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09:20 (일)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5) 대공황과 히틀러 '위대한 독재자' ⑪ 1차 세계대전때 '金본위제' 타격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5) 대공황과 히틀러 '위대한 독재자' ⑪ 1차 세계대전때 '金본위제' 타격
  • 이코노텔링 이재광 대기자
  • jkrepo@naver.com
  • 승인 2022.04.18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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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돈이 많이 필요했고 발행액을 금으로 바꿔줄 수 없게 되자 금본위제 포기
1925년 영국 재무장관 처칠, 전후 자국경제 건재함을 알리기위해 금본위제 복귀
패전국 독일의 금융엘리트들은 金을 대체하는 방안을 강구하다 '땅과 연동' 고안

'종이돈'은 진짜 돈일까? 100달러짜리 지폐와 1달러짜리 지폐는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종이돈'에 대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의문이다. 그런 까닭에 '종이돈'은 늘 다른 값나가는 것과 연계됐다. 종이돈이 금은 등 귀금속과 연계된 역사는 아주 오래됐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금으로 통합됐다. 이른바 '금본위제'의 지배가 시작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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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미국에는 일정 금액의 달러를 가져가면 은행에서 금으로 바꿔주던 때가 있었다. 요즘처럼 팔거나 사는 게 아니었다. 달러와 금값이 늘 일정했다. 그러니 정부는 함부로 달러를 찍어내지 못했다.

그랬다가는 갖고 있던 금을 모두 날릴 수 있었다. 그래서 국민은 달러의 가치를 믿고 맘 편하게 썼다.

이게 이른바 '금본위제(Gold Standard)'다. 이 제도가 없었다면 지폐 돈은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누가 종이 쪼가리를 돈으로 쓰겠는가. 금으로 바꿔주지 않는 종이돈은 그냥 종이였을 뿐이다.

'금본위제'에 대한 유럽의 뿌리는 더 크고 더 깊었다. 일정 금액을 금으로 바꿀 수 있는 화폐. 이게 믿을 수 있는 화폐고 그런 화폐를 갖고 있는 나라가 '선진국'이라 믿었다. 더 오래 전에는 아예 금을 돈으로 썼다. 유럽의 이런 금본위제는 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금본위제 도입도 유럽, 특히 영국이 선도했다. 산업혁명으로 '세계의 공장'임을 자타가 인정했던 나라였으니 한편으로 당연했다. 1821년 영국은 금본위제 도입을 대내외에 선포, 정치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세계 최강임을 과시했다.

영국 재무장관 윈스턴 처칠이 ‘금본위법’을 선포했음을 알리는 신문기사
영국 재무장관 윈스턴 처칠이 '금본위법'을 선포했음을 알리는 신문기사

다른 나라들도 영국을 따라했다. 특히 19세기 후반은 가히 '금본위제의 황금기'라 할만 했다. 이 시기 제국주의 열강들은 '통화강국'의 기치를 내걸고 대거 금본위제를 채택했던 것이다.

1870년대 들어 프랑스나 독일, 미국, 벨기에, 오스트리아 등 세계 강대국들은 모두 금본위제를 받아들였다. 1871년에는 동아시아의 신흥 강국 일본도 이 제도를 도입했고 이로써 구미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

각국 정부는 당연히 금이 많아야 했다. 그래야 돈을 많이 찍을 수 있었고 그래야 나라가 부자가 될 수 있었다. 금에 대한 수요가 폭발했고 그만큼 금을 둘러싼 쟁탈전도 치열했다.

19세기 중반 이후 미국 캘리포니아, 알라스카, 사우스다코다, 호주 빅토리아, 뉴질랜드 오타고, 캐나다 유콘 등에서 발견ㆍ개발된 대규모 금광산은 세계 주요 나라들의 금본위제 도입과 관련이 깊다.

이 금본위제가 망가진 것은 제1차 세계대전 때였다. 전쟁이 터지니 각 나라는 돈이 필요했고 돈이 필요하니 돈을 찍어냈다. 그러다보니 그 돈을 모두 금으로 바꿔줄 수 없었다. 전쟁 중 모든 나라가 금본위제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또 상황이 바뀌었다. 주요 선진국들은 다시 금본위제로 돌아가려 했다. 자국 경제와 화폐가 건재함을 알리고 싶었다. 1925년 4월 영국의 재무장관 윈스턴 처칠은 '금본위법'을 선포, 금본위제 도입의 선두에 섰다. 이후 세계 주요 나라들이 다시 금본위제로 돌아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금이 없으니 땅으로 한다!"

그러나 독일은 예외였다. 물론 독일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금본위제 도입을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금이 필요했다. 하지만 패전국이었다. 금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그런데 돈은 엄청나게 필요했다.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갚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금이 없어도 돈을 찍어야 했다. 그것도 마구 찍어야 했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은 당연했다. 전쟁 전과 비교했을 때 화폐 가치가 수천 억 배 떨어졌다. 역사 상 유례가 없는 인플레이션이었다.

여기까지는 이미 몇 차례 얘기했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역사 상 유례가 없었던 하이퍼인플레이션. 당연히 이 살인적인 재앙은 없어져야 했다. 그러려면 화폐개혁이 필요했다. '0'을 10여 개 빼야 하는 대대적인 화폐개혁이었다. 새 돈은, 국민에게 신뢰를 줘야 했다. 새 돈은 마구 찍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필요했다. 이를 위한 최상의 방법은 금본위제였다. 통화가 금과 연동이 된다면 마음대로 돈을 찍어낼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 독일에는, 이미 말했듯, 금이 없었다.

완전한 딜레마였다. 퀴즈. 여러분이라면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할까? 아니, 할 수 있을까?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1920년대 독일은 해냈다. 그것도 거의 완벽하게. 이 하나만으로도 당시 독일은 박수를 받을 만했다. 어떻게 했을까. 금도 없이. 이 방식이 갖는 의미는 그저 인플레이션을 잡았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이를 통해 돈과 화폐, 그리고 현 시점에서 운영되는 자본주의 금융 체제의 본질을,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다. 미스터리로 가득 찬 자본주의 금융시스템의 본질을.

결론부터 말하자. 당시 독일은, 금 없이도 화폐 남발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고, 더 중요한 것은, 그 방법을 실제로 적용시켰고, 그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이 방법으로 국민에게 신뢰를 줬다는 것이다. 어떻게 했을까. 한 마디로 말하자. 당시 독일의 금융 엘리트들은 '금'을 대체할 수 있는 대체물을 찾았던 것이다. '금'을 대체할 수 있는 대체물. 다름 아닌 '땅'이었다. 금이 없었던 독일은 화폐를 '금'이 아닌 '땅'에 연동시켰던 것이다.

1923년 하이퍼인플레이션 극복을 위해 독일이 발행한 렌텐마르크
1923년 하이퍼인플레이션 극복을 위해 독일이 발행한 렌텐마르크

'금본위제'는 화폐를 금에 연동시키는 제도다. 금은 한정돼 있으니 돈을 함부로 찍어낼 수 없다. 돈을 더 찍으려면 더 많은 금이 필요했다. 자국 내에서 새롭게 금광을 발견하거나 다른 나라에서 금을 빼앗아오거나 아니면 국민이 갖고 있던 금을 정부에 귀속시켜야 했다. 독일은 '금' 대신 '땅'을 썼다. 그러니 '금본위제'가 아닌 '땅본위제'다. 이것도 마찬가지였다. 땅도 한정돼 있지 않은가. 돈을 이 '땅'에 연동시키니 함부로 찍어낼 수 없었던 것이다.

구체적인 방법을 보자. 일단 정부는 1923년 10월 중순 렌텐방크(Rentenbank)라는 이름의 새 은행을 설립한다. 이 은행은 국가 보유의 땅을 담보로 잡고 화폐를 발행한다. '렌텐(renten)'이라는 단어 자체가 '저당권' 즉 '모기지(mortage)'의 의미를 갖는다. '렌텐방크'란 당연히 '저당권은행', '모기지은행'이라는 뜻이다. 이 은행에서 발행한 화폐 이름이 렌텐마르크(Rentenmark). 이 역시 '저당권마르크' '모기지마르크'의 뜻을 갖는다.

렌텐방크가 찍은 첫 화폐 규모는 모두 12억 렌텐마르크. 이 화폐를 '종이마르크'라는 의미의 '파피어마르크(papiermark)'라는 이름의 기존 화폐와 교환한다. 화폐개혁, 즉 리도미네이션(denomination)을 한다는 것이었는데, 교환비율이 놀랍다. 무려 1조 대 1. 1조 파피어마르크를 1렌텐마르크로 바꿔준다는 뜻이다. 이는 1달러 당 4.2렌텐마르크에 해당되는 것으로, 이로써 독일 화폐 마르크는 전쟁 전 금본위제로 운영되던 골드마르크의 가치를 회복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 같은 화폐개혁이 성공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성공'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담겨 있다. 독일 국민이 이 화폐개혁에 적극 동참, 기존 파피어마르크를 렌텐마르크로 신속하게 교체해야 한다는 것이 첫째요, 렌텐마르크의 화폐 안정성이 계속 유지돼야 한다는 것이 둘째였다. 렌텐마르크는 이 두 가지 모두를 훌륭하게 성취해 냈다. 렌텐마르크가 나온다는 소식 자체로 하이퍼인플레이션은 급속하게 꺼졌고 이후 그 같은 인플레이션을 다시 겪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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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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