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2 10:54 (수)
[김성희의 역사갈피]김만덕의 수완과 덕행 평가
[김성희의 역사갈피]김만덕의 수완과 덕행 평가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2.07.11 11: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양가집에서 태어났으나 가세 기울자 기적(妓籍)에 올려 큰 돈 모아
제주도 대기근에 사재 털어 주린 백성 구휼한 '여중군자'(女中君子)
심노숭의「계섬전」에선 " 사욕 숨긴 막대한 기부 "로 부정적 평가
제주 기생 만덕은 1790년대 초 제주도에 해마다 기근이 들자 자기 재산을 풀어 주린 백성들을 위해 구휼하는 선행으로 이름을 떨쳤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윤석열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의 참석에 '민간인'이 동행한 것을 두고 정치권 공방이 한창이다. 그저 제3자가 보기엔 양쪽 주장이 일견 옳은 것 같기도 하고, 각각 억지스런 면이 있는 것 같기도 해서 아리송하기만 하다.

이런 사태를 보면서 얼른 떠오른 인물이 제주 기생 만덕(1739~1812)이다. 만덕은 양가의 여자였지만 어려서 어머니가 죽자 관가의 기적(妓籍)에 이름을 올렸다. 돈벌이에 수완이 뛰어나 수십 년 동안 만금을 모았다. 스무 살에 이르자 관가에 청을 해 기적에서 이름을 뺀 만덕은 홀로 살면서 1790년대 초 제주도에 해마다 기근이 들자 자기 재산을 풀어 주린 백성들을 위해 구휼하는 선행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의 선행은 중앙에까지 알려져 임금 정조가 그의 소원이 궁궐과 금강산 구경이라 하자 이를 들어 주었다. 금강산 유람을 마친 만덕은 서울에 와서 기생으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벼슬자리인 내수원 행수기생에 올랐는데 정조가 당대의 명신 채제공에게 만덕의 전기를 짓게 했으니 그는 가히 조선 시대 여중군자(女中君子)라 할 만하다.

한데 그런 만덕에 대한 호평도 '만장일치'인 것만은 아니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엮은 『조선 여성의 일생』(글항아리)에는 기생을 다룬 「사랑 타령일랑 집어치워라」란 글이 실렸다. 여기에 심노숭(1762~1837)이 기생 계섬의 이야기를 적은 「계섬전」이 언급된다. 그 글 말미에 만덕 이야기가 나오는데 우리가 아는 만덕과는 영 딴판이다.

심노숭에 따르면 만덕은 자신에 빠졌다가 돈을 탕진하고 떠나는 남자들의 바지저고리까지 뺏었는데 그게 수백 벌에 이르렀을 정도로 돈벌이에 악착같아서 제주 최고 부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빈민 구제 또한 제주도 여자는 육지에 가지 못하게 한 당시 국법을 뛰어넘어 서울과 금강산 구경을 하고 싶어 막대한 기부를 했다고 전한다. 즉, 선행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소원을 풀기 위해 그리했다는 것이다.

만덕이 어떻게 치부했는지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한데 자기 돈으로 많은 백성을 구제한 것은 사실인 듯하다. 사욕을 풀기 위해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러니 선행에 초점을 맞추느냐, 그 목적과 치부 과정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만덕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 수밖에 없다. 같은 역사적 인물과 그의 행적을 두고도 이런 현상이 벌어지니 앞서 말한 정치권 공방쯤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물론 심노숭의 평가가 어느 정도 진실인지, 혹 요즘 말로 '진영 논리'가 작용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효령로 229번지 (서울빌딩)
  • 대표전화 : 02-501-63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장재열
  • 발행처 법인명 : 한국社史전략연구소
  • 제호 : 이코노텔링(econotelling)
  • 등록번호 : 서울 아 05334
  • 등록일 : 2018-07-31
  • 발행·편집인 : 김승희
  • 발행일 : 2018-10-15
  • 이코노텔링(econotelling)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5 이코노텔링(econotelling). All rights reserved. mail to yunheelife2@naver.com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장재열 02-501-6388 kpb11@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