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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5) 대공황과 히틀러 '위대한 독재자' ⑳샤흐트의 ‘어음 매직’(2)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5) 대공황과 히틀러 '위대한 독재자' ⑳샤흐트의 ‘어음 매직’(2)
  • 이코노텔링 이재광 대기자
  • jkrepo@naver.com
  • 승인 2022.08.10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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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땅 본위제 화폐'로 독일 경제 짓누르던 ' 하이퍼 인플레이션 '을 잠재웠던 수완
원거리 무역 촉진한 '환어음'에서 영감 받아 국내 상거래에도 환어음 통용 제도 만들어
시중은행이 어음 소지자에 돈 주고 중앙은행이 보증해 '진성과 융통' 어음 두 기능 작동
어음 중개업체는 발행 기업서 무기 사들이고 한쪽에선 현찰을 마련해 히틀러에게 넘겨

현금의 '지급보증서'인 '어음'은 '신용경제의 역사적 산물'이다. 대금을 발행자가 직접 지불하는 '약속어음'과 제3자가 지급하는 '환어음'으로 진화해 왔다. 이자는 없고, 만기는 있고, 타인에게 넘길 때 배서(背書)를 해야 한다는 점 등에서 어음은 수표나 채권, 화폐와 다르다. 또 만기 전에 현금으로 바꾸려면 '할인'을 해야 한다는 점도 어음이 갖는 특성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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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마르 샤흐트(Hjalmar Schacht). 1933년 3월 그는 중앙은행 총재가 됐다. 히틀러가 수상이 된 뒤 두 달 지난 후였다. 5개월 뒤에는 경제부 장관까지 꿰찼다. 그야말로 독일 경제에 관한 한 그가 '대통령'이었다. 히틀러에게 충성을 다 하고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은 데 대한 보상이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는 미션을 하나 부여받았다. 실업을 이겨내고 재무장을 할 수 있는 '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다른 나라 몰래.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샤흐트였다. 그는 이미 한 차례 '샤흐트 매직'을 보여 준 적이 있다. 1924년 '땅본위제 화폐' 렌텐마르크로 독일 경제를 짓누르던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잠재웠던 것이다. 이제 또 한 차례 '샤흐트 매직'을 보여줄 때가 왔다. 그의 마술봉이 가리켰던 것은, 이번에는, 화폐가 아니었다. 어음이었다. 그는 자신의 마술봉으로 '어음'을 한 차례 '탁' 쳤다. 그러자 어음은 황금이 됐다. 그것도 다른 나라들은 볼 수 없었던 '투명 황금'이었다.

그는 도대체 '어음'을 어떻게 처리했던 것일까? 샤흐트의 '어음 매직'을 이해하려면 무엇보다 '환어음(Bill of Exchange)'의 개념을 알아야 한다. 환어음은 '무역업무'를 보다 간단하고 분명하게 처리하려는 과정에서 발명된 고안물이다. 이에 대한 견해는 다양하다. 하지만 13세기 말에서 14세기 초 원거리무역이 발달한 이탈리아의 상업도시 베네치아에서 처음 등장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당시 금융업을 하던 유대인이 발명했다는 것이다.

■ 어음인데 이자를 준다고?

논리는 이렇다. 나는 물건을 팔고 싶다. 마침 해외에서 내 물건을 사겠다는 이가 나섰다.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그를 어떻게 믿을 수 있다는 말인가? 얼굴을 마주 보며 물물교환을 할 수도 없는 상대였다. 선뜻 물건부터 내 줄 수는 없었다. 돈을 먼저 받으면 좋겠지만 구매인이 물건을 받기도 전에 선불로 돈을 내줄 리도 없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였다. '환어음'은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왔던 것이다. 보자.

➀ 먼 나라에서 서로 물건을 '팔려는 사람(매도인)'과 '사려는 사람(매수인)' 사이에서는 무엇보다 신뢰가 중요하다. 자칫 물건을 주고 돈을 못 받거나 돈은 주고 물건을 못 받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그럼 낭패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역 거래상들은 서로에게 신뢰를 주고 안전하게 거래할 수 있는 방법 또는 체계를 개발해 냈다.

➁ 우선 움직여야 할 주체는 '매수인'이다. 그는 자신의 주거래 은행으로부터 "이 사람은 믿을 수 있다"는 내용의 증서를 받는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신용장(L/C, Letter of Credit)'에 해당되는 '신용증서'다. 이 증서에는 당연히 "매도인의 활동 지역 내 특정 은행(지정은행)에서 돈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➂ 물건을 팔려는 '매도인'은 이 '신용장'을 근거로 환어음을 발행한다. 환어음에는 매도인(환어음 발행인)과 매수인(최종 대금 지급인), 신용장 발급 은행(개설은행), 매도인에 대한 대금지급은행(지정은행) 등 거래 주체는 물론 지급 금액과 어음 만기 등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점에서 '매수인'이 '어음 발행인' 겸 '대금 지급인'이 되는 약속 어음의 형태와 다르다.

➃ 그럼에도 환어음 역시 '어음'이어서 어음의 특성을 갖는다. 만기가 있다는 점에서는 수표나 현금과 다르고 만기가 짧고 이자가 없다는 점에서 채권과 다르다.

이처럼 '환어음'의 특성은 복잡하다. 물론 운영하기에 따라서는 지정은행과 개설은행이 같을 수도 있어 좀 더 단순한 형태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원거리 무역에 주로 이용되는 탓에 '약속어음'에 비해 다소 복잡한 것은 피할 수 없다. 특히 발행인과 지급인의 관계가 약속어음과 정반대라는 점에서 혼돈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환어음에 대한 특성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페이퍼컴퍼니 ‘메포(Mefo)’를 설립한 4개 중공업 기업
페이퍼컴퍼니 '메포(Mefo)'를 설립한 4개 중공업 기업.

자, 이제 우리는 '환어음'의 특성을 살펴봤고 정리가 됐다고 본다. 그러니 지금부터는 '샤흐트의 어음 매직'에 대한 분석으로 넘어가 보자. 그는 원거리 무역이 아닌 자국 내 상거래에서 환어음을 발행한다.

➀ 1933년 7월 샤흐트는 자신이 총재로 있는 중앙은행 라이히스방크 주도로 '야금연구유한책임회사(Metallurgische forschungsgesellschaft mit beschränkter Haftung)'를 설립하게 한다. 약칭 '메포(Mefo)'로 통용되는 이 유한회사는 지멘스, 크루프, 라인메탈, 구테호프눙스휘테 등 4개 철강ㆍ중공업 기업이 25만 라이히스마르크를 출자해 만들었다.

페이퍼컴퍼니 ‘메포(Mefo)’를 설립한 4개 중공업 기업들이 발행한 메포어음.
페이퍼컴퍼니 '메포(Mefo)'를 설립한 4개 중공업 기업들이 발행한 메포어음.

➁ '메포'는 '페이퍼 컴퍼니(Paper Company)'로 요즘 말로 치면 '유령회사(shell company)'였다. 하는 일이라고는 환어음의 취급이 전부였다. a)방위산업체나 건설기업이 어음의 발행자(drawer)가 되어 환어음인 '메포어음'을 발행하면, b)메포는, '형식상', 어음을 최종 인수(accept)하고 대금을 지급하는 지급인(drawee)의 역할을 담당했다. '어음'에 해당되는 독일어 단어는 '벡셀(Wechsel)'이다. 유한회사 '메포'에서 취급하는 '어음'이 '메포어음' 또는 '메포벡셀(Mefo-Wechsel)로 불리는 이유다.

➂ 메포는 어음을 두 가지 용도로 관리했다. 하나는 물품을 구입하는 용도인 '진성어음'으로, 또 하나는 자금을 융통하는 용도인 '융통어음'으로 썼다. 즉, 메포는어음 발행 기업을 통해 한편으로는 무기 등을 구입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현찰을 마련했던 것이다. 무기와 현찰은 당연히 히틀러의 손에 들어갔다. 어음 발행 기업을 통해 한편으로는 무기 등을 구입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현찰을 마련했던 것이다. 무기와 현찰은 당연히 히틀러의 손에 들어갔다.

➃ 그럼 돈은 최종적으로 누가 지급했을까? 바로 이 대목이 '샤흐트의 매직'이 시작되는 출발점이다. 메포는 독일의 많은 시중은행을 지급은행으로 정했다. 메포어음의 발행자 또는 발행자로부터 인수받은 어음 소지자(bearer)는 독일 내 정해진 민간은행에 가서 어음을 현찰로 바꿀 수 있었던 것이다. 만기 전이라면 할인을 했을 테고 만기 뒤라면 할인 없이 전액을 받았을 것이다.

➄ 그렇다면 왜 민간은행은 고작 페이퍼뿐인 유령회사 메포가 지급자 역할을 하는 '메포어음'을 받고 그 소지자에게 돈을 내줬을까? 이 대목이 핵심이다. 형식적으로는 유령회사가 지급을 책임지게 돼 있는 환어음었지만 최종적으로는 이를 중앙은행이 보증했고 실제로 어음을 받은 민간은행들은 중앙은행을 통해 재할인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➅ 어음은 만기가 있다는 점에서 수표와 다르고 만기가 짧고 이자가 없다는 점에서는 채권과 다르다. '메포어음'은 '어음'이다. 만기가 있고 그 기간 또한 짧다. 이런 특성은 어음을 보증하고 대금을 지급하는 중앙은행에 곤란한 문제를 일으킨다. 변제 대상 어음이 빨리 돌어와 부담이 커지는 것이다. 어음 발행액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부담은 더욱 커진다.

➆ 그래서 샤흐트는 이 대목에서 또 한 번의 '매직'을 부린다. 만기를 늘리고 대신 이자를 주겠다는 얘기였다. 할인율은 4.5%, 이자율은 4%로 책정됐다. 당신 같으면 어음을 받자마자 4~5%를 손해보고 은행에 어음을 넘기겠는가, 아니면 몇 개월 더 갖고 있다가 이자 4%를 챙기겠는가? 답은 뻔했다. 이로써 메포어음에 대한 1년 이상의 장기 보유자가 늘게 됐고 중앙은행은 그만큼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샤흐트의 어음 매직'은 이런 구조로 짜였다. 이 '매직'은 샤흐트의 첫 번째 매직인 '렌텐마르크 매직'과 같은 것일까 다른 것일까? 외견상 다르다. '어음 매직'은 마법의 소재가 '어음'이요, '렌텐마르크 매직'은 '화폐'다. 그러나 핵심은 같다. '중앙은행=국가'가 이를 보증하고 책임진다는 것이다. 국가는 '힘'이 있다. '힘'은 '권력'이요, 권력은 또한 '합법적 폭력'이기도 하다. 인간은 이 '힘' '권력' '합법적 폭력'을 믿고 또 의지한다. '돈'에 대한 '신뢰'는 여기서 비롯되는 것이다. 비트코인에 대한 필자의 시각이 부정적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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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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