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13:05 (토)
[김성희의 역사갈피] 대가들도 헛짚은 노동시간 단축
[김성희의 역사갈피] 대가들도 헛짚은 노동시간 단축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2.10.24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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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즈, 1930년 마드리드 강연에서 2030년까지 평균 노동 시간은 '주 15시간' 전망
기술과 풍요로 노동 불필요해 여가 시간 어떻게 보낼지가 인간의 가장 큰 이슈 점쳐
주 42시간 근무제에도 불구하고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다가 극도의 신체적·정신적 피로로 무기력증과 자기혐오에 빠지는 '번아웃 증후군'을 호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란 미국 건축가가 있다. 20세기 초 활약한 그는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 도쿄의 제국호텔 등의 대표작을 남겼으며 역사상 가장 영향력이 큰 건축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1930년 프린스턴대학교 강의에서 큰 텃밭이 딸린 교외주택으로 구성된 '브로드에이커 시티'란 미래도시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미래의 노동자들은 오전 10시에 도시로 몰려왔다가 오후 4시면 쫙 빠져나갈 것"이라며 이렇게 일주일에 사흘만 일하고 나머지 4일은 브로드에이커 시티에서 정원을 돌보며 삶을 즐기고 살 것이라 전망했다.

이는 '건축가'의 망상이라 치자. 이건 어떤가. 존 메이너드 케인즈란 영국 경제학자 이름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해 전 세계가 대공황을 벗어나는 데 일조한 경제학의 거인이다. 그의 이름을 딴 학파가 있을 정도니 알 만하지 않은가.

그 케인즈가 1930년 마드리드 강연에서 '우리 손주들을 위한 경제학적 예측'이란 자신의 논문을 정리, 소개했다. 여기서 그는 "100년 내로 경제적 문제는 해결될 수 있거나 적어도 해결 방법이 보일 것"이라며 2030년까지 평균 노동시간은 주 15시간이 되리라 예측했다. 케인즈에 따르면 그때쯤이면 기술과 풍요로 노동이 불필요해져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가 인간의 가장 큰 문제가 될 터였다.

이는 사무직과 관료제의 비생산성을 꼬집은 『가짜 노동』(데니스 뇌르마르크 외 지음, 자음과 모음)에 실린 대가들의 그릇된 '예언' 사례들이다.

하지만 오늘의 노동시장은 어떤가. 한 쪽에선 취업을 하기 위한 '취업 장수생'들이 늘어나는 한편 한 쪽에선 주 42시간 근무제에도 불구하고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다가 극도의 신체적·정신적 피로로 무기력증과 자기혐오에 빠지는 '번아웃 증후군'을 호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노동현장에서 벌어지는 각종 산업재해는 말할 것도 없고.

말이 나온 김에 대가들이 전혀 예측 못한, 책에 실린 사례를 하나 소개한다.

2016년 프랑스 향수회사의 기본 연봉 8만 유로의 한 관리직이 전 고용주를 상대로 40만 유로의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이유가 걸작이었다. 지난 4년 동안 따분해 죽을 정도로 적게 일한 이 44세 남자는 "그렇게 적은 일을 하고 봉급을 받는 게 수치스러울 정도"에 이르러 모든 게 지겨워진 '보어아웃(boreout) 증후군'을 호소한 것이었다.

2009년 한 조사에서 유럽 노동자의 3분의 1이 자신의 업무량이 너무 적다고 응답했으며, 2015년 미국에서 실시된 조사에서는 미국 사무직 노동자의 '주요 업무'가 일과 시간의 불과 46%만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단다.

노동량을 두고 이러니저러니 말이 많지만, 줄일 여지는 여전히 많으며 특히 관리직 업무에 허수가 끼어 있다는 이야기다. 납득이 가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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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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