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제3대 지도자로 1990년대 경제 도약을 이끈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이 30일 사망했다. 향년 96세.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장쩌민 전 주석은 30일 낮 12시 13분(현지시간) 백혈병으로 상하이에서 치료를 받다 별세했다.
장 전 주석은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로 실각한 자오쯔양(趙紫陽) 전 당 총서기의 뒤를 이어 덩샤오핑(鄧小平)에게 발탁돼 당 총서기에 오른 뒤 15년 동안 중국 최고 지도자로 재임하며 중국의 경제 발전을 지휘했다.
톈안먼 사태라는 격동의 시기를 거쳐 최고 지도자에 오른 고인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과 도광양회(韜光養晦·빛을 숨긴 채 실력을 키움) 노선을 계승하면서 미국 등 서방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중국의 경제 성장을 이끌었다. 그가 당 총서기가 된 1989년 1조7200억위안(약 319조원)이었던 중국 국내총생산(GDP)은 그의 실질적 임기 마지막 해인 2002년 약 7배인 12조1700억위안(약 2260조원)으로 커졌다.
최고 지도자로 재임하며 굵직한 업적을 남겼다.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 유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홍콩(1997년)과 마카오의 반환(1999년)이 그의 임기 동안 이뤄졌다. 밝은 '빛'의 이면에 어두운 '그림자'도 있었다. 민주화 운동가들과 파룬궁에 대한 탄압 등 인권 침해 논란과 심화한 빈부격차, 관료사회의 부정부패 등이 지적된다.
고인의 대표적인 사상은 '3개 대표 이론'으로 전통 사회주의 국가에서 배척받는 자본가 계급을 끌어안는 것이 골자다. 이는 2002년 중국공산당 제16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중국공산당 당헌(黨章)에 '3개 대표 중요 사상'으로 삽입됐다.
그는 은퇴 이후 상하이방(上海幇·상하이 출신 정·재계 인맥) 원로로서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현역 지도자를 견제하는 역할을 했다.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기에는 상하이방이 '정적세력'으로 분류되면서 정치적 입지가 약화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