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8 12:05 (목)
[김성희의 역사갈피]조선의 사법제도와 수사방식
[김성희의 역사갈피]조선의 사법제도와 수사방식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2.06.06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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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랄만큼 정교하고 치밀 … "네 죄를 네가 알렷다"식 무모함과는 딴판
형벌도 세분화하고 상고절차는 3단계로 나누고 임금에 직소하는 길도
두 차례 선거의 시간 지나 '신 적폐청산' 겨냥한 수사 방향에 여론 촉각
조선시대 『흠휼전칙』에 따르면 곤(棍)을 죽을죄를 저지른 중대 범죄자를 다스릴 때 쓰는 중곤(重棍)에서 도적을 다스리기 위한 치도곤(治盜棍)까지 죄질에 따라 다섯 종류를 세분해 놓았다. 사진=KBS(KBS 1TV 대하드라마 '장영실'의 한 장면)/이코노텔링그래픽팀.

지방선거가 끝났다. 이제 전 정권의 '비리'를 단죄하는 '신 적폐청산' 바람이 본격적으로 일 것으로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검찰공화국' 운운하는 말을 믿지는 않지만 어쩌면 예전에 그랬듯이 '별건 수사' 등 '탈탈 털기'가 시도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여기서 조선의 법률과 형벌을 다룬 『네 죄를 고하여라』(심재우 지음, 산처럼)가 떠올랐다. 사약, 주리, 곤장, 유배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책을 보면 한마디로 "네 죄를 네가 알렷다!"는 식의 '원님 재판'은 영화나 TV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신화'다. 조선의 사법제도와 수사방식 등을 보면 놀라울 만큼 정교하고 치밀했다. 적어도 제도적으로는.

형벌 또는 수사의 수단으로 흔히 알고 있는 '곤장'을 보자. 책에 따르면 우선 곤장의 '곤(棍)'은 신체형에 쓰이는 '태(笞)'와 '장(杖)'과 다르다. 태는 1미터 정도 길이에 굵기가 1센티미터가 채 안 되어 몽둥이라기보다 회초리에 가까웠고, 장은 태보다 약간 굵은 정도였다. 그러나 곤장은 태와 장보다 길고 넓적하게 생겨 타격 강도가 높았다. 뿐만 아니라 태와 장은 볼기를 때렸지만 곤은 볼기와 넓적다리를 번갈아 치게 되어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당시 형벌을 세세히 규정했던 『흠휼전칙』에 따르면 죽을죄를 저지른 중대 범죄자를 다스릴 때 쓰는 중곤(重棍)에서 도적을 다스리기 위한 치도곤(治盜棍)까지 죄질에 따라 다섯 종류를 세분해 놓았다. 또 이를 사용할 권한도 병조판서에서 변방 수령까지 각기 달랐고, 30대 이상 때리지 못하도록 했다. 고을 사또가 백성을 자빠뜨려 놓고 마구잡이로 곤장을 치는 행위는 상상의 산물이라는 이야기다.

재판제도 또한 나름 갖춰져 있었다. 각 고을의 소송은 일차로 지방관인 수령이 담당했지만 이에 불복할 경우 지금의 도지사에 해당하는 관찰사 그래도 만족 못 하면 중앙기관인 사헌부에 항소할 수 있도록 '제도화'되어 있었다. 이마저도 안 되면 신문고를 치거나 상언(上言)·격쟁(擊錚) 등 임금에게 직접 호소하는 길도 있긴 했다.

그런가 하면 책에는 법의학서인 『무원록(無冤錄)』도 등장한다. 중국 남송 때 만들어진 이 책이 세종 때 조선에 소개되었는데 술, 식초, 소금, 매실, 망치, 백반 등 '응용법물'을 이용한 검시 방법이 상세히 서술되어 있다.

이런저런 조선의 사법제도를 보면 꽤나 합리적이다. 문제는 그것들이 제대로 운용되었는지 여부라 하겠다. 예나 지금이나 제도보다는 누가 어떤 목적으로 운용하느냐가 문제일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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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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