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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5) 대공황과 히틀러 '위대한 독재자'㉗배우인가, 독재자인가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5) 대공황과 히틀러 '위대한 독재자'㉗배우인가, 독재자인가
  • 이코노텔링 이재광 대기자
  • jkrepo@naver.com
  • 승인 2022.10.11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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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플린이 " 그가 우리 모두 중 가장 위대한 배우 "라고 가리킨 히틀러
비아냥도 있지만 그의 아들이 쓴 자서전엔 "아버진 히틀러에 빠졌다"
히틀러는 청중 사로잡으려 가수의 발성법과 영화배우의 제스처 배워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아라! 세계지배의 야욕을 갖고 있던 히틀러의 첫 번째 과제였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징집령을 거부하는 러시아 남성들의 반발을 보면 대중의 마음을 사로 잡는 게 왜 중요한지 알게 된다. 실제로 히틀러는 이를 위해 엄청난 공을 들였다.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발성법과 제스처를 배웠고 무대장치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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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우리 모두 중 가장 위대한 배우야!"

채플린이 누군가를 가리켜 이렇게 표현했다. 누굴까? 1936년 자신의 영화 <모던 타임스>보다 무려 120만 달러나 더 많은 돈을 벌게 해 주고 오스카 여우주연상까지 거머쥔 <위대한 지그펠드>의 루이스 라이너? 1939년 제작돼 자신의 그 어떤 영화보다 더 큰 명성을 얻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명배우 클라크 게이블? 그는, 1940년 <위대한 독재자>를 흥행 2위로 밀어낸 영화 <붐타운>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아니면 <위대한 독재자> 다음해에 만들어진 불후의 명작 <시민 케인>의 감독 겸 배우 오손 웰즈?

연설중인 히틀러.
연설 중인 히틀러.

아니다. 자신을 포함해 이 모든 위대한 배우들은 그저 '그'를 제외한 '우리'일 뿐이다. '그'는 '우리 중 최고'인 것이다. 누굴까? 채플린으로부터 이 어마어마한 찬사를 받은 인물.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의 원흉, 아돌프 히틀러다. 채플린은 히틀러를 주연으로 한 레니 리펜슈탈의 두 편의 다큐 <의지의 승리(1934)>와 <올림피아(1938)>는 물론 그를 주제로 한 다양한 뉴스를 섭렵했다. 그리고 채플린은 결론적으로 히틀러에게 이런 평가를 내렸던 것이다. 물론 그 말 안에는 '감탄'과 함께 어느 정도의 '비아냥'도 들어 있을 수 있다.

채플린이 둘째 부인 리타 그레이와 낳은 아들 찰스 채플린 주니어를 통해 우리는 이 같은 내용을 알 수 있다. 주니어는 1960년 쓴 『내 아버지, 찰리 채플린(My Father, Charlie Chaplin)』을 통해 채플린의 감춰진 이면 상당 부분을 밝힌다. 이 책은 당시 가족 이외에는 절대 알 수 없는 채플린의 사적(私的) 측면을 다뤄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일부 언론은 "찰리 채플린에 대한 '폭로'"라는 표현까지 썼다. 지금도 채플린 연구자에게는 필독서다.

■ 채플린, "내가 히틀러처럼 됐을지 모른다."

이 책에서 주니어는 히틀러에 대한 채플린의 다양한 평가와 함께 <위대한 독재자> 탄생의 배경을 알려 준다. 주니어는 채플린이 히틀러에 빠졌던 때를 1937년 가을로 기억한다. 이 무렵 누군가가 채플린에게 신문 스크랩을 보냈는데, 독일에서는 채플린이 히틀러와 닮았다는 이유로 채플린의 모든 영화를 상영 금지시켰다는 내용이었다. 주니어는 이 신문 스크랩이 <위대한 독재자> 탄생의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그것을 읽는 아버지의 마음에 무언가가 꽂혔습니다. 실제로 바보 같은 콧수염 등 '꼬마 방랑자(Little Tramp)'의 외모는 히틀러를 꼭 빼 닮았지요. 아버지는, 좀 더 멀찍이서 보며, 자신과 독일 독재자 사이에서 또 다른 유사점을 발견했습니다. 같은 해 같은 달에 태어난 두 사람은 불과 나흘 차이였고 어린 시절 둘 모두 극심한 빈곤을 겪었지요. 그러나 그들의 운명은 극과 극이었습니다. 한 명은 수백만 명을 울부짖게 만들었고 다른 한 명은 온 세상을 웃게 만들었습니다. 아버지는, 히틀러를 생각할 때마다, 절반의 공포와 절반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전율을 느꼈습니다."

공포, 매력, 전율. 주니어의 글 중 이 세 단어가 많은 것을 알게 해 준다. 채플린은 히틀러를 통해 비슷한 운명과 성격을 갖는 두 인물이, 작은 어긋남으로 인해 궁극적으로는 얼마나 큰 차이를 갖게 되는지 깨달았던 것으로 보인다. 운명에의 작은 간극으로 채플린이 히틀러가 될 수도 있었고 히틀러가 채플린이 될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자신과 비슷한 운명과 성격을 갖고 있지만 정 반대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만났다고 가정해 보자. 누구든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주니어에 따르면, 이 상황에 대해 채플린의 말은 이랬다.

"그는 미치광이이고 나는 희극배우다. 하지만 그 반대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은총이 없었다면, 아마도, 내가 그처럼 됐을지 모른다."

이 말에 비춰보면 채플린은 '히틀러=정치인', '채플린=배우'로 규정짓고 있다. 그런데 그는 왜 히틀러를 가리켜, '배우' 그것도 '우리 중 최고'라고 말했던 것일까? 이를 이해하려면 우선 '배우'라는 단어에 대한 개념 정의가 필요하다. '배우'란 무엇인가? '영화나 연극 등에서 특정 캐릭터를 연기하는 인물'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히틀러'라는 '인물'은 '히틀러라는 권력자를 연기하는 인물'일 뿐이다. 채플린은 그 연기를 '최고'라 평했던 것이다.

히틀러에게는 꿈이 있었다. 세계 지배였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했다. 누군가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 거기에는 '언어'가 필요하다. 말로 하는 언어, 즉 '구어(口語, verbal language)'뿐 아니라 몸짓, 손짓 등 제스처를 포함한 '비구어(非口語, non-verbal language)' 모두를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는 타고난 연설꾼이었다. 그가 제대 후, 추후 '나치당'으로 불릴,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에서 급속하게 성장한 것도 호소력 강한 그의 연설 때문이었다.

가족이 모여 함께 라디오를 청취하는 1930년대 독일 가정.
가족이 모여 함께 라디오를 청취하는 1930년대 독일 가정.

그러나 '타고난 재능' 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는 청중을 사로잡는 더 많은 '기법(技法)'을 연구하고 배웠다. 오페라 가수를 불러 발성법을 배웠고 영화배우에게 제스처를 배웠다. 청중의 심리도 연구 대상이었다. 그 결과 연설은 주로 저녁 시간에 이뤄졌고 대부분 한 시간 정도 늦게 등장했다. 청중이 지쳐 정신이 혼미해 지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무대장치와 조명까지 신경을 썼다. 영화ㆍ연극 전문가들이 그 일을 맡았다. 비행선을 타고 퇴장하는 방식은 요즘의 록 스타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히틀러가 선전에 관심을 가진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1925년 쓴 『나의 투쟁』에 이미 중요한 전략이 정리돼 있다. 주요 내용은 이렇다. ➀추상적인 관념을 피하고 논리보다 감정에 호소하라, ➁특정한 적을 상정하고 격렬하게 비난하라, ➂몇 가지 정해진 단어나 문구를 지속적으로 반복하라, ➃주요 내용은 언어적 시각적으로 끊임없이 반복하라 등이다. 추후 그의 선전 전략은 더욱 발전하여 목소리톤이나 제스처, 심지어 무대장치나 조명까지 신경 쓰기에 이른다.

미디어 활용에도 두각을 나타냈다. 당시 가장 중요한 매체는 라디오였다. 1901년 개발된 라디오 관련 기술은 20년 만에 세계를 휩쓸었다. 1920년 미국에서 세계 최초의 상업 방송국이 탄생했으며 이후 라디오는 위정자들이 가장 애용하는 선전도구가 됐다. 라디오는 ➀육성을 전달하기 때문에 친근감 향상에 기여하며 ➁전국을 커버할 수 있고 ➂통제가 용이한데다가 ➃글자를 몰라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어떤 매체보다 강력한 호소력을 지녔다 할 수 있다.

히틀러는 선전도구로서의 라디오를 적극 활용했다. 당시 독일에서 사용가능한 라디오 채널은 하나뿐이었다. 나치는 이를 어렵지 않게 통제할 수 있었다. 이 상태에서 저가의 보급형 라디오를 개발해 전국 각지에, 심지어 빈곤 가구까지 구입이 가능하도록 조치했다. 효과는 컸다. 1933년 450만대였던 라디오는 1942년 1600만대로 늘어났다. 여기에 카페나 공공시설 등에 확성기를 부착시켜 중요한 방송은 공공시설에서도 청취가 가능하도록 했다. 이로써 히틀러는 전 국민을 상대로 한 연설이 가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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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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