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07:35 (금)
◇新남방정책과 華商역사⑥화교자본 덮친 외환위기
◇新남방정책과 華商역사⑥화교자본 덮친 외환위기
  • 홍원선 이코노텔링 대기자(중국사회과학원박사ㆍ중국민족학)
  • wsh2003@hotmail.com
  • 승인 2019.10.27 21:2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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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사업과 금융에 치중했던 화인기업들 큰 타격
담보없이 신용거래한 '華商의 거래관행' 禍 더 키워
금융사 보유했던 그룹 규모의 기업은 파산 등 어려움

 20세기말 거대 화교자본에 재앙이 닥쳤다. 바로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다. 1997년 7월 태국에서 시작된 위기는 도미노처럼 다른 동남아국가를 전염돼 동남아시아의 금융시장은 대혼란을 겪었다. 특히 지역 경제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화인의 금융사들이 속절없이 무너졌다.

 화인기업은 크게 위축됐고 이로인해 동아시아 경제는 엄청난 타격을 입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양적 성장에만  치중하던  화인기업의 거품이 결국 터졌다는 점에서 이 외완위기는 화인기업들의 체질 개선의 기회가 되기도 했다.

외환위기가 닥치자 태국의 기업들이 경영난을 겪고 실업자가 쏟아지자 태국 국민들은 정부에 항의를 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외환위기가 닥치자 태국의 기업들이 경영난을 겪고 실업자가 쏟아지자 태국 국민들은 정부에 항의를 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외환위기가 터지자 화폐가치가 뚝뚝 떨어졌다. 많은 금융기관이 도산하고 증권시장과 부동산시장이 얼어붙었다. 외환보유고가 바닥을 드러냈고 대외채무부담이 급증했다. 인플레와 함께 실업사태가 덮쳤다. 경제가 추락하자 강고하던 정치체제도 무너졌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철권을 휘두르던 수하르토가 권력을 잃자 정치, 사회혼란이 극심했다.

 화인기업에 들이닥친 외환위기의 충격은 화인들이 장학했던 경영지역, 경영방식 그리고 영위 업종에 따라 그 충격의 강도는 조금씩 달랐다. 금융과 부동산을 주력업종을 하는 기업집단에 가장 큰 타격이 가햐졌다. 또 제조업 가운데는 내수시장 비중이 큰 기업이 수출 위주의 기업이 받는 충격보다 훨씬 컸다. 당연한 지적이지만 지역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외완위기가 엄중한 지역일수록 화인기업이 받는 영향이 컸다. 즉 인도네시아와 태국에서 가장 쓴 맛을 많이 봤다. 그 다음  말레이시아와 필리핀에서도 상당히 많은 화인기업들이 경영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싱가포르나 홍콩, 대만의 기업들이 받은 충격은 상대적으로 작았다.

태국의 외화,특히  달러의 곳간이 바닥을 드러내자 태국의 바트화는 하루아침에 반토막이 나는 등 가치가 폭락했다.
태국의 외화,특히 달러의 곳간이 바닥을 드러내자 태국의 바트화는 하루아침에 반토막이 나는 등 가치가 폭락했다.

자금조달과 관련된 경영방식의 측면에서 보면 채무가 많은 기업집단과 채무가 적은 기업집단이 받는 충격이 달라, 외채가 많고 특히 채무가 미국 달러화로 표시된 경우 하루아침에 문을 닫는 기업들도 나왔다. 오히려 자본규모가 작은 중소규모의 화인기업의 피해가 적었다.

 위기가 닥치니 생존전략을 서둘러 내놨다. 빚이 많은 화인 기업들은 서둘러 자산을 매각했다. 먼저 산하의 많은 기업을 팔아 부채를 상환하거나 유동자금으로 확보하해 새로운 유망기업이 나오면 사들인다는 전략을 세웠다. 그 다음 주식 발행을 통한 외부자금의 조달로 기업의 재무구조를 개선했다.

  이 과정에서 기업의 경영권이나 소유권이 3자에게 넘어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세 번째는 기존의 사업전반을 재검토, 핵심사업 위주로 사업구조를 조정해 경영역량을 집중하는 등 대대적인 사업재편 바람이 불었다.

이처럼 동아시아의 외환위기는 화인기업에게 큰 충격을 주었지만 그만큼 많은 것을 그들에게 깨우쳐 주는 계기가 되었다. 우선 지적할 것은 무분별한 사업확장이 기업경영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인식하게 됐다. 1970년대 이후 급속한 경제발전에 발맞춰 기업들의 자금조달이 용이해지자 화인 기업인들의 사업 의욕은 넘쳐났다.. 하지만 정교한 시업 분석과 평가가 부족한 상태에서 새로운 사업분야로 진출을 해 화를 키웠다는 반성이 뒤따랐다.  

또 화인기업인들 사이에 존재해오던 그동안의 '네트워크 경제활동'은 금융위기 사태를 계기로 보다 제도화하고 규범화한 경영형식으로 개선됐다. 그간 화인기업가들의 사업관습은 신용을 중시했다. 이를 기반으로 기업가들이 공동사업을 벌였다. 계약서를 쓰지도 않았고 구두로 합의하면 그만이었다.

 이로인해 분쟁이 적잖았다. 동남아 금융위기때 화인금융기관이 대거 부실해진 것은 대출의 상당부분이 구두협의로만 이뤄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담보도 없는 경우가 적잖았다.  .특히 같은 그룹안에 있는 금융기관의 이런 거래관행은 스스로 발목을 잡았다.  국유화된 태국 경화은행의 파산은 그룹 내부 기업에 대한 지나친 융자가 빚은 참사였다. 부실채권이 쌓인 그룹내 금융사들은 대개 그런 모습으로 무너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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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수 2019-10-28 15:24:56
역사에서 배운다는 말 처럼, 반추하여 미래를 고민해보는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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