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1 15:05 (화)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5) 대공황과 히틀러 '위대한 독재자' ㉒영화의 전개기법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5) 대공황과 히틀러 '위대한 독재자' ㉒영화의 전개기법
  • 이코노텔링 이재광 대기자
  • jkrepo@naver.com
  • 승인 2022.08.29 11: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러티브 ㆍ 프레임 ㆍ 프로파간다는 관객의 시선과 시각, 공감을 유도하는 감독의 의도
'그때 그 사람들'은 비판 받았지만 '클래식'에는 장애인 단체나 인권 운동가의 반발 없어

영화 <위대한 독재자>는 당대 최고의 영화인 채플린이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권력자 히틀러를 주제로 만든 영화였다. 채플린은 이미 <모던 타임스> 개봉 후 '공산주의 프로파간다 영화'라는 비판에 시달렸던 경험이 있다. 개봉 전부터 나온 <위대한 독재자>에 대한 '프로파간다' 우려는 한편으로 자연스럽고 한편으로 당연한 일이었다.

------------------------------------------------------------

자, 경제 얘기는 이제 끝났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자. 이를 위해 이 시리즈 맨 앞으로 갈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가 많은 시간을 투자했던 다음 세 개 개념 또는 용어를 살펴보자. 내러티브(narrative), 프레임(frame), 그리고 프로파간다(propaganda). 어렵고 복잡한 개념들이다. 상세하게 말하면 한도 끝도 없다. 중첩되는 부분도 많다. 그러니 간단하게 다음 몇 가지만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➀ 이 세 개의 개념은, 형성 초기의 성격이 무엇이었든, 최근 들어 중립적ㆍ객관적 의미보다는 편파적ㆍ작위적 측면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➁ 이 세 개 개념이 강조하는 편파적ㆍ작위적 측면에는 특정 개인 또는 집단의 의도가 숨어 있음을 의미한다. 즉, 특정 상대(일반적으로는 대중)에게, 감추고 싶은 것은 감추고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준다는, 누군가의 특별한 '의도'를 함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 세 개념에는 '특정 상대'가 '특정 개인 또는 집단의 의도'를 따라가기 쉽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➂ 이 같은 측면에서 본다면 모든 영화는 필연적으로 내러티브이며 프레임인 동시에 프로파간다이다. 즉, 영화는, 감독이 스스로 인지하든 안 하든, 필연적으로 영화의 스토리와 플롯, 미장센 등을 활용해 영화의 특정 측면을 강조하고 특정 측면을 생략하는 전략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밖에 없다. 이로써 감독은 관객의 시선과 시각, 공감을 유도한다. 우리는 이를 내러티브ㆍ프레임ㆍ프로파간다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➃ 찰리 채플린은 자신의 영화 <위대한 독재자>가 '프로파간다 영화'라는 세간의 부정적인 평가에 대응하기 위해 "모든 영화는 프로파간다"라는 입장을 밝히며 우회적으로 항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세 가지 개념에 한 가지 덧붙일 게 있다. 이들을 설명하기 위해 도구로 쓴 개념 '랙 포커스(Rack Focus)'다. '랙 포커스'란 렌즈의 조리개를 활용해 포커스를 하나의 대상에서 다른 대상으로 옮기는 영화 촬영 기법 중 하나다. 이때 관객에게 선명한 이미지를 주기 위해 한 대상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을 인포커스(in focus), 이 대상 이외의 다른 사물을 흐릿하게 처리하는 것을 이웃포커스(out focus)라 부른다.

■ 관객은 감독이 보라는 것만 본다?

이런 신을 생각해 보자. 총소리가 들린다, 뿌연 화약연기가 흩어진다, 연기가 가시자 총구가 선명하게 보인다(인포커스), 잠시 후 총구가 희미해지며(아웃포커스) 이번에는 총을 쏜 사람의 얼굴이 선명해진다(인포커스). 이때 총을 쏜 사람의 표정은 어떨까? 다양할 것이다. 고통스러울 수도, 웃을 수도, 울 수도 있고 이를 넘어 아예 무표정일 수도 있다. 영화의 전체 맥락에서 이 효과가 주는 의미는 남다를 수 있다.

총구와 총을 쏘는 캐릭터 표정 사이의 포커스 이동은 가장 전형적인 랙 포커스의 사례가 된다.
총구와 총을 쏘는 캐릭터 표정 사이의 포커스 이동은 가장 전형적인 랙 포커스의 사례가 된다.

우리는 또한 '전경(前景, figure)'과 '배경(背景, ground)'이라는 개념에 주목해야 한다. '전경'이란 포커스를 맞추는 대상을, '배경'이란 포커스에서 벗어나는 대상을 가리킨다. 앞선 예를 든다면, 총구가 선명하고 얼굴이 희미한 신에서는 총구가 전경, 얼굴이 배경이 된다. 포커스를 바꾸면 반대의 경우, 즉 얼굴이 전경, 총구가 배경이 된다. 결국 '랙 포커스' 기법이란 카메라 렌즈의 포커스를 활용해 '전경'과 '배경'을 변경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기법의 목적은 단순하다. 관객에게 "감독이 의도한 대로 보라"는 것이다. 즉 포커스를 맞춘 대상(전경)만 보고 포커스를 맞추지 않은 대상(배경)은 보지 말라는 얘기다. 이런 장면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총구를 겨냥한 포커스가 총을 맞은 인물의 얼굴로 옮겨간다. 하지만 영화는 시종일관 총을 쏜 사람의 얼굴에는 포커스를 맞추지 않는다. 그럼 관객은 영화 내내 총을 쏜 사람의 얼굴은 볼 수 없다. 그게 감독의 '의도'인 것이다.

영화 '클래식' 포스터.
영화 '클래식' 포스터.

이 '랙 포커스' 관련 개념은 영화 전체에 빗대 비유적으로 쓸 수도 있다. 우리는 이와 관련해 이미 곽대용 감독의 2003년 작 <클래식>을 알아 봤다. <클래식>은 준하(조승우 분)와 아들 상민(조인성 분), 주희(손예진 분)와 딸 지혜(손예진)의 사랑만 다룬다. 준하의 아내이자 상민의 엄마인 '여인(A)'는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이유? 간단하다. 준하와 주희, 그리고 이들의 대를 이은 상민과 지혜의 사랑만 보라는 것이다. 괜히 영화의 리얼리티를 살린답시고 '여인(A)'를 등장시키면 감독의 '닥사(닥치고 사랑)' 의도는 무산되고 말 것이다.

임상수 감독의 2005년 작 <그때 그 사람들>도 예를 들었다. 이 영화, 참 특이하다. 대놓고 역사를 왜곡한다. 궁정동 만찬에서 가수는 일본 노래를 부르고, 대통령의 머리에 권총을 쏜 시해자(弑害者)는 대통령의 옛 일본어 이름으로 그를 호명하고, 영화 곳곳에서 일본어로 독백 또는 대화하는 모습이 나오고, 만찬장에서 대통령을 지켜야 할 고위직은 도망가거나 숨는다···. 분명한 역사왜곡이다. 그러나 메시지는 분명하다. '5ㆍ16정권=친일정권'이며 이들의 통치기간은 '암흑기'였다는 것이다.

이 두 영화는, 당연히, 내러티브 구성 방식으로 스토리와 플롯이 짜였고, 감독이 원하는 방식대로 프레임이 만들어졌다. <클래식>은 '지고지순의 사랑은 대를 잇는다'는, 현실 속에서는 거의 이뤄지지 않는 '괴이한 사랑'의 프레임으로 진행됐다. <그때 그 사람들>은 어떤가. '5ㆍ16정권'을 철저하게 친일 프레임으로 풀어나갔다. 당연히 그들의 통치 기간은 '극도의 암흑기'일 수밖에 없다. 영화의 엔딩 신에 등장하는 자우림의 노랫말처럼 "우리는 욕망의 배설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영화 '그때 그 사람들' 포스터.
영화 '그때 그 사람들' 포스터.

그렇다면 '프로파간다'의 측면에서 봤을 때 이 두 영화는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 일단 영화 <클래식>을 보자. 상반된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시각을 잃은 '준하'의 지순한 사랑이관객의 연민을 이끌어낸다. 이런 측면에서는 '장애인 프로파간다(친장애인) 영화'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영화는 '장애인의 현실(준하가 얼마나 힘들게 생활했는가 등)'은 은폐했다. 이런 측면에서는 '반(反)장애인 프로파간다 영화'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은 어떨까? 5ㆍ16세력을 친일파로 몰고 간 영화다. 프로파간다 성향은 <클래식>보다 명확하다. 당연히 비판의 강도도 세다. 개봉 전부터 '반(反)독재' '반(反)5ㆍ16' '반(反)유신' 등을 위한 프로파간다 영화라는 항변이 터져 나왔다. 이는 또한 좌파ㆍ진보의 시각이 분명하다. 그러니 보수ㆍ우파들이 제기하는 '진보ㆍ좌파 프로파간다'라는 비판 또한 피해갈 수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클래식>과 <그때 그 사람들>은 모두 '프로파간다'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차이가 있었다. <클래식>에 대해서는 '프로파간다' 논란이 거의 없었던 반면 <그때 그 사람들>에 대해서는 비판이 쏟아졌던 것이다. 결국 <그때 그 사람들>은 법적 제재까지 받았다. 필자는 <클래식>에 대해서도 일부 장애인 단체나 또는 장애인 인권 운동가들의 반론이나 비판이 있을 수 있다고 추측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이와 관련된 어떤 자료도 찾을 수 없었다.

-----------------------------------------------------------

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효령로 229번지 (서울빌딩)
  • 대표전화 : 02-501-63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장재열
  • 발행처 법인명 : 한국社史전략연구소
  • 제호 : 이코노텔링(econotelling)
  • 등록번호 : 서울 아 05334
  • 등록일 : 2018-07-31
  • 발행·편집인 : 김승희
  • 발행일 : 2018-10-15
  • 이코노텔링(econotelling)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5 이코노텔링(econotelling). All rights reserved. mail to yunheelife2@naver.com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장재열 02-501-6388 kpb11@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