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15 06:50 (월)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5) 대공황과 히틀러 '위대한 독재자' ⑱ '독일 재무장' 의기투합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5) 대공황과 히틀러 '위대한 독재자' ⑱ '독일 재무장' 의기투합
  • 이코노텔링 이재광 대기자
  • jkrepo@naver.com
  • 승인 2022.07.25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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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1월 수상에 오른 히틀러 , 두 달 뒤 중앙은행 총재에 임명된 샤흐트의 제휴
샤흐트, 기업인에게 300만 마르크 거둬 상납…권력 독식과 재무장 재정 확보 속도
히틀러,법률을 제정할 수 있는 '비상 조치법'까지 확보하자 세번째 '단일제국' 선포

1920년대와 1930년대. 독일에는 그야말로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사건들이 연이어 터졌다. 정치ㆍ경제ㆍ사회 모든 측면에서 그랬다. 그 혼란의 와중에 히틀러가 정권을 잡았고 두 번째 세계전쟁이 잉태되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전쟁에는 돈이 들어간다. 패전국의 권력자 히틀러는 그 돈을 어떻게 마련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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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독일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숨 쉴 틈이 없을 정도였다. 모두 패전의 후유증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종결에서 대공황 직전까지의 독일 상황을 간단히 살펴 보자. ➀ 1914년 8월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이 1918년 11월 독일 항복으로 종결된다.➁ 1919년 6월 베르사유 강화조약 체결과 함께 독일에는 가혹한 배상금이 부과된다.

독일의 배상금 부담을 줄여주는 영플랜을 기획한 미국 기업가 겸 외교가 오웬 D. 영(Owen D. Young).
독일의 배상금 부담을 줄여주는 영플랜을 기획한 미국 기업가 겸 외교가 오웬 D. 영(Owen D. Young).

➂ 1921년 이후 독일은 배상금 지불을 위해 통화를 남발, 엄청난 물가상승을 일으킨다.

➃ 그럼에도 1922년 말 채무를 상환하지 못하자 1923년 1월 프랑스ㆍ벨기에가 독일 루르지역을 점령한다. 이로써 독일은 더 많은 돈을 찍어냈고 결국 상상을 초월한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경험한다.

➄ 1923년 11월 중앙은행은 '땅본위제 화폐' 렌텐마르크를 발행, 끔찍한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종결시킨다.

➅ 1924년 9월 미국과 영국의 도움으로 도스플랜 시행과 함께 금본위제 화폐 라이히스마르크를 발행, 독일경제는 비로소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다.

➆ 1929년 2월 영플랜이 확정됨으로써 독일의 채무 부담은 더욱 줄어들었고 경제성장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것으로 기대됐다.

➇ 하지만 1929년 10월 미국 주식시장의 폭락과 함께 세계적인 대공황이 시작됐고, 독일 역시 그 여파로 급격한 자본 유출에 따른 경제 붕괴를 겪는다.

■ 대공황 ··· 히틀러와 샤흐트가 하나로

이 같은 독일경제의 급격한 흐름 속에서 우리는 두 명의 인물에 주목해야 한다. 히틀러와 샤흐트. 그들은 이 같은 역사의 격변기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참고로 샤흐트가 1877년 출생으로 1899년 출생한 히틀러보다 스물두 살 많다.

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히틀러는 자진 입대한다.

➁ 1918년 11월 독일이 항복하자 샤흐트는 막스 베버 등 독일민주당(DDP)을 설립하고 히틀러는 전후에도 군인으로서 국가방위군에 계속 복무한다.

➂ 1920년 3월 군에서 전역한 히틀러는 추후 '나치당'으로도 불리는 독일노동당에서 풀타임 근무를 시작한다.

➃ 1921년 7월 히틀러는 풀타임 근무 1년 4개월 만에 당의장이 된다.

➄ 1923년 11월 히틀러는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를 따라 한 일명 '맥주홀 폭동'으로 체포ㆍ구금되고 같은 달 샤흐트는 화폐개혁의 주역으로 새 화폐 렌텐마르크를 발행한다.

➅ 1924년 8월 도스플랜이 결정됨으로써 독일은 금본위제 화폐인 라이히스마르크를 발행한다. 한편 같은 해 12월 히틀러는 석방되고 샤흐트는 중앙은행인 라이히스방크 총재에 취임한다.

➆ 1929년 6월 배상금 부담을 줄여주는 영플랜이 채택됨으로써 독일은 경제 활성화가 기대됐으나 4개월 후인 10월 미국 주식시장 붕괴로 급작스런 경제위기가 발생한다.

➇ 1930년 3월 독일 측 대표로 영플랜을 주도했던 샤흐트는 우익의 비판과 대공황의 여파로 라이히스방크 총재를 사임한다. 한편 히틀러의 나치당은 경제 불황에 힘입어 9월 선거에서 세력 확장에 성공, 의원 수를 12명에서 107명으로 늘린다.

⑨ 1931년 10월 샤흐트가 히틀러에게 은행가와 기업인 등을 소개하며 히틀러의 노선에 합류한다.

⑩ 1932년 7월과 11월 두 차례 선거에서 나치당은 제1당에 등극했으나 득표율 50%를 채우지 못해 당수 히틀러는 수상으로 취임하지 못한다.

⑪ 그러자 샤흐트의 주도로 금융인 및 기업인들이 1932년 11월과 1933년 1월 등 두 차례 수상 임명권을 갖고 있는 대통령 힌덴베르크에게 히틀러의 수상 임명에 대한 탄원서를 제출한다.

⑫ 1933년 1월 30일 마침내 히틀러가 수상에 취임한다.

일단 여기까지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 1929년 대공황까지의 독일 경제 상황과 1920년대부터 1933년까지 히틀러와 샤흐트의 움직임을 찬찬히 살펴보시라. 격변의 독일 역사, 그리고 그 주역들의 발자취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히틀러의 수상 취임 이후의 시기다. 이때부터 5~6년 간 히틀러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조약에 위배되는 재무장을 단행했고 샤흐트는 그 뒷돈을 댔다.

1934년 5월 5일 베를린에서 군대를 사열하는 히틀러와 샤흐트.
1934년 5월 5일 베를린에서 군대를 사열하는 히틀러와 샤흐트.

보자. 1933년 1월 수상이 된 히틀러는, 그야말로 발 빠르게, 권력의 독식과 재무장 재정 확보를 위해 뛰기 시작했다. 물론 그 뒤에 샤흐트가 있었다. 히틀러가 수상이 될 때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줬던 그였다. 수상이 된 이후에도 마찬가지. 샤흐트는 히틀러의 수상 취임 직후 기업인들을 모아 300만 마르크의 헌금을 거두고 히틀러에게 상납했다. 또한 수상 취임 다음 달인 2월 히틀러는 '제1차 4개년 계획'이라는 것을 발표, 독일의 새로운 도약을 선포한다.

히틀러는 또한 1933년 3월 샤흐트를 중앙은행 총재에 임명한다. 샤흐트로서는 총재직을 그만둔 게 1930년 3월이었으니 꼭 3년이 지난 뒤였다. 또한 1924년 첫 번째 총재직을 맡은 때로부터는 꼭 10년째 되던 해였다. 그에게는 당연히 '미션'이 있었다. 권력 유지와 재무장에 필요한 재원 마련이었다. 대공황으로 쑥대밭이 된 상태였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돈을 마련해야 했다. 그는 또 다시 '기적'을 보일 수 있었을까?

샤흐트를 중앙은행 총재에 앉힌 지 며칠 뒤였다. 히틀러는 의회에게 그 유명한 '비상조치법(Enabling Act)'을 강요함으로써 스스로 법률을 제정할 수 있는 권한까지 갖게 됐다. 그리고 6개월 뒤 그는 마침내 '제3제국'을 선포한다. 800년부터 1806년까지의 신성로마제국(제1제국)과 1871년부터 1918년까지의 독일제국(제2제국)에 이은 세 번째 단일국가임을 표방한 것이었다. 그리고 히틀러는 실제로 '황제'에 버금가는 실권을 거머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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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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