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00:15 (수)
[패션이 엮은 인류경제사] ① 시대의 '거울' …패션
[패션이 엮은 인류경제사] ① 시대의 '거울' …패션
  • 송명견(동덕여대 명예교수ㆍ 칼럼니스트)
  • mksongmk@naver.com
  • 승인 2022.10.24 13: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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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은 인간의 삶과 더불어 그 시대의 정치ㆍ경제ㆍ문화ㆍ사회ㆍ 과학을 담아 내
1967년 1억3700만 달러어치 수출해 단일품목 최초 수출액 1억 달러 돌파 쾌거
1990년대 중반까지 수출 선봉…대한민국의 첨단 산업국가 도약에 주춧돌 역할

인간은 이 땅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무덤에 이르기까지 옷을 입고 한 세상을 산다. 벌거벗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다. 

옷이 '제 2의 피부'라고 하는 이유이다. 옷은 인체 보호는 물론, 인간을 기쁘게도, 때론 부담스럽고 곤혹스럽게도 한다. 뿐만 아니라 삶의 전쟁터에서 없어서는 안 될 '무기' 같은 역할도 한다.

전쟁에 따라 적절한 무기가 필요한 것처럼 옷도 그렇다. 결과적으로 옷이 생명을 지키고, 나아가 한 사람의 행·불행을 가르는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는 이야기다.

또한 옷은 인간의 삶과 함께 하며 그 시대의 모든 것을 담아낸다. 정치, 경제, 문화, 사회, 과학이 모두 옷 안에 배어 있다. 때문에 패션을 시대의 거울이라고 한다. 이처럼 세상을 흠뻑 머금은 '옷'이라는 작은 아이템을 통해 인간은 개성을 표현한다. 나아가 많은 사람들이 이 옷을 수용하여 커다란 물결을 이룰 때 패션이 되고, 문화가 되며, 역사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산업혁명에 성공한 영국이 그 대표적 사례다.

우리나라를 수출 주도형 강국으로 견인했던 일등공신은 패션산업이었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br>
우리나라를 수출 주도형 강국으로 견인했던 일등공신은 패션산업이었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다행히 세계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체제를 갖추자 우리나라도 이 물결에 편승하였다. 1950년 어렵사리 수출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이어 바지, 스웨터 같은 옷이 비록 초라한 규모이지만 수출 대열에 동참하였다. 그러다가 1967년에는 패션산업으로 1억3700만 달러라는 최초 수출액 1억 달러의 쾌거를 이루어냈다. 당시 국내 총 수출액 3억5900만 달러의 38.2%를 차지하는 액수였다. 이 분야의 수출이 크게 늘면서 재계의 판도에도 변화가 왔다. 코오롱, 효성, 대우, 한일합섬 등 섬유업체들이 부상했다.

이 화려한 성공 뒤에는 피나는 노력과 안타까운 희생도 따랐다. 전태일 열사가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 앞에서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고 외치며 분신하는 일도, 구로공단의 열악한 노동 조건을 고발하는 구로동맹 파업 사태도 겪어야 했다. 그런 아픔과 시련 속에서도 1973년 수출 10억 달러를 달성했다. 마침내 남미의 정글, 중동, 아프리카까지 세계 122개국에 우리 손으로 만든 옷이 수출되면서 1987년 말에는 섬유 수출액이 117억 달러를 넘겼다. 전체 수출액 472억 달러의 4분의 1에 달하는 액수였다. 참고로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1953년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76달러였고, 1987년에는 3,480달러로 세계 평균치 3,306.3달러보다 많았다. 여기에 패션산업이 엄청난 기여를 한 것이다.

1990년대 중반 들어 우리나라를 수출 주도형 강국으로 견인했던 일등공신 패션산업이 반도체 산업에 그 자리를 내어주었다. 하지만 패션산업이 대한민국을 세계 제1의 첨단 산업국가로, 나아가 경제 선진국으로 이끄는 기적을 일구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음을 자타가 공인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 기적의 바탕에는 혼신을 다하여 인재들을 키워낸 부모들과 수고와 눈물과 한으로 헌신한 산업역군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더불어 영국이 산업혁명을 완수하고 세계 제1의 나라로 군림할 수 있었던 밑바탕에 패션산업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나라도 바로 그 '패션의 힘'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다고 큰소리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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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명견(동덕여자대학교 명예교수ㆍ칼럼니스트)

송명견(동덕여자대학교 명예교수ㆍ칼럼니스트)= 40여년 동안 옷에 대해 공부하고 학생들을 가르친 의생활문화 전문가. 그 과정에서 '옷이 곧 사람이고 역사'라는 점을 발견하고, 이를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글을 쓰는 '옷 칼럼니스트'의 길을 걷고 있다. <패션 인사이트>를 시작으로 <아시아경제신문> <농촌여성신문> <강남 라이프>(서울 강남구청 소식지)에 동서고금의 옷과 패션산업을 주제로 글을 연재했다.

또한 <기능복>(1998년, 공저)부터 <바느질하는 여인이 그립다>(2006년), <옷, 벗기고 보니>(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 교양도서 선정), <옷은 사람이다>(2014년), <옷으로 세상 여행>(2018년) 등의 책을 저술했다. 그는 오늘도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사회의 모습과 시대적 가치'를 찾고자 고민한다.

서울대학교 농가정학과를 나와 이화여대에서 석사를, 중앙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덕여대 패션디자인학과 교수로 재임하며 일본 문화여자대학 연구교수, 영국 맨체스터대학 연구교수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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