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언 했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90리 떨어진 곳으로 피했다'는 말도 못 들어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도가 드디어 기어코, 급기야 20%대에 접어들었단다. 지난주 한 여론조사의 결과다. 조사의 신뢰성을 따질 수도 있고, 지지도 하락의 원인에 대해서도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어쨌든 국가에 바람직한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이를 두고 몇 가지 고사가 떠오른다.
한나라 성제(재위 기원전 32~7) 때 일이다. 주운(朱雲)이란 신하가 대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장우란 정승을 목 베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른말을 하지 못한 채 녹만 축내고 있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문제는 장우가 성제의 스승 격이었다는 점. 화가 난 성제가 병사들에게 "끌어내라"고 시켰지만 주운는 전각 난간을 붙들고 버티며 장우의 목을 쳐야 한다고 거듭 소리쳤다. 병사들과 주운이 드잡이질을 하는 바람에 결국 난간이 부러지고 말았다.
성제 또한 용렬한 군주는 아니었던지 목숨을 걸고 직언한 신하의 뜻을 기려야 한다며 뒷날 부러진 난간을 그대로 두도록 했다나.
이게 『한서』에 실린 '절함(折檻·난간이 부러짐)'의 고사다. 충언·직언에 얽힌 고사는 『삼국지』 「위서」의 '견거(牽裾·옷자락을 당김)' 이야기도 널리 알려졌다.
위 문제(재위 220~226)가 하북성 주민 10만 호를 하남으로 옮기려 하자 신하들이 흉년이 들어 백성이 굶주리고 있음을 들어 반대했다. 이에 문제는 "반대하는 이는 죽여버리겠다"며 밀어붙이자 신비(辛毗)란 대신이 나섰다.
신비가 "신하들이 나라를 염려해하는 말을 노여워만 하느냐"고 간언하자 말이 궁해진 문제는 자리를 박차고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자 신비는 황제의 옷자락을 당기며 끝까지 직언을 계속했다. 여기서 자리는 물론 생명을 걸고 보스에게 직언을 한다는 '견거'가 나왔다.
중국 예만 있는 게 아니다. 조선에서도 임금에 대한 간쟁, 직언을 전담하는 부서가 있었으니 삼사(三司)로 일컬어지던 사헌부·사간원·홍문관이다. 각각 대사헌·대사간·대제학을 수장으로 한 이들 기관은 관원에 대한 감찰과 인사, 임금에 대한 간쟁과 신하 탄핵, 비판을 놓치지 않는 정치적 자문 등을 맡아 위세를 떨쳤다. 그 위세가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과거 시험 급제자들이 고위직인 당상관으로 출세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청요직(淸要職)을 거쳐야만 했다. 청요직이란 청렴해야 하는(淸), 중요한(要), 자리(職)란 의미로 삼사의 관리들이 핵심이었다.
자, 그렇다면 직언을 했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어찌했을까. 결은 조금 다르지만 이에 해당하는 처신이, '퇴피(退避·물러나 피함)'라고 있었다. 『좌씨전』에 실린, 중국 춘추시대 진나라 문공의 '퇴피삼사(退避三舍·물러나 90리를 피함)'란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정부 여당의 누군가가 견거나 절함을 행했다는 소문도 들리지 않고, 그렇다해서 퇴피했다는 이도 없으니 "이게 집권당이냐"는 말까지 나오는 지경에는 이유가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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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