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20:30 (목)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6) 대공황과 일본…'마지막 황제'① 일본 내각의 특명…'금'을 풀어라!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6) 대공황과 일본…'마지막 황제'① 일본 내각의 특명…'금'을 풀어라!
  • 이코노텔링 이재광 대기자
  • jkrepo@naver.com
  • 승인 2022.12.01 11: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공황 시절의 일본 총리, 1929년 6월 5일 재계의식해 "금 수출 안한다" 공언
하지만 몇 달 뒤 번복 됐고 1930년 초 실제 실행 … 일본경제에 어두운 그림자

마르크스는 금이 화폐가 된 데에는 금 고유의 특성이 한 몫을 했다고 봤다. 부분으로 쪼개졌을 때 자기 동질성을 유지하는 물질은 흔치 않다는 얘기였다. 여기에 금은 산업적으로 이용가치가 있었고 무엇보다 그 희귀성과 반짝거림으로 인간의 사치욕을 채우는 최고의 상품이었다. 이들이 바로 '금본위 화폐체제'의 탄생 배경일 것이다.

------------------------------------------------------------------------------------

"조속한 금해금(金解禁) 실현은 없을 것이라는 방침 아래 그 시기와 방법에 오류가 없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1929년 6월 5일 일본 민정당본부에서 있었던 임시의원 총회에서 당시 내각을 책임지던 하마구치 오사치(浜口雄幸) 총리는 연설 중 이 같은 말로 불안한 심정의 재계를 다독였다. 총리는 또한 "최근에는 금해금을 바로 시행할 것이라는 의심이 있어 지난달 대장대신(大藏大臣, 대장성 장관)이 경제연맹 대표자들과 회담을 했으며 ··· 정부는 이미 정한대로 일을 진행시킬 것이라는 사실을 거듭 밝혔다"고도 했다. 결국 "일본정부는 이미 금해금을 조속한 시일 안에 하지 않을 것으로 방침을 정했고 이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는 의미였다.

이날의 총리 연설에는 구구절절 당시 정부와 일본 재계가 갖는 어려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올해 예산은 미증유의 것으로 정부의 온갖 무리한 변통으로 간신히 편성했다"고 했으며 "정부는 잉여금이나 자유재원도 다 써버린 상태지만 일반 공채시장은 신규공채 발행보다는 상환을 권고"하고 있다는 말도 했다. 연설문에는 "대미 무역적자는 지난해보다 늘었고" 또한 "증권시장은 거의 대공황에 함몰돼 있어 일반 거래도 한층 위축됐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1929년부터 1931년까지 약 2년 동안 총리로 재임했던 하마구치 오사치(浜口雄幸) 총리
1929년부터 1931년까지 약 2년 동안 총리로 재임했던 하마구치 오사치(浜口雄幸) 총리

그러나 연설의 핵심 내용은 여전했다. 바로 '금해금(金解禁)'에 대한 것이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정부는, 당장은, 금해금에 대한 생각이 없다"는 것이었다. 금해금. 일본어 '긴카이킨(きんかいきん)'으로 발음되는 이 정책은 한 마디로 "금을 수출할 때 취해졌던 규제를 푼다"는 뜻이다.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일본 근현대사에서는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된다. 당시 금해금에 대한 정부 입장은, 총리의 연설과는 달리, 몇 달 뒤 번복됐고 다음해 초 실제 행해졌다. 그리고 이는 일본경제에 엄청난 악영향을 주고 만다.

'금해금'이라는 정책 또는 용어가 우리에게 생소한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역사에는 그 같은 정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금해금', 즉 '금에 대한 수출 규제의 철폐'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정책이 19세기 이후 세계경제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던 경제체제, 즉 금본위제로 가는 바로미터였기 때문이다. 일본이 금수출에 대한 규제를 없애겠다는 것은 일본의 금본위제로의 이행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이것이 일본경제 전반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파악 자체가 쉽지 않을 정도의 엄청난 사건이었다.

■ 금본위제···패자는 황천길?

'금본위제(Gold Standard)'에 대해서는 대부분 알 것이라 본다. 한 마디로 '화폐의 가치를 금의 가치에 연동시키는 제도'다. 하지만 이 해석은 막연하고 피상적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 어떤 나라가 금본위제를 실시하느냐 여부는 그 나라가 어떤 제도를 도입ㆍ운영하느냐에 달려 있다. 대공황을 연구한 경제학자 피터 테민(Peter Temim)은 유명한 책 『세계대공황의 교훈』에서 금본위제의 특성을 다음 5가지로 제시한다. 이중 ①②③은 '금본위제'라는 제도의 전제조건, ④⑤는 그 결과로 생각하면 된다.

①개인과 국가 사이에 금의 이동이 자유로워야 한다. ②금으로 표시된 각국 통화가치가 일정 수준에서 유지돼야 한다. ③국제적인 조정기구가 없어야 한다. ④국제수지는 흑자를 보는 나라와 적자를 보는 나라가 있다. ⑤국제수지 적자국은 환율조정이 아닌 자국 내 물가하락, 즉 디플레이션이 발생한다.

자, 테민이 꼽은 '금본위제의 전제조건' 중 첫째를 보라. '금의 자유로운 이동'이다. 어느 나라나 금은 '국부(國富)'를 결정짓는 핵심 자산 중 하나다. 그러니 '금의 유출'은 '국부의 유출'이다. 어느 나라나 금의 유출을 막으려 한다. 즉, 금의 공식ㆍ비공식 수출에 제재를 가한다는 것이다. 금본위제를 채택하려는 모든 나라는 이를 첫 번째 조건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는 또한 누구든 금에 연동된 한 나라 화폐를 그 나라 금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두 번째 조건은 금과 연동된 그 나라 화폐는 가치 변동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즉, 1온스 당 금값을 10만원으로 책정했다면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 유지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이 갖는 의미는 분명하다. 돈을 함부로 찍어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돈을 더 찍으면 그만큼 돈 가치가 떨어진다. 그럼 기존에 정해졌던 금값은 유지되기 어렵다. 금값을 유지하면서 돈을 더 찍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금을 더 확보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 19세기 세계적인 골드러시가 붐을 일으킨 것도 세계적인 금본위제도 도입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어느 나라든 돈은 '늘' 더 많이 필요하다. 세상이 '늘' 더 많은 돈을 원하기 때문이다. 기업은 새 사업을 펼쳐야 하니 새 돈이 필요하고 개인도 더 잘 살기 위해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기업과 개인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다 보니 정부 또한 더 많은 돈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금본위제 도입은 대부분 화폐의 공급위축을 의미한다. 마음대로 돈을 찍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곧 경기위축, 불황을 의미한다. 금본위제 도입에 대한 반대 의견이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1848~55년 사이 있었던 미국 캘리포니아 골드러시
1848~55년 사이 있었던 미국 캘리포니아 골드러시

세 번째와 네 번째 조건을 생각해 보자. "국제적인 조정기구가 없어야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국가 간 이익과 손해를 그냥 현실로 받아들이라"는 말과 다름 아니다. 자, 금본위제를 도입한 나라 A와 B가 있다 치자. A가 B에 물건을 많이 판다. 그럼 B는 보유 현금을 A에 내줘야 한다. 이는 곧 B가 보유하고 있는 금을 A에 내줘야 한다는 말과 같다. 결과는? A는 점점 부자가 되고 B는 점점 가난해진다.

B는, 이런 저런 근거를 들어 이 체제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또는 어떤 기구가 이 부당함을 조정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세 번째 조건은 이를 사전에 막는 것이다. 자유로운 교역에 따른 금의 유출입에 대해 함구하라는 것이다. 이 세 번째 조건은 일찌감치 불평불만의 싹을 잘라버린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이 설명 안에는 네 번째 조건도 포함된다. 금본위제를 도입하면 도입 국가 간 무역의 흑자-적자는 당연하다는 것이다.

자, 마지막 의미도 중요하다. 무역 불균형으로 적자를 보는 나라는 두 가지 해결책이 있다. 1온스 당 금값 10만원을 책정했는데, 무역적자가 발생한다. 즉, 돈이 사라진다. 한 마디로 시중 통화량이 줄어든다는 얘기. 이때 정부는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다. ①돈을 더 찍어 시중에서 필요로 하는 화폐를 공급하거나 ②화폐공급에 대한 시장의 요구를 무시하는 것이다.

결과? 둘 다 문제다. 돈을 더 찍어내면 금에 연동된 화폐가치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즉, 10만원이었던 1온스 당 금값을 15만원으로 올려야 하는 것이다. 이 경우 '금본위제 이탈'을 의미한다. 그러니 금본위제를 유지하려면 둘째 방법을 택해야 한다. 돈을 찍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과? 쉽다. 한 나라에 화폐량이 줄면? 결국 통화긴축 효과와 함께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을 피할 수 없다. 금본위제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칫 '황천길'일 수 있다는 의미다.

------------------------------------------------------------------------------

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식민과 제국의 길』『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효령로 229번지 (서울빌딩)
  • 대표전화 : 02-501-63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장재열
  • 발행처 법인명 : 한국社史전략연구소
  • 제호 : 이코노텔링(econotelling)
  • 등록번호 : 서울 아 05334
  • 등록일 : 2018-07-31
  • 발행·편집인 : 김승희
  • 발행일 : 2018-10-15
  • 이코노텔링(econotelling)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이코노텔링(econotelling). All rights reserved. mail to yunheelife2@naver.com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장재열 02-501-6388 kpb11@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