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16:30 (일)
[패션이 엮은 인류경제사] ⑤ 세계사를 바꾼 인도의 면직물
[패션이 엮은 인류경제사] ⑤ 세계사를 바꾼 인도의 면직물
  • 송명견(동덕여대 명예교수ㆍ칼럼니스트)
  • mksongmk@naver.com
  • 승인 2022.12.16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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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초 금보다 훨씬 비쌌던 향신료를 찾아 인도네시아로 갔던 영국 함선의 '빈손 퇴각'
귀로에 '인도산 면직물'실어 …양모와 달리 가볍고 곱고, 무늬까지 아름다워 대박 터뜨려
인도 면직물 유명세를 타자 인도는 유럽강국의 각축장으로 변해…영국의 식민지로 전락
수입으로 수요 감당 안되자 英직접생산 추진…대량생산 체제 갖추는 산업혁명 불쏘시개

육두구(nutmeg)는 17세기 유럽에 전해진 향신료 중 하나다. 당시 금값에 달했던 후추보다 거의 10배나 비쌌던 것으로 전해진다.

육두구의 원산지는 인도네시아였고, 가장 질 좋은 제품도 그곳에서 생산되었다. 유럽 나라들이 앞 다퉈 모여들었다. 영국도 뒤늦게 인도네시아로 향했다. 긴긴 항해 끝에 인도네시아에 도착했지만, 선점하고 있던 네덜란드가 발도 못 붙이게 밀어냈다. 1623년의 일이었다.

육두구는 커녕 빈 배로 돌아가게 된 영국은 가까운 인도에 들르게 되었다. 그곳에서 아름다운 인도 면직물이 눈에 들어왔다. 빈 배로 돌아가느니 이거라도 갖고 가자며 면직물을 배에 실었다. 이 무슨 행운인가. 영국에 돌아와 면직물을 풀어놓자 불티나게 팔렸다. 지금까지 그들이 입어온 양모와 달리 가볍고 질기고 세탁도 쉬운데다 다양한 색채에 예쁜 무늬까지 있어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천상의 직물'이라고 감탄할 정도였다.

인도는 1000년경부터 면직물을 수출하며 부(富)를 쌓아왔으나 유럽인의 마음을 흔들어놓은 바로 그 면직물 때문에 유럽 열강의 각축장이 되고 말았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인도산 면직물은 빠른 속도로 영국뿐 아니라 전 유럽에 유행하며 유럽 사람들의 외피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육두구대신 가져온 인도 면직물이 대박을 터트린 것이다.

그 바람에 인도 면직물에 치어 영국 모직물 산업이 흔들리게 되었다. 울상이 된 양모 기술자들은 면직물 옷을 입은 행인들의 옷을 찢고 폭동까지 일으켰다. 영국 의회를 압박해 수입을 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면직물에 대한 유럽인의 열망은 멈추지 않았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이었다.

당시 인도는 빛나는 문화와 경제력을 가진 나라였다. 이 경제 강국의 중심에 면직물이 있었다. 인도는 1000년경부터 면직물을 수출하며 부(富)를 쌓아왔다. 그런데 유럽인의 마음을 흔들어놓은 바로 그 면직물 때문에 인도는 유럽 열강의 각축장이 되고 말았다.

1757년 플라시 전투에서 영국은 3000명의 군대로 프랑스와 인도의 뱅골 연합군 5만명을 물리치고, 인도를 집어삼키는데 성공하였다. 그리고는 식민지 인도에서 세금을 걷고, 그 세금으로 면직물을 사갔다. 결과적으로 면직물을 공짜로 가져간 셈이다.

인도 면직물의 수요는 점점 더 늘어났다. 식민지 인도에서 착취해온 면직물로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이른바 '대량생산'이 요구되기에 이르렀다. 영국은 이 상황을 '산업혁명'으로 연결시켰다. 1765년 와트가 발명한 증기기관이 면방적기와 직조기에 연결되고 석탄이 동력원으로 활용되면서 면직공업이 급성장했고, 이는 산업혁명에 불을 붙였다.

인도산 목화솜을 가져다 영국 내 공장에서 면직물을 대량으로 생산해냈다. 하지만 인도인들이 짠 면직물의 품질을 따를 수가 없었다. 그러자 인도 기술자들의 엄지손가락이나 손목을 자르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급기야 질 좋은 직물을 짜던 기술자들이 사라지면서 인도의 면직물은 파국을 맞았다. 면직물 종주국 인도가 수입국으로 전락해버린 이 비극을 발판으로, 유럽 대륙 서북쪽 섬나라 영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산업 강국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역사는 남의 나라 것을 들여와 산업혁명을 일궈낸 영국, 오래 된 소중한 자기 것을 지켜내지 못한 인도를 보며 '깨우치고 배우라'고 소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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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명견(동덕여자대학교 명예교수ㆍ칼럼니스트)

송명견(동덕여자대학교 명예교수ㆍ칼럼니스트)= 40여년 동안 옷에 대해 공부하고 학생들을 가르친 의생활문화 전문가. 그 과정에서 '옷이 곧 사람이고 역사'라는 점을 발견하고, 이를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글을 쓰는 '옷 칼럼니스트'의 길을 걷고 있다. <패션 인사이트>를 시작으로 <아시아경제신문> <농촌여성신문> <강남 라이프>(서울 강남구청 소식지)에 동서고금의 옷과 패션산업을 주제로 글을 연재했다.

또한 <기능복>(1998년, 공저)부터 <바느질하는 여인이 그립다>(2006년), <옷, 벗기고 보니>(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 교양도서 선정), <옷은 사람이다>(2014년), <옷으로 세상 여행>(2018년) 등의 책을 저술했다. 그는 오늘도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사회의 모습과 시대적 가치'를 찾고자 고민한다.

서울대학교 농가정학과를 나와 이화여대에서 석사를, 중앙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덕여대 패션디자인학과 교수로 재임하며 일본 문화여자대학 연구교수, 영국 맨체스터대학 연구교수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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