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20 19:35 (금)
[김성희의 역사갈피]교황이 된 해적
[김성희의 역사갈피]교황이 된 해적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2.05.02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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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학위에 이어 돈으로 산 추기경직 거머쥔 후 교황에 올라
돈을 빌려 준 메디치 가문의 은행은 교황청 주거래 은행으로
나폴리의 귀족 '발다사레 코사' 무역업 가장한 해적질로 치부
피렌체 공국의 메디치 가문은 나폴리 귀족 출신인 발다사레 코사가 세상을 뜨자 당대 최고의 조각가 도나텔로에 맡겨 피렌체 대성당의 세례당에 그의 무덤을 만들어주었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중세 교황 중엔 그리스도의 대리인은커녕 도덕성이 평신도만도 못한 인물이 여럿 있는 줄은 진즉에 알던 터였다. 한데 해적 출신까지 있었다는 이야기엔 조금 놀랐다. 1410년에 교황에 오른 요한 23세가 바로 그 인물이다.

1402년 나폴리 귀족 출신이라는 발다사레 코사란 이가 피렌체 공국의 메디치 가문이 운영하는 은행에 대출을 신청한다. 대출 목적은 추기경직을 사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무역업으로 돈을 벌었다 했지만 실은 해적질로 치부한 인물로 알려졌다. 이미 볼로냐 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산 바 있었다.

결국 코사는 대출을 받아 추기경에 오르는데 메디치 가문과의 밀월 관계는 8년이나 이어졌다. 그러다가 '아비뇽 유수'로 알려진 대립 교황 시기의 혼란 덕에 코사 추기경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당연히 메디치 가문은 요한 23세의 '성총'을 입었다. 그의 치세 동안 메디치 가문의 은행이 막대한 자금을 관리하는 교황청의 주거래은행 행세를 한 것이다.

하지만 1415년 통합 교황으로 마르티노 5세가 선출되면서 요한 23세는 폐위되기에 이른다. 게다가 엄청난 벌금까지 부과받았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메디치 가문의 태도다. 메디치 일가는 명예도 돈도 없는 코사의 벌금을 대신 내줬을 뿐 아니라 생활비까지 댔다. 나아가 코사가 세상을 뜨자 당대 최고의 조각가 도나텔로에 맡겨 피렌체 대성당의 세례당에 그의 무덤까지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해서 메디치 가문의 이 은행은 피렌체에서 "한 번 맺으면 끝까지 간다"는 신용의 상징이 되었고 이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막대한 은행 자산이 되었다. 결국 메디치 가문은 금융업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 1435년엔 피렌체의 통치자가 되고 16세기에는 3명의 교황을 배출하는 '명문'이 된다.

그런 '영광' 뒤에는 또 상당히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지만 이는 논외로 하고, 메디치 가문은 이름값에 걸맞은 역사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만 기억하자. 메디치 가문은 유럽의 희귀 문서를 모아 피렌체에 유럽 최초의 도서관을 세우기도 했고, 가난한 예술가들을 후원하여 르네상스 시대의 문을 열었다고도 평가받는다. 메디치 가문의 후원으로 생계 걱정을 덜고 작품에 몰두한 끝에 인류사의 걸작을 남긴 이름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등이 들어 있으니 속된 말로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쓴" 중세의 재벌이라 할 수 있다.

현직 언론인이 쓴 매혹적인 와인 인문학 책 『와인 콘서트』(김관웅 지음, 더 좋은 책)에 곁들여진 에피소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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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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