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가 법률상 인지한 혼외 출생자는 그 생부나 생모도 친족으로 보는 규정 도입

재계의 주목을 받아왔던 대기업집단 총수(공정거래법상 '동일인')의 친족(親族) 범위가 종래 혈족(血族) 6촌·인척(姻戚) 4촌에서 혈족 4촌·인척 3촌으로 좁아진다.
이에 따라 총수가 관련 기관에 각종 자료를 제출하거나 공시해야 하는 친족 수가 약 절반으로 줄어들게 됐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올해 5월 지정한 총수(동일인)가 있는 대기업집단 66곳의 친족 수는 1만26명이었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을 적용할 경우 그 수는 5059명으로 49.5% 감소한다.
공정위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이 20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개정안은 대통령 재가를 거쳐 즉시 시행된다.
통과된 시행령은 친족 범위를 줄이면서도 총수가 법률상 인지한 혼인외 출생자가 있는 경우 그 생부나 생모도 친족으로 보는 규정을 새로 도입했다. 이들이 계열사 주요 주주로 동일인의 지배력을 보조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규제 사각지대를 없앤다는 취지에서 채택했다.
이에 따라 새해 5월 대기업집단 신규 지정 때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동거인으로 화제를 모은 김희영 씨가 공정거래법상 최 회장의 친족으로 인정될 전망이다. 다만 김 씨는 이미 티앤씨재단의 대표로서 SK의 동일인 관련자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혈족 5·6촌과 인척 4촌을 친족에서 빼는 대신 동일인이 지배하는 회사의 주식을 1% 이상 소유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친족에 포함하도록 규정을 바꿨다. 논의 과정에서 재계가 이 규정 도입에 이의를 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위는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해 해마다 공시대상기업집단(자산총액 5조 원 이상) 및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자산총액 10조 원 이상)을 지정해 관련 자료 제출 및 공시 의무, 총수 일가 사익편취 행위 금지, 상호출자제한 등과 같은 각종 규제를 가해 왔다.
하지만 국민 상식에 비해 총수의 친족 범위가 매우 넓게 규정돼 관련 자료 제출량이 너무 많은 데다 핵가족화 등으로 6촌까지의 친족 상황 파악 자체가 어려워져 관련 기업의 부담이 크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로 인해 관련 총수나 기업이 자료 제출을 거부 또는 누락시키거나 허위 자료를 제출하는 경우가 종종 생겨 빈축을 사기도 했다.
공정위는 개정 시행령에 '동일인이 민법에 따라 인지한 혼인외 출생자의 생부·생모도 친족으로 본다'는 규정을 신설했다. 입법예고 때는 '민법에 따른 친생자의 생부 또는 생모로서 사실상의 혼인(사실혼) 관계에 있는 자'를 친족으로 본다고 규정했으나 규제개혁위원회 심의 후 '사실혼 배우자' 개념을 뺐다. 사실혼 여부에 대한 다툼이 예상되고 사생활 침해 우려도 있다는 지적을 반영했다.
또 시행령 개정안은 사외이사가 지배하는 회사를 원칙적으로 계열사에서 빼고 독립경영 요건을 충족 못 시킬 때만 계열사에 편입토록 했다. 개정 전엔 사외이사가 독립적으로 경영하는 회사도 자동으로 대기업집단에 편입시킨 뒤 사후 독립경영 신청을 하도록 했다.
대기업이 투자한 중소·벤처기업이 대기업집단 편입을 7∼10년간 유예받는 요건인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도 5% 이상에서 3% 이상으로 완화했다. 또 대기업집단 계열편입 요건을 충족한 후에도 유예 신청이 가능토록 하고 그 회사가 지배하는 회사도 계열사 편입이 유예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대기업집단 총수와 특수관계인인 친족 범위를 '혈족 6촌·인척 4촌'에서 '혈족 4촌·인척 3촌'으로 축소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한 바 있다.
교류가 없는 친·인척까지 특수관계인으로 지정해 총수가 그들의 지분 소유현황까지 파악해 제출토록 한 것과 이를 위반한 총수를 '2년 이하 징역 또는 1억5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한 점 등은 과도한 규제라는 입장이었다.
시행령 개정과 관련해 공정위는 "대기업집단 지정 제도의 합리화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정부나 재계와 달리 대기업집단(재벌)의 폐해에 비판적인 일부 시민단체나 학자들은 이번 개정에 이의를 제기할 것으로도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