고 한다.

남대문 시장은 일제강점기에 이어 해방과 한국전쟁, 5.16혁명을 거치며 세 차례 대형화재 사고(1921년1954년,1968년)를 겪었고 그 이후에도 여섯 차례나 더 불이 났다. 이를 계기로 재건축과 리빌딩을 통해 면모를 일신했다. 한국전쟁직후에는 ‘주먹세계’가 남대문(엄복만)과 동대문(이정재)을 양분해 호령하기도 했다. 주먹조직 명동파의 엄복만이 시장 운영권을 쥐고 상인 위에 군림했다. 1954년 화재후 답지한 성금을 가로채고 주차장 부지를 무단으로 빌려주는 등 사복을 채웠다가 관리권을 내놔야 했다.

당시 남대문은 도깨비시장,양키시장으로도 불리웠다. 물자가 부족한 시절이어서 수입 양복지,시계, 사진기 등은 이곳 남대문시장에 가야 살수 있었다. 당연히 밀수품이 기승을 부려 상인들과 단속 공무원 사이에 숨박꼭질이 이어졌다. 단속원이 나타나면 감쪽같이 사라져 ‘도깨비’란 별칭을 얻었다. 또 미군이 사용했거나 미군이 들여온 군수품도 남대문 시장에서 어렵지 않게 살 수 있어서 ‘양키시장’으로도 불리었다. 그 ‘도깨비시징’은 수입상가로 거듭났고 ‘양키시장’역시 시장 한켠에 있는 ‘군수품 골목’에서 여전히 둥지를 틀고 있다.

남대문 시장에는 하루에 1만명에 가까운 외국인들이 들른다. 전통재래시장에서 의류나 악세사리를 사고 생과일 주스와 야채호떡 가게에서 줄을 서서 길거리 음식도 즐긴다. 부부로 보이는 외국인 한 쌍이 길거리 옷가게에서 티셔츠를 사고 이를 입어본 모습을 휴대폰으로 찍고 들여다 보고 있다/ 사진=김승희 이코노텔링 기자
남대문 시장에는 하루에 1만명에 가까운 외국인들이 들른다. 전통재래시장에서 의류나 악세사리를 사고 생과일 주스와 야채호떡 가게에서 줄을 서서 길거리 음식도 즐긴다. 부부로 보이는 외국인 한 쌍이 길거리 옷가게에서 티셔츠를 사고 이를 입어본 모습을 휴대폰으로 찍고 들여다 보고 있다/ 사진=김승희 이코노텔링 기자

남대문 시장에는 붙박이 상인들도 적잖다. 대표적인 이가 건어물 가게를 56년째 운영 중인 장기수(79) 동경식품 대표이다. 그는 건어물 판매에선 전국에서 손꼽히는 상인이다. 충북 음성 출신인 그는 19살에 남대문시장 건어물 가게에서 점원 생활하면서 건어물 장사를 익혔다. 군대복무중 휴가를 나와도 가게를 돌봐 주인의 눈에 들었다. 장 대표는 “백회점도 건어물판매 노하우를 잘 몰라 우리가 납품한다”고 말했다.

에전엔 남대문 시장에는 생산기능도 왕성했다. 하지만 요즘은 아동복과 악세사리 등 몇몇 제품을 제외하곤 제조기반이 허약해졌다.한 악세사리 가게에서 디자인을 하는 모습이어서 지재권 보호를 위해 일부러 흐릿하게 촬영했다/ 사진= 김승희 이코노텔링 기자
에전엔 남대문 시장에는 생산기능도 왕성했다. 하지만 요즘은 아동복과 악세사리 등 몇몇 제품을 제외하곤 제조기반이 허약해졌다.한 악세사리 가게에서 디자인을 하는 모습이어서 지재권 보호를 위해 일부러 흐릿하게 촬영했다/ 사진= 김승희 이코노텔링 기자

그는 “맛을 본후 건조상태를 살피고 냄새로 제품상태를 파악하는데 이는 대학에서도 이론적으로 제대로 정립하지 못한 건어물 감별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이 가게의 요즘 주력상품은 건어물이 아니다.건조딸기다. 중국의 유명한 조리사가 한국에 왔다가 이 맛을 보고 반했다. 그는 귀국하자마자 이 건조 딸기를 사회관계망서비스(SMS)에 올렸고 중국관광객들의 필수 구매상품이 됐다. 장 대표는 “내가 수 억원을 들여도 중국시장에 우리 제품을 알리기가 어려울 것”이라며 건조 딸기 매출비중이 높다고 밝혔다. 두평이 채 안되는 가게의 매출은 비밀이다. 그런데 주변 상인들은 하루 매출액이 수천만원에 이를때도 적지 않을 짐작한다. 마침 이 가게에 들른 한 중국인 관광객은 대형 여행가방을 활짝 열고 그 안에 한가득 건조 딸기를 담아가며 엄지 손가락을 내밀었다.

장 대표는 처음에 ‘곁자리’를 얻어 자신의 장사를 했다. 곁자리는 가게의 한쪽 매대에서 장사를 하는 장소다. 길거리에 앉아서 하는 좌판보다는 한결 형편이 낫다. 구한말까지도 남대문시장에는 좌판과 상가용 가가(假家·가건물)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다. 왕이 능행을 나설때는 자진해서 가가를 해체하면 철거및 재건비를 조정에서 지원해 줬다고 한다.

남대문 시장에는 맛집도 여럿 있다. 그 중에서도 점심때가 되면 주변 오피스 빌딩에서 나온 샐러리맨들이 즐겨 찾는 곳이 바로 갈치조림 골목이다/ 사진= 김승희 이코노텔링 기자
남대문 시장에는 맛집도 여럿 있다. 그 중에서도 점심때가 되면 주변 오피스 빌딩에서 나온 샐러리맨들이 즐겨 찾는 곳이 바로 갈치조림 골목이다/ 사진= 김승희 이코노텔링 기자

또 가가는 포장마차의 권리금 처럼 당시에도 전상매매가 이뤄졌다고 한다. 여기서 유래했는지는 모르지만 남대문시장에서 좌판자리에서 부터 가건물에 이르기까지 권리금이 붙어있다. 지금도 악세사리와 아동복은 남대문시장이 '디자인중심'이다.여기서 젊은이들의 꿈도  영글고 있다. 임채영 남대문시장㈜ 총무과장은 “현장에서 생산과 판매기법 등을 배울수 있어 밑바닥부터 사업을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적잖다"고 말했다.

남대문시장에는 맛집도 적잖다.갈치조림, 꼬리곰탕, 닭곰탕 집은 정평이 나있고 값싸게 즐길수 있는 횟집도 있다. 시장 주변에 오피스 빌딩이 속속 들어서면서 대기업,은행 직원들이 옹기종기 모여 점심을 먹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수 있다. 외국인들은 이곳에서 길거리음식도 맛본다. 그 중 과일주스, 야채호떡, 도너스 등을 즐긴다. 임 총무과장은 “여전히 남대문시장은 서울의 얼굴중 하나여서 앞으로도 국내 고객과 외국 관광객을 동시에 겨냥하는 종합 쇼핑센터로서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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