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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역사갈피]유비의 아들 유선의 생존술
[김성희의 역사갈피]유비의 아들 유선의 생존술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2.06.13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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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나라 사마소에 나라를 뺏겼지만 여생은 편안하게 보내
안락함에 고국 잊었단 낙불사촉(樂不思蜀)사자성어 나와
제갈공명 사후 오래 나라 지킨 능력…보신의 지혜 엿보여
낙불사촉(樂不思蜀)이란 사자성어 문자 그대로는 '즐거움에 젖어 촉 땅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낙불사촉(樂不思蜀)이란 사자성어가 있다. 어지간한 식자라도 좀처럼 들어보지 못한 표현일 텐데 문자 그대로는 '즐거움에 젖어 촉 땅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데 그 유래는 의미심장하다.

동양의 고전이라는 '소설 삼국지'에 유비의 아들 유선 이야기가 더러 나온다. 장판파 전투에서 상산 조자룡이 조조의 백만 대군 사이를 누비면서도 품안에 지켜냈던 '아두'가 바로 그 유선이다. 유비가 세상을 뜨면서 제갈공명에게 후사를 부탁하며 왕재가 시원찮거든 대신 대권을 쥐라고 당부했던 문제의 인물이기도 하다.

아다시피 유비가 세웠던 촉은 서기 263년 위나라 원제 사마소의 군대에 의해 멸망한다. 이후 부분은 '소설 삼국지'에서 그다지 조명받지 못하는 부분인데 여기서 문제의 '낙불사촉'이 나온다. 사마소는 촉한 지역의 안정을 위해 인심을 모을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망국의 황제 유선을 안락공(安樂公)에 봉하고 촉의 중신 50여 명을 제후에 봉하는 등 우대했다.

그 사마소가 하루는 유선과 촉의 신하들을 불러 잔치를 베풀고는 가희들에게 촉 지방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게 했다. 이를 본 촉의 중신들은 망국의 슬픔에 눈물을 흘렸지만 유선만은 마치 예전 자기 궁전에 있는 듯 즐거워했다. 며칠 후 사마소가 유선을 만나 "촉나라가 그립지 않냐"고 물었다. 이에 유선은 쾌활한 모습으로 "이곳의 생활이 매우 즐거워 촉한이 그리운 줄 모르겠습니다"라 답했다나.

여기서 나온 '낙불사촉'이 눈앞의 쾌락이나 향락에 젖어 자신의 본분이나 처지를 생각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가리키는 비유로 쓰이게 되었다. 물론 유선은 능력은 없으면서 오로지 핏줄로 권좌에 오른 암군(暗君)의 대명사가 되고.

한데 중국사의 수수께끼를 파고든 『중국역사 암호 44』(허이 지음, 은행나무)의 지은이는 이견을 제시한다. 유선이 영민하고 능력 있는 군주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나약하고 무능하기만 한 군주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적어도 보통 사람 수준의 머리는 갖추었다는 사례를 여럿 제시하는데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오랜 통치기간이다.

유선은 서기 223년 제위에 올라 위에 투항할 때까지 40년간 권세를 누렸다. 곧 삼국 시대의 여러 군주 중 가장 '장수'했던 황제란 이야기다. 그저 아둔하기만 했다면 군웅이 할거하고 전란이 끊이지 않았던 그 시대에 그토록 오랫동안 집권이 가능했을까. 물론 여기엔 제갈공명이 보조한 덕이라는 추론이 있을 수 있는데 공명은 234년 세상을 떠났으니 유선은 그 후로도 30년 가까이 자리를 지켰다는 사실로 반증한다.

같은 처지였던 오나라의 손호가 사마소의 아들에게 죽임을 당한 반면 유선은 안락공으로 8년을 지내고 천수를 다했다. 그러니 '낙불사촉'은 생존을 위한 '보통 사람' 유선의 지혜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것이 과연 바람직한 태도였는가는 둘째 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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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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