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우 청소년에게 새옷 입혀주며 선도.… 본인은 재래시장 옷 입는 등 평생검약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시판된 비누인 무궁화 비누의 제조사 ㈜무궁화 최남순 회장이 24일 오전 6시께 별세했다. 향년 88세. 고인은 남편인 고 유한섭 회장이 작고한 이후 1980년대부터 40여년 동안 회사 경영을 이끌어왔다.회장을 맡기 전부터 남편과 함께 회사 경영에 참여해 무궁화의 1.5세 창업주이자 국내 최초의 여성 기업인으로도 알려졌다.

무궁화 비누는 고 유한섭 회장이 1947년 서울 서소문동 공장에서 제조한 국내 최초 비누다. 이전까지 양잿물로 집집마다 만들어 쓰거나 소규모 가내 수공업 규모로 만들던 비누가 국내 처음으로 상업화한 사례다. 이후 여러 대기업이 비누 시장에 진출했지만, 무궁화 비누는 여전히 국산 빨랫비누의 대명사로 받아들여진다. 경기도 동두천 소재 공장에서 제품을 만들어 공급하며, 지난해 매출은 501억원이었다.
최남순 회장은 이웃 사랑을 몸으로 실천한 걸출한 여성 기업인으로 통한다. 1960년대 초 그의 가족이 서울 을지로6가와 장충동에 거주할 때 인근 구두닦이와 소매치기 소년들을 어머니처럼 보살폈다. 그들에게 새 옷을 입혀주고, 끼니도 해결해주고, 취직할 때 보증을 서 주고, 장가도 들여 주었다. 이 일대 거리의 청소년들에게 그는 자상하면서도 무서운 ‘어머니’이자 ‘여두목’으로 통했다.
한 번은 장충동 공원에서 패싸움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패거리 20명을 불러 모아 새 옷을 사 입히고 당시 도큐호텔 뷔페식당으로 데리고 가 타일렀다고 한다. “너희도 노력하면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어. 행여 부모를 잘못 만나서 이렇게 됐다고 생각하지는 마라. 나나 너희 부모나 너희가 잘 되기를 바라는 건 같은 마음인데 세상이 뜻대로 되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라고.
그러고선 식사하지고 했더니 음식을 앞에 놓고 먹지를 못했다. 우는 아이도 있고, 얼굴이 벌겋게 돼서 최 회장 손만 꼭 잡고 있는 아이도 있고. 그들 청소년 중 탈선한 아이는 없었으며, 나중에 장성해 찾아와 인사할 때 큰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최 회장은 생전에 자신의 꿈을 ‘배고픈 사람 배부르게 해주고, 옷이 없어서 추운 사람은 옷 입게 해주고, 병원 못 가는 사람은 병원 가게 해주는 것’이라고 말하며 실천하려고 애썼다. 그러는 그 자신은 남대문시장과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1만원 정도 주고 구입한 시장 메이커 옷을 즐겨 입는 ‘평화시장 예찬론자’였다. 아침 6시쯤 평화시장에 들러 싸고도 좋은 옷을 골라 입고 다니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남대문표’ ‘평화시장표’라고 자랑하곤 했다.
최 회장이 직원들에게 자주 당부한 삶의 좌우명은 ‘절대 남을 꾸어줄망정 꾸러 다니는 사람이 되지 마라’였다. ‘내가 부족하지 않게 살게끔 해줄 테니, 그 대신 이 회사가 아니면 일할 데가 없다고 할 정도로 열심히 일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이런 최 회장의 뜻에 따라 무궁화는 1989년부터 5년 동안 러시아로 비누 수출을 많이 해 이익을 내자 직원들에게 연간 1200% 상여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유성준 무궁화 사장과 딸 유명숙 무궁화 부회장, 유경희 씨, 유성희 씨 등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7호, 발인은 26일 오전이다. 장지는 경기도 이천시 에덴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