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8 14:05 (목)
[김성희의 역사갈피]성추문 얼룩진 英왕실…어두운 면 적잖아
[김성희의 역사갈피]성추문 얼룩진 英왕실…어두운 면 적잖아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2.09.19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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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4세가 방탕한 생활로 막대한 빚에 시달리자 의회가 고종사촌과 결혼조건으로 탕감해 줘
초야만 치른 후 다른 여자와 대놓고 엽색행각…왕비 캐롤라인도 1814년에 유럽 건너가 염문
능력이나 인품이 아니라 핏줄로 권세와 명망을 누리는 왕실에 열광하는 것 재론 여지 시각도
영국을 찢어 놓은 '캐롤라인의 위기'로 당시 영국 왕실은 단합의 상징이 되지 못했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세상을 떴다 해서 지구촌이 떠들썩하다. 각국의 정상들이 조문을 위해 몰려들 예정이고, 시민들의 조문 행렬이 몇 킬로미터에 이른다니 말이다. 따지고 보면 21세기에 '왕'이 갖는 의미가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고, 기껏해야 '셀럽'에 불과한 남의 나라 국왕의 서거에 국내 언론마저 연일 호들갑을 떠는 걸 보면 고개가 갸웃해지는 건 비뚤어진 심사일까.

영국 왕실이란 것이 사실 그리 대단할 것도 없음을 보여주는 사실이 있다. 영국의 문필가 폴 존슨이 1815~1830년의 세계사를 다룬 『근대의 탄생』(살림)에 실린 '캐롤라인 위기'다.

영국 왕 조지 4세는 병든 아버지를 대신해 오랫동안 섭정을 하다가 1820년 정식으로 왕위에 등극했다. 왕자이던 시절 '국왕의 허가를 받지 못한' 비밀 결혼을 했던 조지 4세는 방탕한 생활로 빚에 쪼들린 끝에 의회가 부채를 탕감해 주는 조건으로 제시한 고종사촌 캐롤라인 공주와 '마음에 없는' 결혼을 했다. 한데 조지 4세는 캐롤라인의 외모에 불만이어서 술에 취해 부축을 받을 정도인 상태로 첫날 밤을 치렀다고 한다.

당연히 이들의 결혼생활은 삐걱거렸다. 간신히 두 사람 사이에 샬롯 공주만 얻고는 4반세기 동안 별거 상태에 들어갔다. 캐롤라인은 온갖 스캔들을 빚고, 1814년에는 유럽으로 건너가 염문을 뿌리기도 했다. 그녀가 드니 스미스 경과 춤을 추었을 때 "그는 그녀의 슈미즈와 잠옷을 입고, 그녀는 그의 옷을 입은 모습"이 목격되었다는 식의 추문이 줄을 이었다.

그러니 어쩌면 조지 4세가 왕위에 오르자마자 캐롤라인의 부정에 관한 증인과 증거를 모아 왕비 자격을 박탈하는 조치를 취한 것이 이해될 법하다. 그런데 의회에서 캐롤라인의 불륜 여부를 심의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증인 매수와 위증이 판쳤고, 이탈리아 출신 증인들은 세간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이는 이혼 전에 이미 레이디 코닝햄과 동거하는 등 권력보다 쾌락을 탐한 조지 4세 탓이 컸다. 샬롯 공주조차 "어머니가 나쁜 사람이었다 하더라도, 아버지가 그처럼 철저하게 나쁘게만 행동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상황이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라 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정당 간에도 논쟁이 벌어지고, 적지 않은 하사관들이 왕비의 건강을 위해 축배를 드는 등 여론은 극명하게 갈렸지만 "왕비가 죄는 있지만 무죄가 되어야만 한다"는 비논리적 결론이 대세였다. 민심이 흉흉해 나라가 양분될 지경에 이르자 의회는 소송을 취하하는 대신 왕비가 영국을 떠나는 것으로 위기를 넘겼다. 캐롤라인은 1821년 웨스터민스터 성당에서 열린 조지 4세의 대관식에 참석하지 못했으며 그 뒤 20일 만에 사망했다 것이 후일담이다.

이것이 영국을 찢어 놓은 '캐롤라인의 위기'로 당시 왕실은 실로 단합의 상징이 아니라 분열의 단초였던 것이다. 세상이 달라진 마당에 능력이나 인품이 아니라 핏줄로 권세와 명망을 누리는 개인에 열광하는 것은 생각해 보아야 할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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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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