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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6) 대공황과 일본…'마지막 황제'③구제금융과 기업의 모럴 해저드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6) 대공황과 일본…'마지막 황제'③구제금융과 기업의 모럴 해저드
  • 이코노텔링 이재광 대기자
  • jkrepo@naver.com
  • 승인 2023.01.02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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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피해지역 기업의 부채와 이자 지급 연기해주고 긴급 대출 형식으로 자금 지원
중앙은행은 기업이 발행ㆍ보유한 어음 재할인 해주자 가짜 ' 진재어음 '도 내놓기도

경제가 망가지면 정부가 나선다. 최악의 경우 '구제금융'이라는 이름으로 국민 세금을 쏟아 붇는다. 그래야 기업이 살고 국민이 살고 나라가 산다. 하지만 일부 기업은 이 돈을 '눈먼 돈'으로 생각한다. 악용의 기회로 삼는다. 여기에 정치인이 개입되면 사태는 더욱 심각하고 복잡해진다. 일본의 1920년대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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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으로 인한 기업의 피해는 그야말로 형언(形言)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가히 '진재(震災)공황'이라 할만 했다. 당연히 정부ㆍ중앙은행이 정책을 내놨다.

해당 지역 기업의 부채와 이자를 지급 연기해 줬고 긴급대출 형식으로 돈도 줬다. 특히 중앙은행이 해당지역 기업이 발행ㆍ보유한 어음을 재할인해 준다는 '지진재해 어음' 즉, '진재어음(震災手形)'의 재할인 정책이 핵심이었다. 1923년 9월 27일 발효된 이 정책은 기업도산의 방지는 물론 자칫 일어날 수도 있었던 금융권 붕괴까지 막아주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핵심 정책'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바로 기업들의 모럴 해저드였다. 적지 않은 기업들이 가짜 진재어음을 내놨다. 심지어는 이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챙기려는 기업까지 있었다. 구제 금융을 '대박기회' 쯤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 결과 어음의 규모도, 그에 대한 의심도 컸다. 당연히 미결제 어음이 쌓였다. 한편으로는 못 했고 한편으로는 안 했다. 지진이 발생한 지 3년이 지난 1926년 8월 당시 미결제 진재어음 규모는 2억 엔을 넘었다. 이 액수는 당시 일본 명목 GNP의 1.3%, 명목공공소비의 19.3%에 이르는 것이었다.

1923년 9월 27일 발효된 '칙령제424호: 진재어음할인손실보상령(勅令第424号: 震災手形割引損失補償令'.

진재어음은 이제 일본 경제의 골칫덩어리가 되고 말았다. 지급을 하자니 너무 많고 성격도 의심스러웠다.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었다. 정부ㆍ중앙은행이 스스로 한 말을 뒤집어야 했기 때문이다. 1926년 말 이는 심각한 국가 차원의 문제로 떠올랐다. 정부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1927년 1월 마침내 집권당인 헌정회(憲政會)가 나섰다. 미결제 어음 결제를 위해 공적자금 투입을 하자는 법안을 의회에 상정했던 것이다.

■ 누구를 위한 구제금융인가?

하지만 야당이 가만있지 않았다. 눈에 불을 켜고 법안 통과를 막았다. 헌정회와 손을 잡고 있는 일부 기업을 위한 법안이라는 비판과 함께 진재어음 발행 규모와 어음의 할인내역 공개를 요구했다. 그게 투명하지 않다는 얘기였다. 여당으로서는 야당의 예봉(銳鋒)을 피하는 것이 중요했다. 경제 상황이 어려워 어음 결제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내역보다는 법안이 미뤄질 경우 자칫 금융시장의 붕괴를 초래할 수도 있음을 강조했다. 뭔가 해결점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사건이 터졌다. 1927년 3월 14일 중의원 예산 심의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일본의 경제를 책임지던 대장대신(大蔵大臣, 경제부총리, 재무장관) 가타오카 나오하루(片岡直温)의 충격적인 발언이 터져 나왔던 것이다.

"오늘 정오 무렵 와타나베(渡辺)은행이 결국 파탄에 이르렀습니다. 실로 유감스러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는 몇 시간 전 은행 도산이 현실로 나타났다고 했다. 그것도 와타나베은행이. 이 은행의 정식 명칭은 '도쿄와타나베(東京渡辺)은행'. 1877년 여러 국립은행 중 하나로 설립됐다가 이후 민간은행으로 변모한 일본의 주요 은행 중 하나였다. 일천한 자본주의 역사에서 행력(行歷) 50년인 은행은 대단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최근 수 년 사이 경영 상 어려움이 있다는 얘기가 나왔지만 '파산'까지 갈 줄은 대부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얼마 뒤 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와타나베은행은 파산하지 않았던 것이다. 중의원 심의가 있었던 그날 파산 1보 직전까지 갔던 것은 사실이었다. 극심한 자금난을 겪던 은행은 당일 대장성에 긴급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은행 측은 "오늘 자금지원을 받지 못하면 부득불 휴업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내용을 들어 보면 확실히 사망 직전 '마지막 SOS'을 친 것처럼 들렸다.

'가타오카의 실언(片岡の失言)'이라는 오명을 역사에 남긴 1927년 사건 당시 대장대신(大蔵大臣) 가타오카 나오하루(片岡直温).

하지만 대장성은 이를 거절했다. 복잡한 국내 정치ㆍ경제 상황에서 특정 은행에 대한 지원은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또한 대장성은, 자신이 지원을 거부했으니 와타나베은행이 당연히 문을 닫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도산했다"는 말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와타나베은행은 망하지 않았다. 당일 오후 은행은 다른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대장성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차관 덴 아키라(田昌)는 답변 중인 대장대신에게 메모을 넣으며 와타나베은행의 도산을 보고했던 것이다.

충격은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았다. 다음 날 신문은 다카오리 대장대신의 답변을 톱기사로 썼다. 잘 하면 꺼질 수 있었던 불씨에 기름을 부은 사태가 되고 만다. 기사를 본 고객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총알처럼 은행처럼 달려가 예금을 인출했다. 와타나베은행은 결국 이 '뱅크런'을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고 만다. 다른 은행들도 곤욕을 치렀다. 불안해진 시민은 각자의 거래 은행으로 달려가 예치금을 찾았던 것이다. 후일 역사는 이 사건을 '가타오카의 실언(片岡の失言)'으로 기록하고 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도산직전이니 자금을 지원해 달라"는 은행의 청을 거절한 것도 모자라 대출 시간이 그나마 몇 시간 있었고 따라서 아직은 생존가능성이 있는 은행이었다. 그런데 일본경제를 책임져야 하는 관료의 수장이 은행이 망했다고 대내외에 공표를 하고 말았던 것이다. 가타오카는 이후 차관의 메모까지 보여주며 변명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여기까지는 그나마 괜찮았다. 심의가 끝난 뒤라도, 아니면 그날 저녁이라도 사실을 확인하고 긴급 기자회견이라도 가졌으면 일은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다음날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나오는 일을 사전에 막지 못했다.

확실히 이해하기 어려운 실언이었다. 정부는 제대로 된 해결책도 내놓지 못했다. 정책 미숙성과 무능의 극치로 볼 수도 있었다. 그나마 안도가 됐던 것은 실언 내용이 알려지면서 뱅크런 사태가 잠잠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2~3주 지나자 금융권은 전반적으로 안정을 되찾는 모습이었다. 일시적으로 문을 닫았던 은행들도 다시 영업을 시작했다. 물론 와타나베은행은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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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식민과 제국의 길』『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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