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0여 명이 지원해 45대 1의 경쟁률…현대도 이듬해 공채에 나서
대우, 1985년 대졸여성 첫 공채…결혼이유로 5년 안돼 99%가 사퇴

지금, 우리의 화두 중 으뜸은 '공정'이라는 데 이의를 달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공정이 가장 뜨거운 화제가 되는 것은 진학과 취업이란 사실도. 오로지 실력으로만 공개적으로 선발해 마땅한 진학과 취업의 좁은 문에 힘 있는 이들이 '부모 찬스'니 '청탁'이니 해서 온갖 '개구멍'을 뚫고 과실을 챙겼다는 것이 드러나 온 사회가 시끄러운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 중 취업의 문을 공정하게 관리하는 제도가 '공채(公採)'다. 불과 몇 년 전 시절이 좋을 때만해도 대기업 그룹별로 입사시험 교재가 숨어 나와 베스트셀러가 되고, 항간에는 그룹끼리 공채 시험 날짜를 언제 잡느냐로 신경전을 편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 공채를 처음 실시한 곳이 '삼성'이다. '한국 경제의 운명을 바꾼 역사적 선택'들을 정리한 『49가지 결정』(최성락 지음, 페이퍼로드)에 따르면 1957년 삼성물산공사가 신입사원 27명을 공개 채용하겠다는 신문광고를 낸 것이 우리나라 공채의 효시다.
당시엔 대기업은커녕 서울대 법대 졸업생도 말단 공무원을 했을 정도로 변변한 일자리가 없던 터였다. 사장이 자기 친척, 친구, 고향 사람 등 주변의 추천을 받아 그때그때 채용해도 '기업'은 충분히 굴러가던 시대였다.
삼성의 공채 광고는 그런 면에서 우리 경제의 '역사적 선택'으로 꼽힐 만했다. 인맥이나 혈통이 아니라 능력으로 일꾼을 뽑아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시대, 그런 사회 분위기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삼성 공채 1기 모집에는 1,200여 명이 지원해 45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그리고 현대가 이듬해인 1958년 공채를 시작했다. 이후 1970년대 들어 공채 출신 사장이 나오는 등 공채 제도는 전문경영인을 키우는 경로로 단단히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 공채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데 대우도 빠뜨릴 수 없다. 대우는 1985년 대졸 여성만을 대상으로 한 공채를 도입했다. 그때까지 잘해야 '사무실의 꽃' 대우를 받던 여직원들을 더이상 차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커피를 서빙하고, 손님을 안내하고, 잡일을 처리하는 대신 남직원과 똑같은 업무를 맡기겠다고 했다. 결국 200명을 뽑기로 한 모집 공고에 '제대로 된 일을 하고 싶어하는' 대졸 여성 5300명이 넘게 지원하는 개가를 올렸다.
단 대우의 획기적 조처 뒤에는 뒷이야기가 있다. 정말 200명의 대졸 여직원을 뽑아 남직원과 똑같은 업무를 맡겼는데 이들이 남녀평등의 초석이 되었던 것은 아니다.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입사했던 이들 중 99%가 '결혼'을 이유로 사표를 내 5년이 지나지 않아 2명만 남았으니 말이다.
꼭 그래서 그랬던 것은 아니겠지만 대졸 여성만을 위한 공채는 대우의 시도 이후 7년이 지난 1992년에서야 삼성이 다시 시행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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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