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04:30 (일)
[김성희의 역사갈피]홍범도 의병투쟁 누가 무력화했나
[김성희의 역사갈피]홍범도 의병투쟁 누가 무력화했나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2.09.05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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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란 탄약 구하기 위해 두 밀사를 러시아로 보냈지만 뜻 못 이뤄
노보키엡스크에 있던 이범윤(李範允)측이 군자금 뺏고 옥에 가둬
대한제국 고위 관료이자 군 사령관이라며 '평민' 홍범도 얕잡아 봐
산포수로 구성된 홍범도의 의병부대는 1908년이 전성기였다. 사진=독립기념관/이코노텔링그래픽팀.
산포수로 구성된 홍범도의 의병부대는 1908년이 전성기였다. 사진=독립기념관/이코노텔링그래픽팀.

지난주, 그러니까 8월 29일은 '경술국치일'이었다. 시나브로 국권을 잃어가던 대한제국이 이른바 '한일병합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결정적으로 나라를 빼앗긴 날이다. 내세울 것 없는 아픈 날이니만큼 조용히 넘어갔지만, 이즈음 독립운동사를 다룬 책을 뒤적이는 것이 무의미하지는 않을 터다.

사회주의자와 여성 위주로, 그간 '교과서'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독립투사와 사건을 다룬 『독립운동 열전』(임경석 지음, 푸른역사)이다. 그 2권에 홍범도를 다룬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1920년 봉오동 전투에서 독립군 최대의 승전을 거둔 투사, 지난해 무려 78년 만에 카자흐스탄에서 유해가 봉환된 바로 그 인물이다.

산포수로 구성된 홍범도의 의병부대는 1908년이 전성기였다. 한때 2,800명의 대부대로 함경도 일대에서 산악지대 거점도시를 잇달아 점령하는 등 기세를 올렸다. 하지만 그해 여름부터 밀리기 시작했다. 군수품, 특히 그중에서도 탄약의 부족이 결정타였다. 굶주림과 추위는 어찌어찌해서 견딜 수 있어도 탄약 부족은 대책이 없었다. 홍범도는 당시 일본군 소부대를 만나도 "매를 본 꿩이 숨듯" 달아나야 했다고 회고했다.

해외로 밀사를 파견하여 탄약을 구매하기로 하고 조화여, 김충렬 두 사람을 두만강 건너 러시아 영토인 노보키엡스크로 파견했다. 거기엔 대한제국의 전직 고위 관료이자 군사령관이던 이범윤(李範允)이 수백 명의 의병부대를 거느리고 있어 탄약을 구하기에 적합했다.

두 밀사는 일본군과의 전투를 통해 노획한 일본돈 2만 원과, 밀사들의 신원을 보장하면서 임무 수행을 도와달라 요청하는 의병장 홍범도의 편지를 들고 노보키엡스크로 향했다. 하지만 이후 이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오히려 이범윤 부대의 옥중에 수감되었다는 소식만 들려왔다.

결국 탄약을 보충하지 못한 홍범도 부대는 궁여지책으로 압록강변의 일본군 요새를 습격했지만 실패하고 쫓기다 압록강을 건너 망명한 뒤 부대를 해산해야 했다. 이후 홍범도 일행은 만주벌판의 겨울 바람을 뚫고 57일간 쉼 없이 걷는 등 고국을 떠난 지 석 달 10일 만에 이범윤이 있던 노보키엡스크에 도착했다.

거기서 밀사들이 군자금을 빼앗기고 갇힌 사정을 알아보니 기막혔다. 이범윤은 밀사들의 신원증명이 부실했다거나 자기는 체포 사실을 몰랐다고 두루뭉술 대답했지만 실은 '평민' 홍범도의 신분 탓이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대한제국 황제가 임명한 종3품 관료이자 북부 산악지방의 포수 동업조합의 대표라고 자부한 이범윤은 평민 의병장 홍범도와 산포수로 구성된 그의 부대는 자기 지휘를 받아야 하며 군자금 역시 상급자인 자신에게 관할권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랬다. 의병부대 중 전투력이 가장 뛰어났던 함경도 부대를 무력화한 것은 일본군이 아니라 한국 출신의 양반 의병장이었다. 그게 우리가 미처 잊고 있던 독립운동의 이면이자 민낯이었다. 이런 분통 터질 일이 이뿐이었으랴, 아니 지난날의 일일 뿐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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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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