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2 08:55 (수)
권철현 연철 창업자의 비운… 뺏긴회사 못찾고 운명
권철현 연철 창업자의 비운… 뺏긴회사 못찾고 운명
  • 성태원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 iexlover@hanmail.net
  • 승인 2019.06.21 10: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출드라이브 정책에 반기 들었다가 연합철강 경영권 넘겨… 인수한 국제그룹도 불운
동국제강이 인수하자 지분 30% 평생간직…말년엔 한보철강 인수에 마지막 불꽃태워
권철현 연합철강 창업자는 77년 연합철강을 빼앗긴 후 26년동안 기업을 되찾는데 매진했다. 박정희 정권에 밑보였다가 기업을 잃은 후 타계전까지 연합철강 지분 30%를 유지하며 국제그룹에 이어 연철을 인수한 동국제강의 증자에 끝까지 반대하는 등 연철 재인수에 여생을 바쳤다.
권철현 연합철강 창업자는 77년 연합철강을 빼앗긴 후 26년동안 기업을 되찾는데 매진했다. 박정희 정권에 밑보였다가 기업을 잃은 후 타계전까지 연합철강 지분 30%를 유지하며 국제그룹에 이어 연철을 인수한 동국제강의 증자에 끝까지 반대하는 등 연철 재인수에 여생을 바쳤다.

연합철강 창업자인 고 권철현(權哲鉉) 회장은 한국 철강업의 선구자였다. 1962년 부산에 연합철강을 세우고 국내 처음으로 고급 철강재인 냉연 강판 생산에 도전해 한국 철강제품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장본인이었다. 철강기업인으로써 한국 철강역사에 커다란 족적 하나를 남겼으니 그가 느낀 보람이 컸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비운(悲運)으로 점철된 생애를 살다 간 철강기업인 이었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드는 건 왜일까. 그는 2003년 5월 18일, 78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사인은 급성 심장마비였다.

권철현 연합철강 창업주.
권철현 연합철강 창업주의 젊은시절 모습.

그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연합철강 경영권을 창업 15년 만인 1977년(박정희 정부 시절) 타의로 국제그룹에 넘겨줘야만 했다. 1985년 전두환 폭압정권에 의해 국제그룹이 공중분해 되면서 연합철강은 9년 만에 또다시 동국제강그룹으로 넘어가고 만다. 1대 주주가 두 번이나 바뀐 뒤로도 2대 주주 자격만큼은 놓지 않았던 그는 눈을 감을 때까지 무려 26년 동안 오매불망(寤寐不忘) 회사 되찾는 꿈을 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떠났다.

그는 26년 동안 국제보다는 동국제강과 힘겨루기를 더 많이 했다. 동국제강에 넘어간 후 무려 17년 동안 끝까지 증자를 반대하며 동국제강과 힘겨루기를 했다. 회사를 되찾아 철강업으로 재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동국제강과는 부산에서 함께 철강업을 했던 만큼 평소 라이벌 의식이 있었던 터라 더욱 힘겨루기를 했다는 풀이도 있다.

말년에 그의 뜻을 이어받은 장남(권호성 AK캐피탈 사장)이 회사 되찾기와 한보철강 인수전에 뛰어 들었으나 우여곡절 끝에 실패하고 만다. 2003년 11월 그는 뜻밖에도 상속 받은 연합철강 지분 전량을 동국제강에 넘기고 철강업에서 손을 떼고 만다. 아버지 권 회장이 편안하게 영면하기를 바랐던 것일까.

연합철강은 국내 처음으로 냉연 강판을 만들어 권쳘현 창업주는 한국 철강업계 선구자로 꼽혔다.사진은 70년대 연합철강 부산공장 내부.
연합철강은 국내 처음으로 냉연 강판을 만들어 권쳘현 창업주는 한국 철강업계 선구자로 꼽혔다.사진은 70년대 연합철강 부산공장 내부.

1986년 연합철강을 넘겨받은 동국제강그룹은 2003년 11월 2대 주주 권씨 측 지분 을 인수한 것을 계기로 다음해 유니온스틸로 개명하는 등 독자 경영권을 구축했다. 마침내 연합철강(유니온스틸)은 2015년 동국제강에 흡수·합병돼 창업 53년 만에 생산시설과 기술만 남긴 채 이름(법인명)조차 잃고 말았다. 일각에서 빼앗긴 회사라도 회사가 커갈 수 있도록 2대 주주인 권 회장이 증자 등에 도움을 줘야만 했다는 비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권철현의 연합철강과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몇몇 일화가 있다. 철강 무역업을 하던 그는 1962년 연합철강을 부산에 세우면서 한국 산업역사에 남을 만한 유명한 싸움을 촉발한다. 4년(62~65년)을 끌었던 소위 ‘열간 vs 냉간’ 논쟁이었다. 당시 일본 차관을 들여와 국내 처음으로 냉연 제품을 생산하려 했던 그였기에 이 싸움에 그는 사활을 걸었다.

‘열간’은 ‘열간 압연(熱間 壓延=열연)’ 방식을, ‘냉간’은 ‘냉간 압연(冷間 壓延=냉연)’ 방식을 각각 가리킨다. 냉간 압연이라고 해서 쇠를 얼려서 압연 하는 건 아니다. 열간 압연 온도(7백~1천1백℃)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1백℃ 안팎)에서 압연해 제품을 만드는 게 차이다. 자동차·가전제품 등에 쓰이는 고급 강판이 냉연 제품이다. 이에 비해 열연은 고철을 녹여 뜨겁게 달구어진 슬래브를 수동식 압연기로 여러 번 밀고 당겨 만들어낸 제품이다. 따라서 품질이 낮다.

당시 국내엔 냉연설비가 없었다. “정부가 기존 열연업체를 더 지원해야 한다, 아니다 냉연설비 도입을 허용해야 한다”며 업계가 둘로 갈라져 피 터지는 싸움을 벌였다. 한국철강(사주 신영술)의 열연 고수(固守)에 맞서 연합철강(권철현)과 일신제강(주창균)이 신규 냉연 설비 허용을 주장했다. 양측 싸움이 워낙 첨예했던 나머지 도중에 정치권 로비자금 수수설이 터져 나오는 등 정치쟁점화 되기도 했다.

이 논쟁은 결국 냉연 측의 승리로 끝나 한국도 고급철강인 냉연 국산화 시대를 맞는다. 권철현의 연합철강은 포항종합제철이 설립되기 전까지 일본에서 핫코일을 수입해 두께 0.2~1.5㎜의 냉연강판을 생산했다. 연합철강은 수출에도 크게 기여해 72년 금탑산업훈장을 받았고, 74년엔 국내 단일 업체 처음으로 수출 1억불 탑을 수상하기도 했다.

연합철강의 그 같은 공적도 한 순간이었다. 75년 오일 쇼크 후 박정희 정권은 수출 드라이브에 전력을 다했다. 정부의 무리한 수출 독려에 권 회장은 손해를 보고는 수출을 못하겠다고 버텼다고 한다. 때마침 미국에서 골수암으로 투병 중이던 어린 딸에게 치료비를 보낸 그를 정부가 외환관리법 위반 및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했다. 결국 그는 국제그룹에 연합철강의 경영권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재계에는 그가 당시 유신 정권을 못마땅해 하다 화를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국제그룹이 해체의 길을 걷던 86년 당시 정부는 당초 연합철강을 창업자인 권철현 회장에게 되돌려주기로 하고 그에게 인수자금을 마련하라는 통보까지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인수 바로 전날 상황이 바뀌어 동국제강에 경영권이 넘어갔다는 것. 그는 10여 차례 넘게 소송을 벌이는 등 경영권 되찾기에 힘썼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연합철강을 국내 최대(연산 1백만t 규모)의 냉연업체로 키우는가 하면 고 이병철 회장 등과 함께 재계 주요 인사들의 모임인 수요회 고정 멤버였을 정도로 기업인으로서의 입지가 탄탄했다. 하지만 평생 검소한 생활을 고집했다고 한다. 즐기던 점심 메뉴가 생 갈비 두어 대에 평양냉면 한 그릇 정도였다. 평소 상인이자 기업인 집안임을 자부했으며, 상인은 남을 속이지 않아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서슬이 퍼렇던 박정희 정권 아래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다가 경영권을 빼앗기는 비운의 기업인이 되고 말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효령로 229번지 (서울빌딩)
  • 대표전화 : 02-501-63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장재열
  • 발행처 법인명 : 한국社史전략연구소
  • 제호 : 이코노텔링(econotelling)
  • 등록번호 : 서울 아 05334
  • 등록일 : 2018-07-31
  • 발행·편집인 : 김승희
  • 발행일 : 2018-10-15
  • 이코노텔링(econotelling)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5 이코노텔링(econotelling). All rights reserved. mail to yunheelife2@naver.com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장재열 02-501-6388 kpb11@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