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09 12:15 (목)
[패션이 엮은 인류경제사] ⑦ 나폴레옹 모자의 역사적 가치
[패션이 엮은 인류경제사] ⑦ 나폴레옹 모자의 역사적 가치
  • 송명견(동덕여대 명예교수ㆍ칼럼니스트)
  • mksongmk@naver.com
  • 승인 2023.01.10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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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혁명 11년 후인 1800년 6월 '마랭고 전투'에서 썼던 비버털로 만든 제품
하림 회장, 9년전 경매서 26억원에 매입…실크모자 나오기까지 최상류층 애호
프랑스의 헌병 , 이탈리아 근위병들과 세계 해군의 정장에 같이 썼던 패션 용품

2014년 11월 17일 김홍국 하림 회장이 프랑스 오세나 경매소에서 일본인을 제치고 낙찰에 성공해 들여온 모자와 관련된 이야기다.

그 모자 값이 사상 최고인 26억원이라고 했다. 모자 하나를 구매하는데 그렇게 많은 돈을 들였냐는 부정적인 시선도 있고, 그 때문에 하림이 세무조사를 받았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그러나 옷을 연구하는 사람에게는 '가슴 뛰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 모자는 바로 프랑스 나폴레옹 황제의 모자다. 1800년 6월 마랭고 전투에서 썼던 것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나폴레옹의 19개 모자 가운데 민간인 소유로 알려진 2개 중 하나로 전해진다. 200여년의 세월을 머금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모자의 가치가 클 수밖에 없다.

거기다 세계를 호령했던 나폴레옹의 모자였다는 것,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역사를 바꾸어 놓는 힘을 행사했던 바로 그 '비버 모자'라는 점만도 유물로서 훌륭하다. 또한 근대 민주주의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 혁명기의 역사와 사회상이 그대로 그 모자 안에 표현되었다는 점도 놓칠 수 없는 가치다. 나아가 최고의 권력자의 모자를 만든 장인의 숨결까지를 보여준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이 모자는 비버의 털을 축융(felting)해서 만들어졌다. 폭 49cm, 높이 21cm에 2개의 뿔 부분이 좌우로 오게 쓰는 2각 모자다. 나폴레옹은 이런 모자를 120개나 갖고 있었다 하니 당시 2각 모자의 유행을 실감케 한다. 15세기부터 유럽을 강타한 비버 털모자(Beaver hat)의 유행이, 유럽을 넘어 북아메리카까지 비버의 멸종 위기를 초래했었다. 다행히 1797년 실크햇(Silk hat)의 등장으로 멸종 위기를 넘기기는 하였지만, 그 비버의 털이 나폴레옹 당시까지 최상류층 모자의 재료로 사용되었음을 이 모자는 확인해준다.

2014년 11월 17일 김홍국 하림 회장이 프랑스 오세나 경매소에서 낙찰에 성공해 들여온 나폴레옹의 2각모(사진 아래).

2각 모자(bicorne hat)는 3각 모자(tricorne hat)에서 비롯됐다. 삼각모자는 1667년 프랑스와 스페인의 전쟁터에서 스페인 병사들이 넓은 차양의 모자를 삼등분하여 감아 썼고, 전쟁 후 프랑스 병사들이 따라서 썼다고 한다.

그것을 당시 멋쟁이 루이 14세가 최고의 재료인 비버로 만들어 쓰면서, 찬란한 로코코의 복식문화를 누리던 18세기의 귀족들이 뒤따라 애용하게 되었다. 물론 차츰 시민들도 썼으며, 1790년대에는 거의 모든 군인들이 썼다.

이 삼각모자가 프랑스 혁명을 전후하여 두 모서리(2각모)의 모자로 바뀌어갔다. 2각모는 넓은 차양을 반으로 접고 그것들을 핀으로 고정해서 옆으로 각이 지게 쓴 것이다. 앞의 차양이 뒤의 것보다 짧아 영어로 'The cock(수탉), cocked hat' 프랑스어로 'bicorne(비코르느)'라고 불렀다.

뿐만 아니라 이 모자에는 3색의 Cockade(상징성 있는 장식, 장미 모양 또는 리본)가 달려 있다. 이것은 프랑스혁명 당시 바스티유 습격 다음날인 1789년 7월 15일, 국민군 총사령관 라파예트가 시민에게 나누어준, 모자 장식이었다. 3색(빨강, 파랑, 흰색)은 프랑스 국기의 상징인 자유·평등·박애를 나타낸다. 이 삼색의 장식을 모자뿐만 아니라 양말에까지 하였다. 당시의 프랑스인들이 얼마나 민주주의를 갈망하고 나라를 사랑하였는지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이 모자는 1800년대 이후 유행에서는 밀려났으나, 프랑스의 헌병, 이태리의 근위병들과 세계 해군들이 정장에 사용하였다.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의 고위 관리들과 그 밖의 해군이 제2차 세계대전까지 쓰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21세기 들어 대한민국은 명실공히 문화의 르네상스를 누리고 있다. 가수 방탄소년단(BTS), 축구선수 손흥민, 피겨선수 김연아,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물론 많은 연기자와 영화감독들이 세계무대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200여년 후 이 시대를 담은 이들의 모자, 옷, 아니면 이들이 소유했던 소품들이 권력의 상징이었던 나폴레옹의 모자보다 더 비싼 값에 경매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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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명견(동덕여자대학교 명예교수ㆍ칼럼니스트)
송명견(동덕여자대학교 명예교수ㆍ칼럼니스트)

송명견(동덕여자대학교 명예교수ㆍ칼럼니스트)= 40여년 동안 옷에 대해 공부하고 학생들을 가르친 의생활문화 전문가. 그 과정에서 '옷이 곧 사람이고 역사'라는 점을 발견하고, 이를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글을 쓰는 '옷 칼럼니스트'의 길을 걷고 있다. <패션 인사이트>를 시작으로 <아시아경제신문> <농촌여성신문> <강남 라이프>(서울 강남구청 소식지)에 동서고금의 옷과 패션산업을 주제로 글을 연재했다.

또한 <기능복>(1998년, 공저)부터 <바느질하는 여인이 그립다>(2006년), <옷, 벗기고 보니>(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 교양도서 선정), <옷은 사람이다>(2014년), <옷으로 세상 여행>(2018년) 등의 책을 저술했다. 그는 오늘도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사회의 모습과 시대적 가치'를 찾고자 고민한다.

서울대학교 농가정학과를 나와 이화여대에서 석사를, 중앙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덕여대 패션디자인학과 교수로 재임하며 일본 문화여자대학 연구교수, 영국 맨체스터대학 연구교수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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