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15 11:06 (일)
뉴욕을 만든사람들⑭줄리아니의 '범죄와의 전쟁'
뉴욕을 만든사람들⑭줄리아니의 '범죄와의 전쟁'
  • 뉴욕=곽용석 이코노텔링 기자
  • henryk@nestseekers.com
  • 승인 2019.05.26 2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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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경중 가리지 않고 처벌…거리 안전해지자 연간 관광객 6000만명 북적
불과 20년전의 뉴욕은 마약과 범죄 해방구 …도시 경쟁력 갖추자 부동산 폭등
2016년 미국 대선 캠페인 나선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이 연설하는 모습. 그는 범죄의 소굴이던 뉴욕을 탈바꿈시켜 관광과 경제의 중심도시로 키웠다.  정치지도자가 누구냐에 따라 도시경쟁력은 물론 나라의 품격도 달라질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2016년 미국 대선 캠페인 나선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이 연설하는 모습. 그는 범죄의 소굴이던 뉴욕을 탈바꿈시켜 관광과 경제의 중심도시로 키웠다. 정치지도자가 누구냐에 따라 도시경쟁력은 물론 나라의 품격도 달라질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오늘날 뉴욕을 안전한 관광의 도시로 거듭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없었다면 뉴욕의 관광객이 지금처럼 연간 6천만 명을 넘기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면 뉴욕은 세계 최고의 문화예술 및 비즈니스의 도시로 탈바꿈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래 된 이야기도 아니다. 겨우 20여년 전이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뉴욕은 범죄 소굴 같았다. 강도, 마약, 소매치기, 그리고 홈리스들의 천국이었다. 백주대낮에 강도를 당하기 일쑤고, 지나가던 차가 신호등에 서면 날치기 떼가 달려왔다. 어디선가 갑작스럽게 나타나 차에 스프레이 낙서를 뿌리고 지우면서 돈을 요구하는 등 천태만상의 갖은 범죄가 기승을 부렸다. 거리를 지나다니다 옆에 들러붙어 돈을 요구하는 것은 물론이고, 폭행을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특히 맨해튼 북쪽인 브롱스나 브루클린, 퀸즈도 그랬으며, 맨해튼 한복판의 사정도 엇비슷했다. 지금의 타임스퀘어 뒷골목은 당시에는 마약과 매춘의 거리였고, 노숙자와 강도들의 소굴이었다. 일반인들이 다니길 꺼려했던 곳이다. 도심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가기라도 한다면 목숨을 내놓을 정도의 담력이 필요했다. 지금 생각하면 믿기 어려운 얘기들이다.
어퍼 이스트나 첼시, 미드타운과 웨스트사이드 등에는 불꺼진 건물 들이 많았고, 사람들이 살 수가 없어 외곽으로 나가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자 뉴욕의 중심은 공동화됐고 뒷골목은 슬럼화됐다.악의 소굴, 쓰레기와 낙서 천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썼다. 적어도 뉴욕 시장에 ‘루돌프 줄리아니’가 취임하기 전까지 그랬다. 루돌프의 강력한 행정지도와 범죄 소탕 작전이 없었다면 지금의 뉴욕은 상상하기 힘들다.

루돌프 줄리아니가 뉴욕 시장에 오르자 뉴욕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갔다.  타임스퀘어 부근의 노천카페에서 한가롭게 차를 마시는 뉴욕시민들의 관경이 평화롭다.(뉴욕=곽용석 이코노텔링 기자)
루돌프 줄리아니가 뉴욕 시장에 오르자 뉴욕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갔다. 타임스퀘어 부근의 노천카페에서 담소를 나누는 뉴욕시민들이 평온해보인다.(뉴욕=곽용석 이코노텔링 기자)

그는 1944년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이탈리아 출신이다. 뉴욕대학교 석사를 마친 후 변호사 자격증을 따 뉴욕의 검사로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다. 이후 정치에 몸담고 1993년에 뉴욕 시장 선거에 당선된다. 시장 취임 후 그는 곧바로 칼을 들고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범죄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모두 처벌했다. 범죄의 싹도 가려내 잘라냈다. 이른바 ‘깨진 유리창’(broken window)도 정비했다. 지하철, 거리, 공원, 후미진 빈 건물 등을 샅샅히 뒤져 범죄소굴을 청소했다. 오늘날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타임스퀘어 거리나 브라이언트 파크 등 대부분의 장소가 그렇게 정화되어갔다. 그의 강력한 리더십과 끈질긴 소탕 작전으로 뉴욕의 범죄율은 급격하게 줄고, 거리가 깨끗해지면서 관광객들이 급증했다. 단 몇 년 만에 완전히 색다른 도시로 바뀐 것이다. 살인강도는 절반으로 줄었고 경범죄는 60% 이상이나 줄었다.

어느 한 사람이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리더란 이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국가든 도시든 어떤 리더가 어떻게 그 조직을 이끌어 가느냐에 따라 그들의 미래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 지를 생생하게 보여준 사례다. 결과는 뉴욕시의 성공이었고 영웅은 그렇게 탄생했다. 혜택은 뉴욕 시민에게 돌아갔다.

도심은 사람들로 붐볐다. 외곽으로 나갔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시내로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1980년대 텅 빈 건물들의 창에 불빛이 들어오고, 부동산 가격도 서서히 올랐다.

1980년대 10여 가구가 들어있는 작은 건물 가격이 50~60만 불이었는데 지금은 500만 불을 줘도 살 수가 없다. 30년 전에는 텅 빈 건물을 팔려고 해도 살려는 사람이 없었다. 남들 따라 롱아일랜드나 뉴저지로 가서 넓은 대지에 풀장 딸린 고급 주택을 매입하며 거기서 사는 게 꿈이었고 유행이었다.

당시 맨해튼 건물이 팔리지 않아 할 수 없이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사람이 지금은 오히려 수십 배나 올라 횡재를 한 셈이다. 거꾸로 뉴저지나 롱아일랜드 주택 가격은 그다지 오르지 않았다. 지금은 그것을 팔고 맨해튼으로 입성하고 싶어도 들어올 수가 없다. 인생살이 새옹지마다. 루돌프 줄리아니도 흙수저 출신이다. 당시 하층민과 흑인 동네인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는 노동으로 먹고 사는 사람으로 범죄 경력도 있었다. 금수저가 아닌 가정에서 성장했다.하지만 똑똑하고 영리한 젊은이였다. 검사로서 재직 시 범죄에 대한 완벽한 구조와 그 생리를 알고 터득했기에 시장직 출마 당시부터 ‘범죄와의 전쟁’을 선거 이슈로 강하게 부각시켰다. 그의 선거 전략이 먹혔고, 당선 후 과감하게 공약을 실천했다. 상대방을 잘 알고 시작하는 게임이기에 어렵지 않게 추진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한 시민의 반응도 당연히 폭발적이었다. 강력한 리더십으로 거대 도시를 완벽하게 바꾸어 놓은 점을 높이샀다. 법과 규칙의 테두리 내에서 이뤄지지 않는 것을 모두 걷어냈다. 줄리아니의 리더십이 주는 교훈을 뭘까.서울과 같은 거대 도시나 국가가 좀 더 성숙하고 품격있는 선진국가로 거듭나기 위해선 ‘줄리아니식 개혁’은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일지도 모른다.뉴욕타임즈는 줄리아니를 2001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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