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 말 영제 때 권력 휘둘러 나라를 기울게 한 환관 무리 '십상시(十常侍)' 비유
뉴스를 따라가다 보면 본의 아니게 '지식'이 넓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국제대회에서 한국 팀이 아슬아슬해지면서 예선 통과를 위한 '경우의 수'를 익히거나, 코로나 변종과 관련해 난데없이 그리스신화의 '켄타로우스'를 만나게 되는 것이 그런 예다.
지난주엔 '육상시'란 말이 눈에 들어왔다. 윤석열 정부의 이른바 '권력 사유화'를 비판하던 야당의 공세에서 나온 말이다. 아마도 이는 박근혜 정부 때 국정 농단의 주역이라는 '문고리 3인방'의 프레임을 재현하려는 의도에서 꺼낸 듯싶다.
어쨌거나 '육상시'는 후한 말 영제 때 권력을 휘둘러 나라를 기울게 한 환관 무리 '십상시(十常侍)'에서 숫자만 고친 비유다. 십상시는 어린 황제를 주색에 빠지게 하고는 자기들끼리 사욕을 채우는 데 열중해 나라를 망친 10명의 환관을 가리킨다. 이들은 주로 매관매직으로 치부를 했는데 반면 임기는 보장하지 않아, 벼슬을 산 이들은 들인 돈을 뽑느라 백성을 괴롭혔다. 결국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면서 한나라는 급속히 기울어가는데 뒤를 이은 100여 년간 혼란과 영웅들의 명멸을 그린 것이 바로 동양의 고전이라는 『삼국지』다.
이 십상시들의 관직은 실은 중상시(中常侍)인데 『세상의 모든 지식』(김흥식 지음, 서해문집)에 따르면 환관과 내시(內侍)는 다르단다. 둘 다 궁에서 일하는 거세된 남자를 뜻했지만 내시는 환관 가운데 왕의 측근에서 보좌하던 직책이었다. 환관은 후손이 없어 사욕을 부릴 여지가 적고, 왕의 여성들에 손댈 가능성이 적다는 이유 등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래전부터 '등용'되었다. 하지만 권력의 지근거리에 있다 보니 호가호위할 기회가 많아 제법 인기 직종이었던 때도 있었던 듯하다.
중국에서는 당초 궁형(거세형)을 받은 자들을 환관으로 주로 채용했는데 수나라 때 궁형이 폐지되면서 민간 지원자를 채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가난한 집안에서는 자식을 환관으로 만들기 위해 자진해서 거세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단다. 책에 따르면 1621년 명나라 때 환관 3,000명을 모집하는 공고가 나자 2만 명이 넘게 응모하는 사태가 벌어졌다고 한다. 경쟁이 너무 뜨겁자 응모자들이 시위를 벌이는 바람에 조정은 인원을 늘려 4,500명을 뽑았다나. 권력의 부스러기가 그토록 달았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진나라 때 환관 조고(趙高)는 황제 앞에서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해도 다른 신하들이 감히 토를 달지 못할 정도-여기서 지록위마(指鹿爲馬)란 고사성어가 나왔다-로 막강한 권세를 부리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래도 조고나 십상시는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끝이 좋지 않았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에 가까이 가려는 '부나방'들이 이 사실은 기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